단어가 품은 세계

저자 황선엽

빛의서가

2024-11-22

인문학 > 교양 인문학

인문학 > 언어학 > 한국어





사소하다 여겨지는 것들에 궁금증을 품을 줄 알면 더 많은 것들에 관심이 가고 알고 싶어집니다.

사소한 궁금증이 위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얼룩백이(현대 표준어로는 얼룩빼기) 황소'라는 부분입니다. 얼룩백이 황소란 어떤 소를 말하는 걸까요? 얼룩백이 황소 모습을 머릿속에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떠올리려고 가만 생각해보면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무렵 넓은 벌판에서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이 풀을 뜯다 울음을 우는 누런 소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번뜩 생각하게 됩니다.


'가만, 그냥 황소가 아니라 '얼룩백이' 황소잖아?'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누런 소에 얼룩덜룩 덧칠을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왜 시인은 황소도 아니고 얼룩백이 소도 아닌, 얼룩백이 황소라고 했을까요? 얼룩백이 황소란 대체 어떻게 생긴 소일까요?



황소는 누런 소가 아닙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서 "황소가 어떤 소를 말하는 걸까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소의 '황'이 누를 황(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한우의 대표인 누런 소를 두고 황소라고 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사전에서 황소를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황소: <명사> 큰 수소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 떠들썩했던 논란은 겉모습만 보고 원래 의미를 잘 살피지 못했기에 일어났습니다. 하나의 어휘를 살펴볼 때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의미나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살펴볼 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차갑다고 여기거나 냉소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보고 그 사람의 내면을 알아나가다 보면 따듯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참된 의미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지요. 한 사람을 바라볼 때도, 하나의 어휘를 사용할 때도 어떤 삶을 살아오고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걸어왔는지 들여다볼 일입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단어와 말 속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문화와 풍습과 삶의 방식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가 어디에서 유래되어 왜 이렇게 쓰이고 있는지를 알고 나면 주변 풍경이 달리 보이고 사람 사는 세상이 새롭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연하다 생각하던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탐구하며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지요. 매일매일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 유래를 모르는 단어는 아주 많습니다. 그 가운데는 양치질이 있습니다. 양치질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이어지는 문화의 전파와 그 이면에 남아 있는 문화사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근대 이후에는 일본의 영향까지도 고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치는 매우 흥미로운 단어이지요. 양치질이라는 단어 하나에 수천 년의 문화가 녹아들어 있는 셈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사전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전도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뜻풀이가 잘못되어 있는 것도 많지요. 사전 기술하는 사람이 모든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이지는 않으므로 정확한 지식이 없다면 비슷한 다른 풀이를 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전에서 기술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전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가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게 되는 이 동요는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설날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까치설이란 단어를 ‘까치 까치 설날’이라 풀어놓으니 까치설이 마치 '까치의 설날'이라는 의미로 인식되지요. 까치와 설날은 무슨 관계가 있으며 왜 까치 설날을 두고 어저께라고 하는 걸까요? 까치설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면 자주 들으면서도 제대로 뜻을 알 수 없던 이 노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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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개를 키우려는 당신에게

저자 강형욱

혜다

2025-01-15

건강/취미 > 반려동물





자신이 키우는 개가 위험하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는 산책과 운동이 필요한데, 자신은 같이 운동할 힘도 그럴 여유도 없으니 너 혼자 놀다 오라면서 그냥 개를 풀어놓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개가 다른 개나 사람을 공격한다면 이후엔 절대로 풀어놓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인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어린 강아지들은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놀지 않습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기질이 약한 개들만 모였다면 서로를 배려하며 놀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그중에서도 누가 더 강하고 약한지 금세 드러나게 되고, 결국 조금이라도 더 힘이 센 개가 리더가 되어 자기 맘대로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린 강아지들끼리만 놀 경우엔 보호자들이 꼭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개가 다른 개를 보면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꼭 인사를 시키려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사를 한다는 말은 참 듣기 좋습니다. 인사를 한다는 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 중 누구도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낯선 이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겁니다.



반려견을 키우려는 사람들은 좋은 상상만 합니다. 막연히 반려견을 키우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있을 거라고, 사랑만 해 주면 아무 문제 없이 잘 클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를 키우면 자신 또한 행복해질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자라고 생각한다면, 나 자신보다는 내게 온 반려견을 행복하게 잘 살게 해 주는 것이 진정한 보호자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려견은 어쩔 수 없이 동물입니다. 그들에게 생존은 최우선 과제이기에 때로는 이기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신이 보호자에게 이쁨을 받으면 그만이지, 저쪽에 혼자 외롭게 누워 있는 다른 반려견까지 신경을 쓰진 않습니다.

……

반려견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면 상황에 맞게 다른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또한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규율이 있어야 하고, 보호자 자신부터 그 규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반려견의 배변 실수는 버릇없고 나쁜 습관이라기보다, 뭔가 잘못된 상황에 노출되어 벌어진 사고와 같습니다. 규칙적이지 않고 균형이 깨진 삶을 사는 반려견일수록 아무 데나 배변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모든 반려견들이 야외 배변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하루에 최소 4번은 집 밖으로 나가 소변만이라도 보고 들어오길 바랍니다. 물론 이 소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야외 배변을 하다 보면 반려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대부분



반려견은 자신의 보호자를 좋아합니다. 단지 좋아하는 것을 넘어 보호자와 한 몸, 한마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평생 보호자 옆에 살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진짜냐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반려견을 보세요. 뭘 하고 있나요? 아마 당신을 보고 있을 겁니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시죠? 그때 반려견을 보세요. 뭘 하고 있나요? 아마도 당신을 보고 있을 겁니다. 씻고 옷을 입고 외출할 준비를 할 때는요? 이번에도 당신을 보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반려견은 하루 종일 보호자만 쳐다보고 보호자 생각만 합니다. 반려견은 당신의 발걸음만 따라다니는 게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 또한 하루 종일 따라다닙니다.



압박만 하는 훈련법은 정말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호자의 무책임한 태도는 더 좋지 않습니다.

반려견을 어떻게 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반려견을 키우는 보호자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무척 중요합니다.

내가 개를 키워도 되는 사람인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인지, 적절한 환경이 갖춰졌는지 등등을 전부 고려해 봐야 하는 겁니다.

사랑만 해 주면 개가 한없이 착해지고 심지어 사람이 될 걸로 착각하는 보호자들도 많습니다.

개는 절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개는 개로 살아야 행복합니다.

개는 자신을 개로 생각하고 돌봐 주는 보호자를 만나야 잘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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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

저자 신하영

딥앤와이드(Deep&WIde)

2025-01-06

에세이 > 한국에세이





"두고 보세요. 다 잘될 겁니다. 씩씩하게 계세요. 곧 좋은 미래가 찾아올 겁니다. 이렇게만 말해주고 싶은데 인생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당신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겁니다. 시련을 겪으며 보이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내 삶에 더 열정적이고 쉬운 것만 택하는 낙오자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이 이긴 겁니다. 1년 전과 오늘을 비교해 보세요. 우린 더 단단해졌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어른이 됐습니다."



친구야, 나는 가끔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고 싶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게 아니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토마토를 베어 물고, 어딘가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어. 조금 쉰다고 해서 조급함을 느끼거나 해야 할 일을 의무적으로 떠올리기도 싫어. 그냥, 가지고 있는 돈과 내가 가진 시간을 소모하며 적당히 하루를 살아가는 거지. 분명 여백이 가득할 거야. 나를 괴롭히던 강박에서 벗어났으니 말이야.



나는 우리가 더는 단면적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은 넓고 마음속에 일말의 순수함이 남아 있으니 말이야. 너무나 빠른 세상에 뒤처지는 것 같다고 한탄하기보단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못한 내 나약함을 탓하자. 사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우리에게 기회는 다시 올 거야. 그땐 더는 고민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해.


우린 아직 뭐든지 할 수 있어.



괜찮지 않은 내가 묻는 안부는 가림막에 불과하다. 이 부정을 절대 전염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면서도 아등바등 사는 나를 누가 좀 알아봐 주고 다독여줬으면 싶다. 모순에 모순이 더해져 망가진 감정 상태가 무르익으면 내가 경멸스러워 코가 시릴 정도다. 그때 알았다. 예민함의 끝에 도달하면 그냥 눈물이 나오는구나. 너무 나약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구나.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잡념에 빠지다 늦은 새벽에 겨우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 표독스러운 피로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더 이상의 방도는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점심을 먹고 일하다 허공을 응시하면 빨리 감기를 하듯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책상에 있는 노트에서 예전에 적어놓은 한 명언을 발견한다.


"예민한 마음은 상처받기 쉬우나,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_엘리자베트 길버트



멀쩡했던 사람이 꼴 보기 싫어지면 당신은 지친 상태다. 그 사람이 미울 리 없는데 자꾸 날이 서면 당신은 나약해진 상태다. 고요한 곳에서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가볍게 목을 축여라. 편안한 곳에 앉아 부풀어오는 폐를 느끼며 호흡하는 거다. 자연이라면 더 좋다. 인간이 아닌 무해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정화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리고 내가 뱉은 말을 후회하자.


모두가 그대로였다. 당신만 아주 잠시 변했을 뿐.



잃어버린 궤도를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하려고 했던 운동, 옷 정리, 창문 열고 청소기 밀기, 읽고 싶었던 책 프롤로그를 읽거나 재료를 꺼내 요리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 등. 하나라도 나를 위한 일을 하면 우울이 말끔히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소하다고 미루지 말길. 그 작은 행동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태어나서 산다는 말을 좋아한다. 왜 사는지를 곱씹다 보면 인간은 금방 우울에 빠진다. 사는 데 휘황찬란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만큼 피로한 게 없다.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를 하듯 태어난 김에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닌가.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같은 생각도 마찬가지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으니 하는 거지 세상에 이유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것. 과한 의미 부여는 모든 걸 덧없이 만든다.



지지부진하지만 마음속에 작은 목표라도 있는 게 좋은 거다. 어떨 때 목표는 내 유일한 희망 같아서 노력을 안 할 수 없게 한다. 정답이 없어도 살아야 하는 현실. 나는 당신이 낭만과 꿈을 어딘가에 가득 심어놓은 것을 안다. 벅차더라도 계속 무언갈 계획해 보자. 아무도 모르게 해도 되고 온 세상에 자랑을 해도 좋다. 계절이 바뀌면 후회보단 결정체가 더 많이 남아있을 거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그걸로 된 거다. 불행에 고꾸라지지 않고 여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가치 있다.



사랑을 시작하면 사소한 취향들이 마구 섞이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이 싫었던 사람이 여우비쯤은 기분 좋게 맞을 수 있게 되고, 식견이 좁던 사람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 음식을 해 먹는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주말에 낮잠을 자는 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서로를 닮아가서일 테다. 사랑은 포용에서 시작되고 안정감으로 견고해진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혼자서 불행을 견디는 방법은 대게 이러하다.

행복을 기대하지 않은 것, 실패한 과거를 떠올리지 않는 것, 남의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 5분이라도 사색에 잠기는 것, 찰나의 감정으로 하루를 망치지 않는 것,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사는 것, 사랑에 냉소하지 않는 것, 잠을 7시간 이상 자는 것, 끼니를 절대 거르지 않는 것, 여행을 계획하는 것, 내면의 감정을 글로 쓰는 것, 억울함을 가지지 않는 것, 계절에 맞는 옷을 사는 것, 주변 정리를 하는 것, 강아지 영상을 보는 것, 발걸음이 가는 곳으로 산책하는 것, 초콜릿을 먹는 것, 결점을 채우는 책을 읽는 것.



당신은 당신이라 예쁘지 그 사람이 예쁘다고 해서 예쁜 게 아니다. 또 당신은 부족하기에 인간다운 것이지, 상대가 별로라고 해서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이 하는 감상에 젖지 말고, 시장의 물건처럼 평가받지 말자. 우린 불꽃처럼 역동적이며 찬란히 빛이 나는 생기 있는 존재다.


아름답다의 '아름' 뜻이 '나'의 뜻을 담고 있듯, 그대가 비로소 모든 껍데기를 벗고 온전히 나일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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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저자 피터 엘보

페르아미카실렌티아루네

2024-11-11

인문학 > 책읽기 > 글쓰기

인문학 > 교양 인문학





내가 아는 한 글쓰기 실력을 늘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규칙적으로 무작정 쓰기(freewriting)를 실천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해야 한다. 무작정 쓰기는 때로는 무의식적 글쓰기' '지껄이기' '수다 떨기' 라고도 한다. 이것은 10분 동안 그냥 쓰는 것이다. (나중에는 15분이나 20분으로 늘려도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면 안 된다. 조급해 하지 말고 그냥 써 내려가면 된다. 앞으로 되돌아가거나, 쓴 것을 지우거나, 맞춤법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거나, 어떤 단어나 생각을 써야 할지 고민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면 안 된다. 쓸 단어나 맞춤법이 생각나지 않거든 그냥 물결 표시를 하거나 "생각이 안 난다"라고 쓴다. 그냥 뭔가를 적으라. 가장 쉬운 요령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다. 생각이 꽉 막히면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몇 번이고 쓴다. 아니면 마지막으로 쓴 단어를 반복해서 써도 되고 아무 단어나 써도 좋다. 단 한 가지 철칙은 '절대'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무작정 쓰기는 아무 소용없는 짓 같지만 분명한 가치가 있다. 말하기와 글쓰기의 차이를 생각해보라. 글쓰기는 교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어가 의식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것을 연필이나 타자기를 통해 지면에 옮기는 순간까지 머릿속에서 복잡한 교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것은 글을 쓸 때 '실수'에 집착하게 만든 교육 탓도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쓸 때 끊임없이 맞춤법과 문법을 의식한다.



무작정 쓰기의 요점은 쓰는 동안 교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단어를 떠올리는 일과 그 단어를 종이에 적는 일을 동시에 하는 연습이다. 규칙적으로 실천하면, 글을 쓰면서 동시에 교정을 하려는 뿌리 깊은 습관을 없앨 수 있다. 이 연습을 하면 글이 덜 막히는데, 그 이유는 단어가 더 쉽게 나오기 때문이다. 종이는 더 많이 쓰겠지만 연필을 씹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작정 쓴 글의 통일성 있는 부분에서는, 다시 말해 당신의 정신이 최고조인 상태에서 생명력 있는 문장이 나온 부분에서는, 우리가 심사숙고해서 이를 수 있는 수준보다 의미의 통합이 더 정교한 수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일을 말로 하거나 글로 쓰다 보면 다른 어느 때보다 조화롭고 명료한 문장이 나온다. 이때는 구상을 해서 한 문장씩 써 나갈 필요가 없다. 그의 마음이 부족함 없이 담기기 때문이다. 문장에 담긴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게 짜맞춰지고 온전하게 통합된다. 그의 마음이 문장에 작용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장이 그의 전체적인 자아를 통과하며 걸러졌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런 글에서는 기계적인 조작이 느껴지지 않고 기어가 변속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어가 바뀔 때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유기적이다. 그것은 마치 각 부분이 희미하게 전체를 포함하는 홀로그램처럼 단어 하나하나에 해당 문장의 의미가 모두 스며들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아주 간단하다. 평소에 무작정 쓰기를 한다면 그중 많은 글들이 혹은 대부분의 글들이 공들여 쓰고 고친 것들보다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중 좋은 대목들은 우리가 갖은 수단을 써서 써낼 수 있는 글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진심으로 글 쓰는 솜씨를 늘리고 싶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매일 무작정 쓰기로 일기를 대신하는 것이다. 하루에 10분만 쓰면 된다. 하루 일을 전부 적을 필요는 없고, 그냥 그날 하루의 단상을 간단히 적는 것이다. 심사숙고할 필요도 없고, 그냥 그날 하루의 단상을 간단히 적는 것이다. 심사숙고할 필요도 없고, 준비할 것도 없고,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없어도 된다. 멈추지 말고,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무작정 적어보자.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마음이 내키든 그렇지 않든.



글쓰기는 말하고 싶은 내용을 언어로 옮기는 2단계 작업이 아니라, 유기적(organic)으로 발달해 가는 과정이다. 자신이 쓰고 싶은 게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라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글은 점차 변화하고 진화한다. 글을 다 쓰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또는 그 내용과 어울리는 단어가 어떤 건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글을 시작할 때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글이 끝날 거라고 예상해야 한다. 글쓴이의 의도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가 아니라 글을 다 썼을 때 드러나는 법이다. 통제력과 통일성, 자신의 생각을 파악하는 일은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필요한 게 아니라 글을 다 썼을 때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글쓰기를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발전시키고 요리하는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 글쓰기는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 뭔가를 생각나게 하는 수단이다. 사실 글쓰기는 언어를 통해 현재의 생각과 느낌과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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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1-19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피터 엘보의 다른 책 ‘힘 있는 글쓰기‘를 잘 읽었거든요 그래서 이 저자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댓글 남겨봅니다~

하나의책장 2025-02-04 20:05   좋아요 1 | URL
서곡님,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올해 건강하고 평안한 날들만 가득하시길..ෆ
 

오리아나는 다시 플라이 브릿지로 올라가려다가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사다리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갑판으로 떨어진다. 잠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가 눈을 떴을 때 햇빛을 막고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잠수복을 착용한 괴한은 쇠꼬챙이인지 부지깽이인지 모를 무기를 손에 들고 있다.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오리아나는 괴한의 정체를 알아보았고, 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든다. 그녀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괴한이 휘드른 쇠꼬챙이가 머리와 목을 가격했고, 오리아나는 마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갑판을 적시는 동안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하염없이 울려 퍼진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오리아나 디 피에트로는 저명한 기업가 카를로 디 피에트로의 딸이다. 1984년 6월 18생인 그녀는 이복동생 스테파노보다는 아홉 살 연상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실험영화센터를 졸업한 오리아나는 학창 시절에 모델로 활동했다. 이후에는 2005년 《RAI(이탈리아 공영방송)》에서 지역 문화계 소식을 전하는 프리랜서 기자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뒤 줄곧 해외 특파원을 지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체첸공화국의 전쟁 당시에는 종군기자로 명성을 떨쳤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보코 하람의 반란, 멕시코 정부가 펼친 마약과의 전쟁, 수단 다르푸르에서 자행된 참혹한 인종 학살 등을 다룬 기사를 기고해 세계 전액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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