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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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점

저자 이비 우즈

인플루엔셜(주)

2024-07-30

원제 : The Lost Bookshop (2023년)

소설 > 세계의 소설 > 아일랜드소설





오펄린의 이야기


때는 1921년 런던.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한 어머니와 전쟁에서 파편에 맞아 오른쪽 반신이 일그러진 열 여덟 살이나 많은 오빠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기가 막힙니다.

어느 날, 오빠는 이제 막 가업을 물려받은 덜 떨어진 남자에게 시집가라는 말을 꺼냅니다.

"놓치지 아까운 신랑감이야. 아버지 연금으로 어머니가 빠듯하게 살림을 꾸리고 계시잖아. 이제 너도 책은 그만 보고 현실을 직시해."

섬찟한 오빠의 눈빛에 무서움을 느낀 나는 아버지가 사준 「폭풍의 언덕」 초판본을 꼭 쥐며 자신이 짐이라면 나갈 테니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자 오빠는 아프게 팔을 움켜쥐게 되는데, 버둥거려봤자 어머니는 못 본 척하고 오빠는 더욱 더 움켜쥔 손에 힘을 주니 일단 만나보겠다고 답합니다.


「폭풍의 언덕」과 「파리의 노트르담」 양장본을 살펴보다 아버지가 남긴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본 가게 주인 터튼은 이를 팔라고 얘기합니다.

앞서 두 책은 그나마 후하게 쳐서 2파운드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 잘 보존된 희귀본인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가치를 안 터튼은 15파운드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는 터튼에게 5파운드 더 얹어 20파운드로 값을 부릅니다.

터튼이 그 정도의 액수를 지불하거라 생각한데다 훗날 이 책을 반드시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등을 돌렸을 때 나는 「폭풍의 언덕」을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고 서점을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나'의 서적상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서의 이야기


이 나라의 반대편, 어느 마을 외곽의 버스 정류장에서 더블린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보안 시설에서 탈출한 것만 같은 행색을 한 마사는 무작정 더블린으로 향했습니다.

가장 싼 토스트와 커피를 먹으며 지방 신문에서 일을 알아보던 그때 눈에 띄는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입주 가정부]

마서는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향했고 깃털 목도리를 두르고 다이아 귀걸이를 한 보든 부인을 마주하게 됩니다.

입주 가정부가 머물게 될 지하로 안내하는 보든 부인을 따라간 마서는 간이 부엌과 작은 욕실, 벽지는 낡았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마음에 들어 보든 부인 저택에서 가정부로 일을 하게 됩니다.

다음 날, 옷을 갈아입으려고 보니 창문에서 부츠를 신은 두 다리가 보였고 이리저리 반원을 그리듯 움직이자 마서는 뭐하는 거냐고 언짢아합니다.

주저앉아 불쑥 얼굴을 내민 그의 이름은 헨리, 맹세코 훔쳐보지 않았고 뭘 좀 찾느라 움직였다고만 합니다.

그때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천장을 뚫고 나온 철사에 매달린 구식종이 울린 것이었습니다.



헨리의 이야기


일기장에 쓴 존재하지 않는 서점에 대해 생각하던 헨리는 이틀째 왔던 펍에 앉아 맥주잔을 감싸 쥐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희귀본 수집가가 서점 주인인 오펄린이라는 여성에게 잃어버린 원고를 언급했다는 편지 한 통만이 단서입니다.

고서를 향한 사랑을 직업으로 인정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는데 경매장에서 우연히 낙찰받은 편지 한 통을 단서 삼아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면 희귀본 세계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작은 단서라도 찾아 헤매던 그때 헨리는 그 여자, 마서를 만나게 됩니다.

파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것이 화난 기색, 아니 꼭 겁먹은 기색이었습니다.

흉하게 진 멍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것 보니 험한 꼴을 당한 것처럼 보였지요.

희한한 것은 그녀의 등에 새겨진 커다란 문신이었습니다. 문양은 아니지만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빼곡했지요.


행방불명된 서점을 본 적 있나요?

혹시 당신 집이 그 서점을 집어삼켰나요?

혹시 시간 되면 저녁 같이 먹을래요?


헨리는 그녀가 서점에 대해 뭐라도 알까 싶어 얼마 안 되는 매력을 쥐어짜서라도 그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라진 서점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도망쳐 서점이 있던 저택에서 입주 가정부로 일하게 된 마서와 사라진 작품을 찾아 헤매는 헨리의 이야기입니다.

헨리가 더블린에 처음 도착하던 날 한 서점을 보게 되었는데 그 서점이 이내 사라지게 됩니다. 사라진 서점을 찾아 헤매던 중 나타난 마서.

헨리는 마서와 함께 오펄린의 행적과 함께 사라진 작품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하게 됩니다.

헨리가 마서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녀의 등에서 문신을 보게 되었었는데, 이는 마서가 가진 능력의 하나였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등에 새겼던 것이지요.

마서를 고용한 보든 부인도 그저 과다망상이 심한 80대 노인이라고 하기엔 신비스러운 인물입니다.

즉, 사라진 서점을 찾는 여정은 미스터리하고도 신비로움이 가득합니다.





헨리와 마서 그리고 오펄린의 이야기를 통해 사라진 서점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해보았습니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딱 딱 맞춰져가는 스토리에 놀라움을 금치못했죠.

그저 입주 가정부를 구하는 것 같았던 보든 부인도, 신문에서 [입주 가정부]라는 글을 발견하게 된 마서도, 마서를 마주하게 된 헨리까지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기엔 필연같은 우연이었습니다.


또한 신비로움 속에 사랑 이야기도 녹아져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보존한 것만 같은 펍에서 맥주를 마신 헨리와 마서.

완벽한 인생처럼 보였지만 헨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헨리에게 털어놓게 됩니다.

이가 부러진 것은 애교였습니다. 갈비뼈가 두 번이나 부러지고 신장을 여러 번 다쳤다는 고백에 헨리는 겁에 질린 표정까지 내보였죠.

여전히 따뜻하게 맞잡아준 손을 보니 헨리가 마서를 잘 지켜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각의 인물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왔다갔다 할 필요없이 읽으면 됩니다.

잃어버린 서점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도 여운 깊었고 스토리도 순탄하게 흘러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여름 휴가에 들고 갈 만한 책으로 추천합니다.


방에 나타난 책을 읽기 시작한 마서는 어떠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마서를 입주 가정부로 들인 보든 부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헨리와 마서의 사랑은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헨리와 마서는 잃어버린 서점을 과연 찾을 수 있을지,

그 모든 것들의 답은 『사라진 서점』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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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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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점
저자 이비 우즈
인플루엔셜(주)
2024-07-30
원제 : The Lost Bookshop (2023년)
소설 > 세계의 소설 > 아일랜드소설




✒️
추운 겨울날 비 내리는 더블린 거리는 어린 아이가 어슬렁거릴 만한 곳이 아니지만, 소년은 그 매혹적인 서점의 유리창에서 얼굴을 떼지 못했다. 안에서는 불빛이 반짝이고, 알록달록한 책 표지들이 모험담과 탈출기를 약속하며 소년을 유혹했다. 진열창 안에는 진기한 물건이며 아기자기한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장난감 열기구들은 천장에 닿을 듯하고, 오르골 속 기계 새와 회전목마 들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았다. 서점에 있던 여자가 소년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불렀다.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 지각하는데.˝ 소년은 유리창 너머 여자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아주 상냥한 사람 같았다.
˝그럼 1분만.˝


✒️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책은 그저 종이에 적힌 글이 아니라, 다른 장소, 다른 삶으로 통하는 입구라고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책과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는 오롯이 아버지 덕분이었다.
˝고개를 기울이면 말이다.˝ 한번은 아버지가 말했다. ˝옛날 책들이 비밀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단다.˝
나는 송아지 가죽 표지에 종이가 누렇게 바랜 고서 한 권을 책장에서 찾아냈다. 책을 귀에 바짝 붙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작가가 내게 말하려 하는 중요한 비밀이 들린다고 상상하면서.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말은.
˝뭐가 들리니?˝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귓속이 소리로 가득 메워지도록 기다렸다.
˝바닷소리가 들려요!˝
마치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댄 것처럼 종잇장들 사이로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한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종이들이 숨을 쉬고 있는 거예요, 아빠?˝
˝그렇단다, 이야기가 숨 쉬고 있는 거지.˝


✒️
˝잔해요! 잔해를 찾고 있는데……˝
˝세상에, 여기서 누가 죽었어요?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섬뜩하더라니. 여기 도착하자마자…….˝
아니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유해가 아니라.˝ 그는 고개를 낮게 숙여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기요, 수상하게 들리겠지만, 맹세코 나쁜 일이 아니에요. 그저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래요.˝


✒️
던 씨는 10번지와 12번지 사이의 버려진 공터를 가리켰다.
˝아니, 여기…… 없네요! 그러니까, 여기가 맞지만 없네요.˝ 그는 요란스레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참았다.
도시계획 담당자인 그는 내가 몇 주 동안 끊임없이 걸어댄 전화에 시달리다 마지못해 현장 방문에 응해주었다.
˝좋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는 내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보내드린 지도를 보셨겠지만, 바로 여기에 가게가 있었잖아요?˝
˝네, 그 지도는 저도 봤습니다만, 필드 씨, 전화로도 설명드렸다시피 이 부지에 어떤 건물이 공식적으로 등록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 건물 빼고는요.˝ 그는 이웃집을 가리켰다.
˝하지만 저긴 12번지잖아요.˝
˝바로 그겁니다. 11번지는 없어요.˝


✒️
한밤중에 새로운 글귀가 떠올라 잠에서 깨어났다. 이메일 수신함의 알림처럼, 이야기는 가끔 이렇게 날 찾아와 잠재의식에 속삭이곤 했다. 그 원리는 나도 설명할 수 없다. 어떻게든 그 이야기를 꼭 붙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뿐. 종이에 적어두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다음 날 문신 시술소를 찾아가 등에 잉크로 새겨두자고 마음먹었다. 그 이야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는 듯했지만, 매번 새로운 문장이 날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내 살갗에 다른 문장들과 나란히 잉크로 새겨두면 곧장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는 셰인도. 그건 소소한 반항이었다. 나만의 무언가를 갖는 것. 이 기묘한 이야기를 용케도 잘 숨겨왔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의미가 뭔지, 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
나뭇가지가 창문을 긁어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났다. 바깥 거리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으므로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잠시 일어나 앉아 있다가 위쪽 가게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벽의 스위치를 탁 쳤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젊은 피츠패트릭 씨가 경고하기를, 이 건물이 ‘변덕’을 부릴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도, 지갑을 둔 식탁에 놓여 있던 양초가 떠올랐다. 조심조심 방을 가로질러 식탁으로 가서 이리저리 더듬다 양초 옆에 있는 작은 성냥갑을 찾았다. 이내 방은 어둠에서 벗어났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피츠패트릭 씨가 페인트로 써놓은 단어들을 읽었다. ‘길 잃은 곳에서 기묘한 것들이 발견된다.’ 이상야릇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는 잠깐 멈춰 섰다. 소리의 정체를 발견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강도가 든 거라면? 그때, 바람에 흔들리는 가시덤불처럼,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
당시에 세 작품 모두 한 남성이 쓴 것이라는 억측이 떠돌았다. 물론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고, 샬럿과 앤이 직접 런던까지 가서 확인해주었다. ‘우린 세 자매입니다.‘ 하지만 에밀리는 필명의 익명성을 고수하고 싶었는지 집에 남아 있었다. 다른 두 자매와 달리 에밀리는 런던 문학계의 인정을 바라지 않았고, 코틀리의 탐욕스러운 행동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듯 코틀리 또한 그의 본성에 충실한 거라고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
아주 다르게 펼쳐질 미래를 마냥 아름다운 모습으로 상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날은 늦게 서점 문을 열었지만, 인생의 첫날을 맞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빛났고, 모든 것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이 사람은 옛날에 어떤 아이였을까, 앞으로 어떤 부모가 될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우리 모두 하나의 우주적 가족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내 안에서 조그만 장미꽃 봉오리처럼 자라고 있는 생명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 존재만으로 세상을 더 밝은 곳으로 만들어줄,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생명체.


✒️
우리는 그날 밤을 병원에서 함께 보냈다. 우리가 만들어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형과 누나가 만들어낸 작은 기쁨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다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그 아이가 우리보다는 나은 삶을 경험하리라 확고히 믿는 듯했다. 아이를 위해 우리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그 여정이 이미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래서 새 생명을 기적이라 부르나 보다. 모든 걸 바꿀 힘을 지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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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멀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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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그리움



마르지 않는

한 방울의

잉크빛 그리움이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출렁입니다


지우려 해도

다시 번져오는

이 그리움의 이름이

바로 당신임을

너무 일찍 알아 기쁜 것 같기도

너무 늦게 알아 슬픈 것 같기도


나는 분명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잘 모르듯이

내 마음도 잘 모름을

용서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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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저자 이인우

파람북

2024-07-12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일본문화

여행 > 일본여행 > 문화/역사기행





교토의 벚꽃은 3월 말부터 4월 초순이 절정이다. 일본인들도 교토만큼 벚꽃이 잘 어울리는 도시가 없다고들 한다. 그런 교토에서 봄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하는 게 좋을까. 기행기를 묶어 책을 펴내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인,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문학’인 교토. 그 천년의 시공간을 거니는 인문 기행을 어디부터 안내하면 좋을까. 필자의 선택은 바로 이곳이다.



만약 여러분이 교토에서 딱 한 곳,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티켓을 가진다면 나는 가쓰라리큐 별장을 추천하고 싶다. 17세기 일본 황실 이궁인 가쓰라리큐는 '정원의 나라' 일본에서도 첫손에 꼽는 정원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종합예술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 별장을 사전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다.



슈가쿠인리큐는 가쓰라리큐와 더불어 에도시대 황실정원의 쌍벽을 이룬다. 가쓰라리큐가 고도의 심미안을 바탕으로 한 슈쿠케(축경, 자연경관을 본떠 정원 안에 꾸민 풍경)로 인공미의 한 정점을 이뤘다면, 슈가쿠인리큐는 드넓은 공간에 주위 경관을 끌어넣은 샷케(차경, 주벼 경치를 정원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일)의 수법으로 장대한 자연미를 연출한다. 어느 한쪽을 감상한 사람이라면 나머지 한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문화는 이때를 계기로 금각 같은 화려미보다는 은각류의 이른바 '쓰야케시'(광택을 벗긴 상태)의 소박하고 고졸한 세계를 추구하는 흐름으로 바뀌어갔다고 한다. '와비侘び'(간소하며 질박한 멋), '사비寂び'(고요하고 한적한 멋) 같은 용어로 대표되는 근세 이후 일본적 미의식의 원류가 바로 은각이었다는 것이다.



'역사문화관광도시' 교토의 랜드마크는 어디일까?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교토시 남쪽 시모교구에 있는 교토역과 역광장 앞에 우뚝 선 교토타워가 될 것 같다. 고대에는 이 역할을 도지東寺(동쪽의 절)와 55m 높이의 도지 5층탑이 했을 것이다. 옛날에 오사카와 나라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은 멀리 5층탑 꼭대기가 아스라이 보이면 ‘교토가 가까웠음’을 알았다고 한다. 거대한 초현대식 건물인 '교토에키비루'(교토역 빌딩) 옥상정원에서는 남서쪽으로 이 도지 5층탑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교토라는 역사지도에서 절과 신사를 지우면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오롯이 길(일본어로 도리)이 두드러질 것이다.

…… 교토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최소 한 번 이상은 걷게 되는 곳이 시조가와라마치 네거리 일대이다.



기타노텐만구는 해마다 2월 매화축제가 열릴 만큼 매화가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오모이노마마라는 꽃말을 가진 품종의 매화나무 가지에 '오모이노마마'(생각한 대로)라는 글귀를 매달아 1천 엔(1만 원)에 팔고 있었다. 스가와라의 상징꽃이기도 한 매화 가지에 "생각한 대로 꽃을 피울 것"이란 암시를 담았으니 참으로 기막힌 발상이자 상술이 아닐 수 없다. 필자도 오모이노마마 한 가지를 사들고 경내를 돌며 세상의 모든 청년을 위해 ‘뜻한 대로 이루소서’를 외어주었다.



그 난젠지 앞에도 교토시민이 즐겨 찾는 명소가 있다. 난젠지 진입로 한편에 선류船溜(배를 띄우는 물길)와 수로가 보이고 반대쪽은 선류와 연결된 폐철길이다. 고저차 약 36m, 길이 582m의 긴 오르막 철길을 벚나무들이 뒤덮고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 ‘사진발’ 좋기로 이름나 있다. 기모노로 한껏 멋을 내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사이로 인클라인(화물차를 끌어올리고 내리기 위해 만든 경사철도)을 걸어 오르면, 꼭대기 부근에 수력발전(옛 게아게발전소)과 정수시설 등이 보이고, 큰 벚나무 아래 한 젊은 청년의 동상이 서 있다.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시바 료타로는 유년 시절 외가 동네에서 만난 젊은 발굴 학자에게서 "이런 비슷한 것이 조선에서도 나와"라는 말을 듣고 문득 시야가 넓어지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20대에는 전차부대 소대장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깊은 자괴를 느끼며 '어쩌다 일본이 이런 나라가 되었느냐' 며 통곡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소설의 일관된 주제이기도 한 '일본인의 원형'으로서 고대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천착,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혐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하는 자이니치들에 대한 부채감과 연대의식이 그로 하여금 정씨 형제의 '무모한 도전'에 기꺼이 동참하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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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8-0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일본으로 여행가는 분들 많으시다고 들었어요. 교토는 오랜시간 수도였던 도시여서 문화재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여행가기 전에 미리 읽고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책장님, 주말 날씨가 많이 덥다고 합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