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저자 이인우
파람북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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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벚꽃은 3월 말부터 4월 초순이 절정이다. 일본인들도 교토만큼 벚꽃이 잘 어울리는 도시가 없다고들 한다. 그런 교토에서 봄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하는 게 좋을까. 기행기를 묶어 책을 펴내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인,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문학’인 교토. 그 천년의 시공간을 거니는 인문 기행을 어디부터 안내하면 좋을까. 필자의 선택은 바로 이곳이다.
만약 여러분이 교토에서 딱 한 곳,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티켓을 가진다면 나는 가쓰라리큐 별장을 추천하고 싶다. 17세기 일본 황실 이궁인 가쓰라리큐는 '정원의 나라' 일본에서도 첫손에 꼽는 정원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종합예술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 별장을 사전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다.
슈가쿠인리큐는 가쓰라리큐와 더불어 에도시대 황실정원의 쌍벽을 이룬다. 가쓰라리큐가 고도의 심미안을 바탕으로 한 슈쿠케(축경, 자연경관을 본떠 정원 안에 꾸민 풍경)로 인공미의 한 정점을 이뤘다면, 슈가쿠인리큐는 드넓은 공간에 주위 경관을 끌어넣은 샷케(차경, 주벼 경치를 정원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일)의 수법으로 장대한 자연미를 연출한다. 어느 한쪽을 감상한 사람이라면 나머지 한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문화는 이때를 계기로 금각 같은 화려미보다는 은각류의 이른바 '쓰야케시'(광택을 벗긴 상태)의 소박하고 고졸한 세계를 추구하는 흐름으로 바뀌어갔다고 한다. '와비侘び'(간소하며 질박한 멋), '사비寂び'(고요하고 한적한 멋) 같은 용어로 대표되는 근세 이후 일본적 미의식의 원류가 바로 은각이었다는 것이다.
'역사문화관광도시' 교토의 랜드마크는 어디일까?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교토시 남쪽 시모교구에 있는 교토역과 역광장 앞에 우뚝 선 교토타워가 될 것 같다. 고대에는 이 역할을 도지東寺(동쪽의 절)와 55m 높이의 도지 5층탑이 했을 것이다. 옛날에 오사카와 나라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은 멀리 5층탑 꼭대기가 아스라이 보이면 ‘교토가 가까웠음’을 알았다고 한다. 거대한 초현대식 건물인 '교토에키비루'(교토역 빌딩) 옥상정원에서는 남서쪽으로 이 도지 5층탑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교토라는 역사지도에서 절과 신사를 지우면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오롯이 길(일본어로 도리)이 두드러질 것이다.
…… 교토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최소 한 번 이상은 걷게 되는 곳이 시조가와라마치 네거리 일대이다.
기타노텐만구는 해마다 2월 매화축제가 열릴 만큼 매화가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오모이노마마라는 꽃말을 가진 품종의 매화나무 가지에 '오모이노마마'(생각한 대로)라는 글귀를 매달아 1천 엔(1만 원)에 팔고 있었다. 스가와라의 상징꽃이기도 한 매화 가지에 "생각한 대로 꽃을 피울 것"이란 암시를 담았으니 참으로 기막힌 발상이자 상술이 아닐 수 없다. 필자도 오모이노마마 한 가지를 사들고 경내를 돌며 세상의 모든 청년을 위해 ‘뜻한 대로 이루소서’를 외어주었다.
그 난젠지 앞에도 교토시민이 즐겨 찾는 명소가 있다. 난젠지 진입로 한편에 선류船溜(배를 띄우는 물길)와 수로가 보이고 반대쪽은 선류와 연결된 폐철길이다. 고저차 약 36m, 길이 582m의 긴 오르막 철길을 벚나무들이 뒤덮고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 ‘사진발’ 좋기로 이름나 있다. 기모노로 한껏 멋을 내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사이로 인클라인(화물차를 끌어올리고 내리기 위해 만든 경사철도)을 걸어 오르면, 꼭대기 부근에 수력발전(옛 게아게발전소)과 정수시설 등이 보이고, 큰 벚나무 아래 한 젊은 청년의 동상이 서 있다.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시바 료타로는 유년 시절 외가 동네에서 만난 젊은 발굴 학자에게서 "이런 비슷한 것이 조선에서도 나와"라는 말을 듣고 문득 시야가 넓어지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20대에는 전차부대 소대장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깊은 자괴를 느끼며 '어쩌다 일본이 이런 나라가 되었느냐' 며 통곡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소설의 일관된 주제이기도 한 '일본인의 원형'으로서 고대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천착,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혐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하는 자이니치들에 대한 부채감과 연대의식이 그로 하여금 정씨 형제의 '무모한 도전'에 기꺼이 동참하게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