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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7월
평점 :
사라진 서점
저자 이비 우즈
인플루엔셜(주)
2024-07-30
원제 : The Lost Bookshop (2023년)
소설 > 세계의 소설 > 아일랜드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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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날 비 내리는 더블린 거리는 어린 아이가 어슬렁거릴 만한 곳이 아니지만, 소년은 그 매혹적인 서점의 유리창에서 얼굴을 떼지 못했다. 안에서는 불빛이 반짝이고, 알록달록한 책 표지들이 모험담과 탈출기를 약속하며 소년을 유혹했다. 진열창 안에는 진기한 물건이며 아기자기한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장난감 열기구들은 천장에 닿을 듯하고, 오르골 속 기계 새와 회전목마 들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았다. 서점에 있던 여자가 소년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불렀다.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 지각하는데.˝ 소년은 유리창 너머 여자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아주 상냥한 사람 같았다.
˝그럼 1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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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책은 그저 종이에 적힌 글이 아니라, 다른 장소, 다른 삶으로 통하는 입구라고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책과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는 오롯이 아버지 덕분이었다.
˝고개를 기울이면 말이다.˝ 한번은 아버지가 말했다. ˝옛날 책들이 비밀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단다.˝
나는 송아지 가죽 표지에 종이가 누렇게 바랜 고서 한 권을 책장에서 찾아냈다. 책을 귀에 바짝 붙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작가가 내게 말하려 하는 중요한 비밀이 들린다고 상상하면서.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말은.
˝뭐가 들리니?˝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귓속이 소리로 가득 메워지도록 기다렸다.
˝바닷소리가 들려요!˝
마치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댄 것처럼 종잇장들 사이로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한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종이들이 숨을 쉬고 있는 거예요, 아빠?˝
˝그렇단다, 이야기가 숨 쉬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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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요! 잔해를 찾고 있는데……˝
˝세상에, 여기서 누가 죽었어요?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섬뜩하더라니. 여기 도착하자마자…….˝
아니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유해가 아니라.˝ 그는 고개를 낮게 숙여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기요, 수상하게 들리겠지만, 맹세코 나쁜 일이 아니에요. 그저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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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씨는 10번지와 12번지 사이의 버려진 공터를 가리켰다.
˝아니, 여기…… 없네요! 그러니까, 여기가 맞지만 없네요.˝ 그는 요란스레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참았다.
도시계획 담당자인 그는 내가 몇 주 동안 끊임없이 걸어댄 전화에 시달리다 마지못해 현장 방문에 응해주었다.
˝좋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는 내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보내드린 지도를 보셨겠지만, 바로 여기에 가게가 있었잖아요?˝
˝네, 그 지도는 저도 봤습니다만, 필드 씨, 전화로도 설명드렸다시피 이 부지에 어떤 건물이 공식적으로 등록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 건물 빼고는요.˝ 그는 이웃집을 가리켰다.
˝하지만 저긴 12번지잖아요.˝
˝바로 그겁니다. 11번지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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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새로운 글귀가 떠올라 잠에서 깨어났다. 이메일 수신함의 알림처럼, 이야기는 가끔 이렇게 날 찾아와 잠재의식에 속삭이곤 했다. 그 원리는 나도 설명할 수 없다. 어떻게든 그 이야기를 꼭 붙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뿐. 종이에 적어두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다음 날 문신 시술소를 찾아가 등에 잉크로 새겨두자고 마음먹었다. 그 이야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는 듯했지만, 매번 새로운 문장이 날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내 살갗에 다른 문장들과 나란히 잉크로 새겨두면 곧장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는 셰인도. 그건 소소한 반항이었다. 나만의 무언가를 갖는 것. 이 기묘한 이야기를 용케도 잘 숨겨왔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의미가 뭔지, 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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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가 창문을 긁어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났다. 바깥 거리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으므로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잠시 일어나 앉아 있다가 위쪽 가게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벽의 스위치를 탁 쳤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젊은 피츠패트릭 씨가 경고하기를, 이 건물이 ‘변덕’을 부릴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도, 지갑을 둔 식탁에 놓여 있던 양초가 떠올랐다. 조심조심 방을 가로질러 식탁으로 가서 이리저리 더듬다 양초 옆에 있는 작은 성냥갑을 찾았다. 이내 방은 어둠에서 벗어났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피츠패트릭 씨가 페인트로 써놓은 단어들을 읽었다. ‘길 잃은 곳에서 기묘한 것들이 발견된다.’ 이상야릇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는 잠깐 멈춰 섰다. 소리의 정체를 발견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강도가 든 거라면? 그때, 바람에 흔들리는 가시덤불처럼,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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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세 작품 모두 한 남성이 쓴 것이라는 억측이 떠돌았다. 물론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고, 샬럿과 앤이 직접 런던까지 가서 확인해주었다. ‘우린 세 자매입니다.‘ 하지만 에밀리는 필명의 익명성을 고수하고 싶었는지 집에 남아 있었다. 다른 두 자매와 달리 에밀리는 런던 문학계의 인정을 바라지 않았고, 코틀리의 탐욕스러운 행동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듯 코틀리 또한 그의 본성에 충실한 거라고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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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다르게 펼쳐질 미래를 마냥 아름다운 모습으로 상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날은 늦게 서점 문을 열었지만, 인생의 첫날을 맞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빛났고, 모든 것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이 사람은 옛날에 어떤 아이였을까, 앞으로 어떤 부모가 될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우리 모두 하나의 우주적 가족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내 안에서 조그만 장미꽃 봉오리처럼 자라고 있는 생명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 존재만으로 세상을 더 밝은 곳으로 만들어줄,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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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날 밤을 병원에서 함께 보냈다. 우리가 만들어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형과 누나가 만들어낸 작은 기쁨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다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그 아이가 우리보다는 나은 삶을 경험하리라 확고히 믿는 듯했다. 아이를 위해 우리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그 여정이 이미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래서 새 생명을 기적이라 부르나 보다. 모든 걸 바꿀 힘을 지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