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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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저자 김소월

문예출판사

2023-05-10

시 > 한국시





풀따기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던지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은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눈 오는 저녁



바람 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今年)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눈 타고 오시네.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첫 치마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 지고 잎 진 가지를 잡고

미친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이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봄밤



실버드나무의 거무스레한 머릿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 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은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어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섦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꽃과 여인, 슬픔과 정한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한국의 대표 시인 김소월과 한국의 대표 화가 천경자가 『진달래꽃』에서 만났습니다.

책 속에는 시 150편과 그림 34점이 들어 있으며, 소개에 따르면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일부 현대 표준어 규정에 따랐지만 시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최소화하였고 김소월의 첫 시집인 『진달래꽃』과 『소월시초』의 수록 시 전편 외에도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을 가려 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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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6-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경자 화백의 그림이 있어서 더 좋은 김소월 시집이네요. 이전에 초판본도 그렇고 기획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하나의책장님,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