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 로맨틱 한시: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책에서 마주친 한 줄』

(풀어서 쓴 뜻으로 썼습니다. 한자만 덩그러니 쓰면 못 알아보실 분도 계실지도 모르기에)​

춘사 - 박제가

그네로 하늘 가르며 한 번 공중에 솟구치니

바람 머금은 양 소매가 당긴 활등 같구나

높이높이 오르려다 치마 자락이 터져서

수놓은 꽃신 끝이 붉게 드러난 줄도 몰랐네

호랑내멱농 - 이안중

​작은 것이 꽃밭 속에 서 있으니

버들잎은 새색시의 눈썹 같고

복사꽃은 붉은 치마를 닮았어요.

나를 찾아보라 그대를 불렀죠

복사꽃은 동쪽에 오얏꽃은 서쪽에 있는데

그대를 어디에서 진짜 나를 찾을까요.

백저사 - 최경창

장안에 계실 때를 생각하며

흰 모시 치마 새로 지었죠.

이별한 후인데 어찌 입을 수 있겠어요

노래하고 춤 춰도 보아줄 그대가 없는데.

추사 - 남취선

동천은 물과 같고 달도 푸르른데

나뭇잎 떨어지고 밤엔 서리 내리네

열두 발 친 방에 혼자 자려니

옥 병풍에 수놓은 원앙 부럽기만 하네​

 

『하나, 책과 마주하다』

​『로맨틱한시』는 말그대로 로맨틱한 한시를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 사랑이 주제이다.

책 첫장을 넘기려는 순간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통은 오른쪽을 기준으로 책을 넘기는데 옛날방식을 고수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왼쪽을 기준으로 책을 넘기게 되어있다.

예전에 딱 한번 오래된 고전문학을 읽을 때 그랬었는데 오랜만에 왼쪽을 기준으로 넘기니 감회가 새롭다​

 

반속요(현실로 돌아오는 노래) - 설요
化雲心兮思貞淑 (화운심혜화정숙) 구름 같은 이 내 마음 정숙을 생각해보려 하지만
洞寂滅兮不見人 (동적멸혜불견인) 산골짜기 적막하여 사람 보이지 않네

瑤草芳兮思芬蒕 (요초방혜사분온)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을 하는데,
將奈何兮是靑春 (장내하혜청춘)     장차 어찌하리, 이 내 청춘은.​

반속요는 출가했다 다시 속세로 돌아오라는 뜻을 담고있다. 반속요를 지은 설요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삶에 환멸을 느껴 출가한 인물이다.
그러나 계속된 얽매임 속에서 결국 수도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데 이 때 반속요를 짓고 환속했다고 한다.
훗날 당나라의 곽진의 첩으로 살다가 죽었다고 알려졌다.

삶이란 단순하지 않기에, 복잡하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 한 번 꼬인 실타래를 금방 풀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게 인생의 순리이니 말이다.

 

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 황진이

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동짓달의 기나긴 밤의 한 가운데를 둘로 나누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따뜻한 이불 아래에 서리서리 간직해 두었다가)
얼운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정든 임이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서 더디게 밤을 새리라)

 

임이 오시지 않는 길고 긴 동짓달의 밤을 지새운 여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내었다.

개인적으로 이 시조는 너무 좋아 글쓰기노트에도 써놓았었는데, 정말 조선시대 여류시인답게 황진이의 시조는 하나같이 다 좋은 것 같다

여운이 진하게, 아주 길게 남는다.

 

美人怨(미인원) - 이규보

​腸斷啼鶯春 (단장제앵춘) 단장제 꾀꼬리 우는 봄날 애간장 타는데
落花紅簇地 (낙화홍족지) 꽃은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덮었구나
香衾曉枕孤 (향금효침고) 이불 속 새벽잠은 외롭기만 하여
玉臉雙流淚 (옥검쌍유루) 고운 뺨엔 두 줄기 눈물 흐르누나
郞信薄如雲 (낭신박여운) 님의 약속 믿음 없기 뜬구름 같고
妾情撓似水 (첩정요사수) 이내 마음 일렁이는 강물 같누나
長日度與誰 (장일도여수) 긴긴 밤을 그 누구와 함께 지내며
皺却愁眉翠 (추각수미취) 수심에 찡그린 눈썹을 펼 수 있을까

대표적인 회문시인 '그대 마음 믿을 수 없어요'는 처음부터 읽어도, 뒤에서부터 읽어도 뜻이 통한다.

​翠眉愁却皺 (취미수각추) 푸른 눈썹은 수심 겨워 찌푸려 있는데
誰與度日長 (수여도일장) 뉘와 함께 긴긴 밤을 지내어 볼까
水似撓情妾 (수사요정첩) 강물은 내 마음인 양 출렁거리고
雲如薄信郎 (운여박신랑) 구름은 신의 없는 님의 마음 같아라
淚流雙臉玉 (누류쌍검옥) 두 뺨에 옥 같은 눈물 흐르고
孤枕曉衾香 (고침효금향) 외론 베개 새벽 이불만 향기롭구나
地簇紅花落 (지족홍화락) 땅 가득히 붉은 꽃이 떨어지고
春鶯啼斷腸 (춘앵제단장) 봄 꾀꼬리 우는 소리에 애간장 타누나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감정을 부각시키며 여인의 처지를 자연과 대조시키고 있다.
미인원을 그대로 풀이해보면 아름다운 여인의 원망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이 한시는 말그대로 객지로 떠돌아다니는 임이 돌아오지 않아 원망과 함께 기다림을 나타내는 여인의 감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문학시간에 배웠던 한시·시조 등 고전문학이 너무 좋아 방과후 특강을 따로 듣기도했다. 그 정도로 나는 고전문학에 매료되어 있었다.

짤막한 한 구절에 담긴 무궁무진한 의미들을 찾아내며, 어떻게 이런 표현으로 많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건지 감탄하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한시들을 입 속으로 되뇌어보니 한시에 매료되었던 감정들을 끄집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예전에 재밌다고 혼자서 지어낸 한시들이 담긴 공책이 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찾아내면 꼭 하나표 한시를 소개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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