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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뇌과학자의 자기감 수업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9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을 가리킨다는 최근 연구가 많이 있지만, 여기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내 생각은 반영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 뇌 속에는 일종의 '사회적 계량기'라 불리는 장치가 있어서 주변 타인이 나에게 보내는 수용 혹은 배제의 사회적 단서들을 끊임없이 탐지하고 모니터링한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적 계량기를 통해 수집된 사회적 단서를 토대로 자존감은 매 순간 수정된다. 다만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나의 인식은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나므로, 내 자존감이 결국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나의 인식과 관련 있음을 알아차리기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즉 자기 보고에 의존한 자존감 연구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자존감에 관한 뇌과학적 연구가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다.
불안, 우울 등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과학적 접근법을 제안하는 책으로 자존감을 뇌과학적 개념인 자기감과 대비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 김학진은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계산신경과학 석사학위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생물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기법(fMRI)을 사용해 인간의 경제적·사회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으며, ‘인정 욕구’‘자존감’‘공감’‘도덕성’‘이타성’ 등의 신경학적 기제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자존감에서 자기감으로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유인원, 돌고래, 코끼리 같은 일부 포유류도 자기를 인식한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속속 입증되었다.
동물의 자기인식 능력은 거울자기인식 과제로 증명할 수 있는데, 거울검사란 동물의 얼굴이나 신체 일부에 특정 표시를 한 후 동물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의 변화를 알아채고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이때 돌고래, 코끼리, 까치 등 소수의 종만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교적 지능이 있다고 생각한 원숭이나 개는 의외로 거울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청줄청소놀래기라는 어류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이 어류 또한 거울검사를 성공했는데 과학자들은 이들의 특별한 생존 전략을 성공의 요인으로 꼽았다.
청줄청소놀래기는 대형 어류 옆에 붙어 죽은 피부 조직 등을 잡아먹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대형 어류를 만족시키기 위한 생존 전략을 고도화하고 다른 종을 자기와 구분하여 인식하며 그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발달되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자신의 고객과의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피부 점막 대신 기생충을 먹는데 간혹 피부 점막을 참지 못하고 먹기도 하지만 다른 물고기 앞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억제한다고 한다.
자기 인식 능력, 다른 종의 기대에 부합하려는 생존 전략 간의 인과성을 규명하는 것은 자기 인식이라는 생명 현상에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진짜 손처럼 생긴 고무손을 실험 참가자의 눈앞에 제시하고 참가자의 실제 손을 보지 못하도록 천으로 가린다.
이후 실험자가 참가자의 실제 손과 고무손의 같은 위치를 붓으로 동시에 쓰다듬기를 반복하면 참가자는 눈앞의 고무손을 자기 신체 일부로 실감하는 착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안정적으로 만들어 다듬고 유지해온 나의 신체에 대한 소유 경험, 즉 신체소유감이 짧은 시간에도 극적으로 변화하는 체험을 일으킨다.
감각이란 외부 감각, 내부 감각, 고유 수용성 감각 등 세 유형을 아우른다.
외부 감각이란 신체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감각 정보를 말하며, 내부 감각이란 심장이나 다른 장기처럼 신체 내부의 기관에서 오는 감각 정보를 말한다. 내부 감각은 외부 감각과 달리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데, 외부 감각보다 변화가 크지 않고 대체로 우리가 예측한 상태를 항상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유 수용성 감각이란 주로 근육이나 관절의 수용기로부터 뇌로 전달되는 감각 정보를 말하는데, 몸의 움직임 또는 신체의 공간적 위치나 상태 등을 알려준다.
내부 감각이 외부 감각보다 의식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져 있지만 우리 의식 자체가 내부 감각보다 외부 감각에 민감하도록 발달해왔다.
고무손 착시 실험만 봐도 우리 뇌는 다양한 감각 정보를 매 순간 수집해 정보들이 하나의 통합된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여부를 끊임없이 검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간혹 몇몇은 착시를 더 강하게 느끼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고무손 착시 실험을 경험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뇌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뇌 부위가 있으니, 바로 측두-두정 접합부 TPJ temporo-parietal junction 다.
TPJ 혹은 그 주변의 뇌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의 경우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정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가 일찍이 보고되어 있어 뇌과학자들은 여기에 주목한 것이다.
TPJ는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측두엽, 촉각 정보를 처리하는 두정엽,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이 만나는 경계선에 자리한다. 그 위치로 봐서 TPJ는 외부 환경에서 오는 시각·청각·촉각 정보가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영역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 이 정보들을 통합하는 영역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TPJ는 행위주체감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행위주체감이란, 나의 행동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인식이나 느낌을 말한다.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듯이 TPJ가 행위주체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감각 정보들의 일치 정도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혹 정보들 간에 불일치가 감지되면 TPJ가 활성화되면서 해당 정보를 뇌의 다른 부위로 전달해 불일치 해소를 유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TPJ가 외부 감각 정보들을 통합하여 신체소유감을 수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맞다면 TPJ의 기능이 정지할 경우 고유 수용성 감각 정보가 만드는 신체소유감은 우세해질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항상성이라는 질서를 추구한다.
신체의 항상성 유지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체온이 높아지면 땀나게 하여 체온을 떨어뜨리고 체온이 낮아지면 근육 긴장도를 높여 몸을 덜덜 떨리게 하며 열을 발생시킨다.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해소해 준다는 것은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보상이 된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다가올 신체 항상성 불균형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주는 대상, 즉 보상에 대해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스트레스가 쌓이면 달콤한 초콜릿을 먹거나 매운 음식으로 풀기 등이 있다.
알로스테시스는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최대한 일찍 예측하고 최소한 노력하여 예방하려는 방식인데 항상성 불균형의 해소와 직접적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새로운 보상을 찾아 학습하게 만들기도 한다. 즉, 배고픔이나 통증 등을 해소해주는 일차적 보상이 아닌 돈과 같은 이차적 보상을 학습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차적 보상은 예측성, 효율성, 영속성의 특징을 가진다.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고 유기체의 생존 유지를 위해 우선순위를 분배하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과정의 목표에 잘 부합하기 때문에 이차적 보상은 학습하긴 어려워도 일단 학습하면 일차적 보상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각인되어 우리 행동을 지배한다.
돈보다 훨씬 먼저 학습한, 훨씬 강력하고도 중요한 이차적 보상이 있는데, 바로 타인이라는 사회적 보상이다.
특히 생존과 번식의 목적에 모두 부합하는 보상은 드물기 때문에 사회적 보상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보상은 양날의 칼인지라 사회적 보상에 과민할 경우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회적 불안 증세나 인정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용이 너무 길어져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복내측 전전두피질과 배내측 전전두피질 간의 상호 협력 과정이 알로스테시스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인데, 복내측 전전두피질과 배내측 전전두피질의 중간에 있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은 내부 신호와 외부 신호를 모두 통합하여 이들 간의 균형을 찾아가는 기능을 담당한다.
신체가 만들어내는 생명 유지 욕구가 환경과 충돌할 때 두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이 과정에서 바로 '자기'라는 개념이 만들어진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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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 속에는 사회적 계량기라 불리는 장치때문에 주변 타인이 나에게 보내는 수용 혹은 배제의 사회적 단서들을 끊임없이 탐지하고 모니터링하게 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나의 인식은 결국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나기에 자존감에 관한 뇌과학적 연구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해볼 수 있다.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자존감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니!
생명과 화학을 다룬 책들은 잘 따라갔었는데 내게도 뇌과학은 매우 경이로운 분야인지라... 과학이 참, 멀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