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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입력하세요
오휘명 지음 / 히읏 / 2022년 2월
평점 :
품절
『하나, 책과 마주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달랐다.
설레고 애틋했지만 결국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여느 연인들처럼 이별을 맞았다.
그 후, 우연히 예전에 사용했던 휴대폰을 켜게 된다.
그리곤 우연히 보게 된 메시지함에 있는 글자 하나하나가 다시금 서로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저자, 오휘명은 남에게 어떻게 불리고 어떤 걸 해줄 수 있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해왔다.
그리고 요즘은 그러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막연한 응원과 위로, 거짓 없는 대화를 좋아한다.
쓴 책으로 『그래도 사랑뿐』, 『서울사람들』, 『AZ』, 『곁』, 『당신이 그 끌림의 주인이었습니다』 등이 있다.
그녀, 성하
문득 제법 괜찮은 여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찬 바람 부는 아침 출근길에도 핫초코보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았고, 상의와 하의의 색상을 어떻게 맞춰서 입어야 하는지도 매우 잘 알게 됐다. 풋내가 날 것 같이 목선이 다 드러나도록 짧았던 머리카락도 이젠 어깨에 넉넉하게 닿는다. 그래, 어쩌면 이게 내가 그토록 바랐던 어른의 삶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제법 성숙한 사람이 됐다고 여겼지만, 이렇게 현명치 못한 선택으로 괴로워할 때면, 아직도 어느 부분은 어린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 시간이면 집안에 혼자. 옛날처럼 홀로 어딘가를 떠돌지도 않았다. 몇몇 친구는 벌써 결혼까지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애인 한 명쯤은 옆에 달고 다녔다. 죽을 만큼 부럽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가끔 알 수 없는 기분이 되긴 한다. 그녀들을 만날 때면 그녀들은 늘 애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곤 했다. 그리곤 이전엔 들어본 적 없었던 찡찡거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부럽다기보단, 묘하게 위장 아래쪽이 배배 꼬이는 느낌이 들어 버티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그게 부러움이었을까.
그, 효빈
미국 출입국신곳서를 반납하고 나서야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일 년 만이었다. 순전히 취업을 위해 회사에 제출한 영어능력시험의 (얼떨결의 고득점)성적표였지만, 그것 때문에 취업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은 내가 미국으로 발령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영어는 철저히 읽고 쓰기에만 특화되어 있었다는 것도 이 땅을 밟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 나는 업무를 마치면 곧바로 아주 좁고 낡은 아파트로 향했고, 도중에 중식당에 들러 볶음면 따위를 포장했다. 그럴 때면 정말이지 중국인이 된 것만 같았다.
도착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를 생각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게만큼은 아니었다.
많은 것이 바뀌어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참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잊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다. 막막했다. 섬 또는 미아가 된 기분이 이것과 비슷할까.
나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따라 끊임없이 물결치는 목록을 바라보며,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것을 겪은 사람이었나?'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목록의 꾸준한 흐름과는 반대로 나의 의식은 별안간 정체되어, 스스로의 물음에 대해 그 무엇도 확실히 대답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나의 몸이랄지 머리 어딘가가 뻥 뚫려있어, 스스로가 누락된 자료가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메세지
Ⅰ
성하 근사해라.
그리고 나는 그 도심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돼.
널 생각하고 추억하는 일은
끝이 없이 쌓여만 있어.
그리고 바쁘게 그것들을 해내고 나면,
나는 다시 너에게서 비롯된 여가활동을 하곤 해.
예를 들면 너와의 이런 메시지들은
너의 문학이 되고
내가 몰래 찍은 네 옆모습은
너의 미술이 되는 거야.
네게 전화를 걸면 들려오는 것은
너의 음악이 되는 거고.
성하 오늘은 음악 들으면서 잠들겠네.
맞아, 그리고 그 음악에는
끝이라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끝이 없는 음악도,
영원히 죽지 않는 도시도 있다고 믿어.
성하 그래, 그 도시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너고.
지금도 바쁘시겠어요. 귀여워라.
할 일이 산더미야.
이따가 음악 꼭 들려줘.
보고 싶어, 깊숙이.
Ⅱ
효빈 뭐야, 만난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여전히 귀엽네.
어쨌든 조심히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미 얼굴 보고 사과한 거지만,
아까 한 말은 정말 미안해.
실수였어. 상처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괜찮아. 나도 너 따라서
무시무시한 말을 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유별나고
모난 구석이 많은 사람이라서
연인 사이=서로를 너무 아끼기 때문에
자주 서로에게 조그만 상처를
내는 관계라고 생각하거든.
아까도 우리가 서로를 너무 아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상처를 낸 거라고 생각해.
효빈 매일 나보고 '로맨티시스트 씨'라고 하더니,
정작 네가 엄청나게 로맨틱한 말을 하고 있네.
그 말 마음에 들어.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마음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
상처가 지나간 후엔 다시 그 상처를
서로 핥아주는 동물들인가 봐.
지금처러 미안해하고, 다시 소중히 여기고.
☞
며칠 전, (한국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배우 현빈과 손예진이 그 주인공이다.
아마 모두들 TV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순간 하나하나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을 것이다.
'사랑'은 참 예쁜 단어이다.
직접 경험하는 것은 물론 남이 전해주는 연애 이야기마저 언제 들어도 참 몽글몽글하니깐.
『메시지를 입력하세요』 또한 그랬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달랐다.
설레고 애틋했지만 결국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여느 연인들처럼 이별을 맞았다.
그 후, 우연히 예전에 쓰던 휴대폰을 무심코 켜게 되었다.
자연스레 들어가게 된 메시지함.
그곳에는 뜨겁고도 애틋했던 사랑만이 가득했었다.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읽어 내려가니 지난날의 열렬한 사랑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내 그리워하게 된다.
그렇게 성하와 효빈은 서로를 그리워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 나는 너를 아직도 깊숙이 보고 싶어 해. "
연애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나 첫사랑도 겪어 봤고 간질간질한 사랑도 겪어 봤고 애달픈 사랑도 겪어 봤었다.
첫사랑, 대부분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첫'사랑인만큼 순수하고 예쁘게 그리고 열렬하게 사랑했었는데 몇 번의 엇갈림 끝에 결국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그리곤 몇 번의 사랑을 거친 후에 또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연애하는 내내 영원할 줄만 알았던 사랑은 결국 다름과 오해로 인해 끝이 나고 말았지만, 사랑과 관련된 책을 보면 그 사랑과 첫사랑이 떠오르긴 한다.
오랜 기간동안 연애하며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결혼 앞에서 이별을 택하고 오히려 짤막하게 만났지만 특별한 끌림에 의해 곧장 결혼한 이들도 꽤 많다.
참, 사랑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쉬우면서도 어렵다.
그래도 거쳐가는 사랑에서 배우는 게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책 속에서, 성하가 직장 후배인 나윤에게 해준 말이 있다.
"내 생각엔 대화를 조금 해보는 게 좋겠어,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말이야. 둘은 너무 잘 맞고,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이상적인 연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역지사지라는 말도 있잖아.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역지사지를 누구보다 잘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야. 상대방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걸 잘 알아낼 수 있으니까."
"실제로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마음의 언덕을 오르는 사람 중 그 누구도 힘을 들이지 않고 그것을 오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무서운 것도 당연하고,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 나윤 씨는 지금 용기가 필요해.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다가가 안아줄 용기가. 그건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고. 일단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
다양한 인생사 속에 살고 있으니, 나 혹은 주변 누군가가 성하와 효빈일 수도 있다.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달랐던 그들이었다.
맞는 것이 없었다. 달랐다. 모든 것이 달랐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당사자들도 알았지만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조금은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알파벳 Z의 다음은 A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다시금 서로를 안아주게 되었다.
연인이든, 부부든 마찬가지다.
알파벳 Z의 다음은 A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다름은 인정해 준다는 것, 또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커다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