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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 어느 수의사가 기록한 85일간의 도살장 일기
리나 구스타브손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외식, 회식 메뉴의 단골 메뉴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돼지고기'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돼지갈비에 소맥 한 잔 하다보면 금세 불판 위에 있는 고기가 사라지기 일쑤다.
이렇듯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지 그들이 어떻게 불판 위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진 않는다.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도축 장면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있었었다.
한 친구가 그것을 보고선 꽤나 충격을 먹어 소고기에 한동안 입을 안 댔었다고 한다.
볼 기회는 있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 나는 도저히 볼 수가 없었는데, 막상 책을 보고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진실에 직면할 때가 되었는가?
저자, 리나 구스타브손은 동물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수의학을 공부했다.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개와 고양이를 치료하다가,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지만 아무도 싸워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국립식품청 수의직 공무원에 지원하여 2017년부터 도축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 경험을 기록한 85일 동안의 일기를 책으로 엮었다.
2020년 스웨덴 올해의 수의사 상 최종 결선 4인에 들었다.
효율만을 추구하고 감정은 남김없이 도려내는 곳에서도 선의를 가슴에 품은 용맹한 사람들이 있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생명이 순식간에 소멸하는 곳, 동물들의 비명과 비릿한 피 냄새가 가득한 현장에서 저자는, 하나뿐인 목숨을 빼앗기는 존재의 증인으로 세상에 나선다.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변화의 심지에 작은 불을 밝힌다.
Ⅰ 국립식품청에서의 첫 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은 터에 위치한 회색 함석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곳, 약간 큼큼한 냄새 빼면 여기서 무엇을 생산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곳.
국립식품청, 이곳이 바로 저자인 리나가 일할 곳이었다.
(국립식품청은 스웨덴에서 식품의 안전관리를 감독하는 관청이다.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를 담당한다.)
리나에게 업무 안내를 해주는 안데르스 또한 수의사였다.
주로 하는 일은 돼지 검사였다. 돼지가 실려 올 때 한 번, 돼지가 죽은 후 작업장에서 또 한 번 검사를 마쳐야만 도축이 시작된다.
이어 범상치않은 말이 이어진다.
"하차할 때 보는 게 제일 좋아요. 제 발로 못 걷는 놈들은 죽여야 해요."
수송 트럭에서 내린 돼지들이 도축되기 전 잠시 머무는 장소를 계류장이라 하는데, 계류장 직원들이 제 발로 못 걷는 돼지들을 죽인다는 의미였다.
도축장을 지나 계류장으로 가는 길, 동물들부터 소리, 냄새까지 모든 것을 한번에 느낄 수 있었다.
몰이통로로 들어서니 고약한 암모니아 냄새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너무 세세하게 그려진 도축 장면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져 제대로 읽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문득 쓰다가 지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고로, 이 부분은 생략하겠다.)
3개월 남짓 남은 크리스마스까지 저자가 도축해야 할 돼지는 18만 두이다.
그리곤 오늘 본 돼지들을 찬찬히 생각해본다.
기침하는 돼지들
꼬리가 뜯겨 나간 돼지들
절룩이는 돼지들
관절에 점액낭염이 생긴 돼지들
폐렴에 걸린 돼지들
자상을 입은 돼지 한 마리
찰과상을 입은 돼지들
종기가 난 돼지들
암에 걸린 돼지 한 마리
깡마른 암퇘지 한 마리
Ⅱ 도축장의 현실 그리고 깨달음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저자는 답했다.
"동물보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바람은 늘 있었어요. 그러다 몇 년 전에 유용동물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5년 6개월간의 수의학 공부를 마치는 순간 예전처럼 순진하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실 여기서 일하고서부턴 드는 생각이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빠른 속도와 어마어마한 물량, 거대한 시스템 앞에 선 저자 본인이 참 순진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매일 오후, 실려 오는 돼지들은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세 삽 분량의 짚을 갈아주고 먹이를 주는데, 먹이를 만든 제조사가 말하길 성장을 촉진하고 살이 잘 찌도록 도와주는 사료라고 했다.
문득 저자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마지말 날이니만큼 살을 찌우기보다는 배부르게 먹여야 옳지 않을까?
또한, 열일곱 마리의 돼지가 고작 세 삽 분량의 사료를 나눠먹는다는 것은 입에 풀칠하는 정도의 양이었다.
도축장 동물보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동료 사라에게 이러한 의문에 대해 물었다.
사라의 답변은 이랬다. "제가 보기엔 그냥 형식상 주는 것 같거든요."
법에도 나와있듯이, 적정한 양을 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기준은 법을 기초로 삼아 도축장 자체에서 정하는 것이기에 딱히 이의제기할 수도 없었다.
도축장은 지역 담당 관청이 사업장의 각 공정을 조사하는 시간에 대해 조사비를 지급해야 하는데 수의사는 사업장 대표와 함께 계류장으로 가서 여러 항목을 검사하게 된다.
보고서는 짧고 표준서식에 따라 대부분 비슷한 점검 결과를 담고 있었다.
그렇다. 저자는 이의제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조사에 참여할 자격 조차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10일차 오후, 도축 예정인 돼지 700두를 퇴근 시간까지 처리해야 했다.
계류장에서 기사 한 사람이 돼지들을 심하게 매질하자 참다못한 저자가 한마디를 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하는 회의에서 팀장에게 용기내어 몇몇 기사들과 계류장 직원들의 돼지 모는 방식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게 된다.
사실 타박받을 줄 알았지만 팀장은 오히려 저자인 리나를 두둔해주었다.
"신참이니까 그걸 활용해요.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더 힘들어질 거예요. 리나는 신참이니까 허용되지 않은 방식의 몰이채 사용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금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말을 안 듣거든 돼지가 매질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육질이 떨어지고, 등에 구타 흔적이 남으면 회사가 대량의 고기를 폐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세요. 그게 제일 잘 먹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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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도축 장면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있었었다.
한 친구가 그것을 보고선 꽤나 충격을 먹어 소고기에 한동안 입을 안 댔었는데 나 또한 볼 기회는 있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 나는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여과없이 그려진 글이 동물애호가들에겐 꽤나 힘들게 읽힐 수도 있겠으나,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진실에 직면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돼지가 생각보다 영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사람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한 기사에 따르면 돼지와 인간의 심장이 흡사해 인간의 심장을 돼지의 것으로 대체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누가 소로 태어나고 누가 돼지로 태어나고 싶었겠는가?
그러라고 태어난 동물은 없다!
모든 생태계는 먹이사슬 구조로 이어져 있으며 순리대로 흐르게 놔두는 것 또한 생태계 구조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또한 돼지, 소와 같은 가축을 안 먹고 살 순 없다. 하지만 인도적 도축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순 있지 않을까?
이런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다. 무엇보다 이러한 문제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돼지, 소를 도축하지 맙시다!'라는 의견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나니 그들이 마지막 숨 끊는 그 순간까지 배려는 필요하다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책에도 나오지만 돼지들의 마지막 날, 열일곱 마리의 돼지에게 주어진 마지막 만찬은 고작 세 삽 분량의 사료가 다였다. 입에 풀칠하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아바타」를 볼 때, 주인공 제이크가 네이티리에게 사냥을 배우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는데 아마 지금의 상황과 견주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끝에 내민 것은 결국 '사직서'였는데, 책을 읽어보는 우리 또한 참 긴 여정의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종착지인 도살장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인도적인 사육과 도축에 대해서도 진심어리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