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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힘이 들 때면, 글을 쓴다.
그 날, 힘든 일과 맞딱드릴때면 곧장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그리곤 가상의 인물을 만든 후에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대입시켜 글을 써내려간다.
지금으로선 끝이 없는, 종착지가 보이지 않는 글이 덧대어지고, 또 덧대어져 어느새 페이지 수가 많이 늘어났다.
대부분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첫인상을 이렇게 평가받는다. - 빈틈없이 깔끔한 겉모습에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 것 같다.-
깔끔하고 완벽한 모습이 그 이유이니 물론 마냥 나쁘진 않다. 하지만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은 너무나 큰 억측이다. 먹음직스러운 크림빵 속에 슈크림인지, 말차인지, 팥인지 알 수 없듯이 속을 갈라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일상'의 나날을 동경했고 지금도 동경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도 나의 삶의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나만 잘한다고 해서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집이건, 학교이건, 사회이건, 그 구성원들간에 어느 정도 합이 맞아야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삐그덕거린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
인간관계 또한 양면성이 있다. 즉, 관계를 맺는 사람들 중 이로운(利)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에 해로운(害) 사람들도 있다.
특히, 해로운 사람들은 물론 이로운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까지도 상처를 입을 때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씩 생각해본다.
"(그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되뇌인다.
"'내가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등 말 혹은 행동을 달리했으면 이렇게까지 상처받지 않았겠지?', '만약 그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떻게든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되뇌인다.
'성장'의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길을 몇 갈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후회'이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에, 후회할 일을 매번 겪는다.
이 때, 그 일에 대해 반성하고 시정하는 사람들만이 '성장'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다만, 넘어가는 과정자체가 매우 단순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다.
특히 섬세하게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우리 감정인데, 그 과정 속에서 일부는 감정의 늪에 빠진 깊이에 따라 극도의 우울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죽음에 대해,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혹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불치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다고 한다.
물론 육체적인 고통의 정도로도 판단할 수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죽음의 순간이 마음으로도 느껴진다고 한다.
사람의 죽음은 자연사, 병사, 사고사, 아사로 나눌 수 있는데 이에 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살이다.
책 속에서, 주인공 노라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데 질문을 살짝 바꿔 물어보고 싶다.
혹시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 선뜻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살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의견이 나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리고 '도망친거네...'.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자살」과 앤디 라일리의 「자살토끼」를 읽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가? 두 책 모두 자살을 다룬 책이다.
「자살」같은 경우 어린 나이에 호기심으로 열어봤다가 적잖은 충격을 받고선 곧장 책장을 덮었었는데 지금도 왜 도서관에 그 책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후 대학생이 되어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다시금 펼치게 되었는데, 자살의 정의, 이유, 종류, 사회대책까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실제 상황이 담긴 사진과 함께 첨부되어 있어 지금껏 가장 무섭게 느껴졌던 책을 꼽으라하면 바로 이 책이다.
앤디 라일리의 「자살토끼」는 토끼가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한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다.
뜬금없이 두 책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자살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난 우울함을 원인으로 둔 자살에 대해 말해보겠다.
우울증은 단순히 우울하다는 감정과는 다르다.
감정의 파도에 갇혀 헤엄치려 해도 계속 그 자리다. 그래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이상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 우울증이며, 오히려 발버둥칠수록 더 깊게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도 나오듯이, 그들이 굳이 자살을 택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다. 편해지고 싶어서다.
그래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려고 하는 그 순간,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차가운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선택의 순간에 꼭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본인이 선택한 그 결정에 대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느냐이다.
분명 그 선택을 하자고 마음먹기에 앞서 우울감이 온 몸을 평정했다는 것인데, 되돌아가자면 나 자신이 우울한 원인을 분명하게 알고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매순간 결정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 한 가지 선택지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분명 두 가지 이상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본인이 결정한 선택지에 따라 가지치기 하듯이 끊임없이 갈라진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이전에 밟아왔던 그 과정(선택받았던, 선택받지 못했던 선택지)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이 말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최대수혜자이자 최대피해자가 된다는 뜻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소설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인생은 더 소설같기에 '후회와 죽음', '희망과 미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생각의 폭이 넓혀질 것이라 확신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The Midnight Library
낡은 소파에 앉은 한 소녀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들여다본다.
노라 시드, 그녀는 죽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를 내심 바랐던 그녀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키가 크고 마른, 다정해보이는 남자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으로 노라를 바라보았다.
내심 외로웠던 노라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괜스레 말을 걸었다.
노라의 쓸데없는 질문에도 답변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굉장히 심각해보였다.
그의 안색이 둘의 침묵을 이끌었고 애쉬는 힘겹게 노라의 반려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고양이를 기른다고 하셨죠?"
"네. 반려묘가 있어요."
"그 고양이 이름이 기억나네요. 볼테르. 갈색 얼룩무늬였죠?"
그리곤 애쉬는 덧붙였다.
"유감이지만 볼츠가 죽은 것 같습니다."
괴로움과 슬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노라는 볼츠(볼테르, 노라만의 애칭)에게 향했다.
동정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미동없는 평화로운 표정에 약간의 질투와 같은 감정이 흘러나왔다.
자살을 결심한 시간들이 다가온다.
노라는 와인을 마시며 그간의 '부여받고 싶어하던 직책'들에 대해 나열하며 생각해본다.
수영 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 노라는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고양이 주인도, 피아노 레슨 선생님도, 대화가 가능한 인간으로도.
11시 22분, 다른 것 생각할 겨를 없이 노라에겐 딱 한 가지만 떠올랐다.
죽기에 딱 좋은 때였다.
사방에 안개가 깔려 있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곳에 노라가 있었다.
00:00:00, 손목에 찬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한 고서의 냄새가 가득한 이곳은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족히 예순은 되어보이는 녹색 스웨터를 입은 사서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엘름 부인."
그렇다. 단박에 노라가 알아본 그녀는, 옛날 그녀가 다녔던 학교의 도서관 사서였다.
남자 기숙학교 교사였던 아빠의 사망 소식을 전해준 것이 엘름 부인이었다.
그 때,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다 잘될 거야, 노라. 괜찮을 거야."
아직은 사후 세계가 아니지만 곧 죽음의 문턱과 가까워지는 노라에게 엘름부인은 말한다.
"자정의 도서관이 존재하는 동안 넌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을 거다.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해."
움직이는 서가의 선반을 보며 엘름부인은 이제 시작할 때가 되었다며 삶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영향이 고스란히 묻어난 책들에 대해 소개한다.
다른 책과 달리 회색 표지의 책 한 권을 노라에게 건네는 엘름부인은 노라에게 말한다.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모두 노라 자신의 삶인데, 유일하게 지금 노라가 든 책만 그녀가 한 글자도 쓰지 않고서 쓴 책이며 모든 문제의 근원과 해답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덧붙인다.
"이게 무슨 책인데요?"
"《후회의 책》이야."
나이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후회의 책》은 0부터 시작해서 35장까지 있었고 각각의 장이 더 길어졌으며 그 해에 해당하는 후회만 적혀있지를 않았다.
"후회는 시간 순서를 무시하지. 마구 떠다닌단다. 이 목록은 배열 순서가 늘 바뀌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예컨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게 후회돼라던지, 어릴 때 더 많이 놀지 못한 게 후회돼라던지, 결혼하지 않은 게 후회돼라던지, 케임브리지에서 철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지 않은 게 후회돼라던지.
그렇게 마구 떠다니는 후회들을 보며 노라는 지난 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것이 그저 부당하게만 느껴지는 노라를 보며 엘름 부인은 말한다.
"…… 이 자정의 도서관은 유령의 도서관이 아니니까. 여긴 죽은 자들의 도서관이 아니야. 가능성의 도서관이지. 그리고 죽음은 가능성의 반대고. ……"
그리곤 엘름부인은 노라에게 책 하나를 건넨다.
전나무색에 보드라운 질감을 가진 표지 위에는 《나의 인생》이란 제목이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이번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노라는 빈 페이지를 보곤 다음 페이지로 빠르게 넘겨보았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엘름 부인에게 받은 《나의 인생》을 통해 노라는 지난 날로 돌아가 그녀가 평소 원했던 모습의 삶 '수영 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등으로 살아보게 된다.
노라는 드디어 진정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노라는 그녀가 원했던 삶에 대해 만족할 수 있었을까?
전하고픈 책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뒷이야기는 직접 읽어봤으면 좋겠다, 꼭.
기대 이상으로 더 큰 깨달음을 줄테니깐.
내겐 눈물이었다
"이 책들은 네가 살았을 수도 있는 모든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야."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내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눈물'이었다.
(다들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눈물에는 온도가 다르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 흐르는 눈물은 식어버린 티처럼 차가운데 어딘지 모를, 깊은 마음 한 구석에서 끌어져 흘러 내린 눈물의 온도는 평소와는 달리 뜨겁다.
특히 그것이 나의 마음을 뒤흔들만큼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린다면 그 온도는 더 높다.
내 볼을 타고 흐르는 조금은,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책 위로 뚝뚝 떨어졌는데, 책 속 상황과는 다르긴 해도 마음에서 우러난 감정은 비슷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놓게 된, 후회의 조각
잠시, 책 속의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보겠다.
자정에서 1분이 지난 시각, 살아있을거란 잠깐의 희망을 걸었던 볼테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차가웠다.
볼테르와 함께 하는 삶을 원하는 노라에게 엘름 부인은 볼테르가 사고사가 아닌 자연사임을 알려준다.
시간을 잠시 바꿨던 엘름 부인의 장난에 노라는 화가 났지만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네가 바뀌었잖니."
"무슨 말이죠?"
"넌 이제 자신이 형편없는 고양이 주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넌 볼테르를 최고로 잘 보살폈어. …… 고양이는 안단다. 자신이 죽을 때가 다가왔다는 걸 알지. 볼테르는 죽을 때가 다가왔다는 걸 알고 밖으로 나간 거야."
고양이를 키운 적은 없는데,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밥과 잠자리를 챙겨준 길고양이가 있다.
길고양이들이 여기저기 다닐 때면, 우리집 옥상을 지나곤 한다.
그러다 옥상계단에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치게 된다.
희한하게 피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에, 계단을 내려와 마당으로 향하니 고양이도 옥상 계단에서 내려와 마당으로 향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사실, 여느 길고양이처럼 한순간의 만남으로 끝날 줄 알았다.
큰 대문 안에 마당이 있고 집이 있는 형태인데, 단독주택이지만 집이 두 채가 붙어있는 형식이라 큰 집, 작은 집을 왔다갔다한다.
작은 집에 내 방이 있는데 큰 집으로 가려고 잠깐 현관이라도 나올 때면 어디서 '냥'하고 누군가 부른다. 그게 일주일동안 이어졌다.
그렇다고 흔히들 말하는 '간택'의 순간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절반의 간택이랄까.
절대로 집에 들어오는 법이 없으며 밥은 마당 한 켠, 지정된 곳에서 먹으며 항상 나와 노는 곳은 옥외마루이다.
그렇게 '호떡이'는 나와 일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 중간에 친구 세 명도 데려와 반 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그림자 하나 나타나질 않아 이제는 정말 다른 동네로 갔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에 '냥' 소리가 들려 후다닥 마당으로 향했었다.
반가운 마음에 특식을 꺼내 밥그릇에 덜어놓았는데 먹지도 않고 그저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왜 안 먹어? 그동안 어디 있었어?"
평소같으면 '냥' 하고 맞받아쳐주는데, 그 날은 대답도 하질 않았다.
그러다 물을 좀 마시는가 싶더니 갑자기 기침을 하곤 쏜살같이 옥상 계단으로 올라갔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기에, 고양이가 기침하는 것은 난생 처음보았다.
어디 아픈건가 싶어 옥상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인 걸걸한 목소리로 '냥'을 한번 외치고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호떡이는 옥상으로 올라가버렸다.
나도 모르게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두 달... 일 년이 흘렀었다. 벌써 호떡이와의 마지막 눈맞춤이 5년이나 흘렀다.
반려묘를 키우는 지인이 고양이는 죽음의 순간을 스스로 직감하는데 너에게 그간 고마워 마지막 인사하러 온 것 같다고 얘기해줬었는데, (지금도 쓰면서 눈물이 흐르는데) 당시에 느껴보지 못한 반려동물과의 이별의 아픔에 많이 힘들었었다.
호떡이는 길고양이인지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긴 해도 잡거나 안는 것은 싫어했다. 모션이라도 취할려고 하면 도망가버리고 사나흘은 삐져서 마당으로 내려오지도 않았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슬며시 옆으로 다가와 본인이 스스로 기대는 것까지만, 딱 거기까지만이 우리만의 스킨십이었다.
호떡이와의 마지막 눈맞춤과 '냥'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호떡이를 위해 밥도 챙겨주고 호떡이가 쉬는 곳에 조그마한 집까지 만들어주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으니 후회하지 말란 지인의 위로에 마음을 많이 추스릴 수 있었다.
'난 볼테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라는 후회가 책장에서 서서리 사라지듯, 노라와 볼테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또한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후회의 조각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고백 그리고 내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주는 내 사람들
어렸을 때부터 폭풍우같은 삶을 살다보니 시간으로 다져진 인생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져왔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듯이, 내 곁에 해가 되는 사람도 많았다.
"하나에게는, 유난히 네 감정을 흔들만큼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야."
오죽했으면 상담받았던 교수님께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낼 정도였으니깐.
가치관과 생각이 달라져 요즘은 아무렇지 않게 오픈한다고 하지만, 나는 가급적 아픈 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내 약점일 될 것 같아 눈 감았는데, 그 때 교수님의 말을 듣고 생각의 전환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히 핑계가 아닌 이유가 있는 것인데,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몰라. 말해줘야 알지,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그리고 오히려 최대피해자는 네 자신이 될 수 있어."
그런데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현재 내가 짊어지고 있는 병들 중 하나가 바로 공황장애이다.
대학생 때부터 그 기미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괜찮은 척하며 지내오다 결국엔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병원으로 향했고, 그 때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
특정 공간들이 옥죄어왔다. 헐떡거리는 숨막힘, 고른 호흡이 되질 않아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지금은 공황장애라고 하면 많이들 아는 병이기에 오픈하는 것이 쉬워보이지만, 이를 오픈하기가 참 힘든 것이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 보였다. - 마인트컨트롤이 중요하다. 네 자신을 스스로 잘 다스려야 한다. 강해져라. 약해지지 말아라.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한다는 것부터 나 스스로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으나, 말이 쉽지 그렇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해도 병이 단숨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오픈하고 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뱉은 말에 상처받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왔었다. 무심코 받았던 그 전화는 다름아닌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지금은 길 가다 지나가면 한번에 못 알아볼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 친구 얼굴 본 게 그만큼 오래되었다.
전화를 통해 그간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하며 안부를 물었는데 이야기 도중에 무심코 한 그의 말들이 귓가에 울렸다. -"안면장애가 있거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게 아니잖아?", "정신적인 아픔들은 다 마음이 약한 게 문제야. 그래도 넌 그렇지 않잖아." 등등.
물론 농담섞인 말들이니 듣고 넘기면 되지만 농담섞인 말이어도 그가 했던 여러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렇듯 아픈 것에 대해 털어놓으면 강인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치부해버리지 않을까 싶어 꺼리는 것도 이유가 있다.
의사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강인했기에 그 많은 일들을 겪어도 지금까지 잘 버틴 것이다. 그 말은 넌 절대 약한 사람이 아니다."
단단하고 강인한 마음을 가졌기에 잘 버텼었는데, 아무리 철옹성같은 단단함이어도 계속된 충격에 의해 결국은 약해지기 마련이라며 그래서 잠시 약해진 것 뿐이라고 말해주셨다.
물론 글이긴해도, 이렇게 하나 털어놓는 것도 굉장히 용기를 낸거다.
벌써 몇 년째더라.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지금도 치료받고 있으니 꼭 나을 것이다.
이 책이 내게 크게 와닿았던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엘름 부인이 노라에게 "다 잘될 거야, 노라. 괜찮을 거야."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이전 게시물에서 종종 언급했던 은사님이 내게 해주신 말과 똑같았다.
난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는 성격인지라, 온전하게 모든 것을 털어놔본 적은 아직도 없다. 엄마, 교수님, 은사님 그리고 외국으로 언제든 떠나자는 친구만이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다.
그 때, 내가 그들에게 들었던 말들 중에 똑같은 말이 하나 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은 홀로 살아갈 순 없다는 것이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손을 뻗으면 분명 그들은 뻗은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줄 것이다.
다만 꼭 그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누구든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해선 안 된다. 잘 들어주는지, 진중하고 무거운지, 신뢰가 깊은지 등등 신중하게 생각해보고선 털어놓는 것이 좋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노라가 자살을 택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녀의 절망적인 과거를 숫자로 표현해보겠다. 죽기로 결심한 시간을 기준으로.
27시간 전, 사랑하는 반려묘 볼츠가 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9시간 30분 전, 12년 11개월 동안 몸 담았던 악기점에서 해고를 당했다.
9시간 전, 약혼자 댄을 떠올렸다. 참고로, 결혼을 2일 남겨둔 채 노라가 댄에게 문자로 파혼을 통보했다.
4시간 전,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의 SNS는 댓글도 0, 팔로워 요청도 0, 친구 요청도 0이라는 것을.
노라가 《나의 인생》을 펼치기 전, 잠시 책장에 기대어 이 수치들을 생각하며 노라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원인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선 《나의 인생》에서 펼쳐진 노라가 원했던 삶으로 함께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다.
노라의 후회섞인 문구들이 나의 평소 후회섞인 문구들과 접점을 이루니, 덩달아 노라의 감정에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인생은 더 소설같다고 하는데, 나의 삶 또한 어쩌면 더 소설같아서 잘 풀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결정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내일이 될 수도 있고, 한 달 후가 될 수도 있고, 일 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인생에 있어서 참 야속한 게 있다면,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의해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깨우친 것은 그것 또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단지,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살면서 힘들고 지친 나날이 계속되면 우리가 한가지 간과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삶이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기에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기에 현재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잘 가꿔나가는 것만이 확실하고 분명한, 유일한 해답이다.
주인공 노라도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삶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다.
남들은 내가 참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열심히 사는 건 아니다.
단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항상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후회'는 없을 테니깐.
후회없이 사는 이유는 단 하나다. 후회가 없어야, 떳떳하게 가슴 펴고 말할 수 있으니깐. 그래야 뒷말이 나오지 않을테니깐.
한 번밖에 주어진 인생, 그저 묵묵하게 나름의 최선을 다해 후회없이 만들어보자.
지금의 삶이 초라해 보이는 삶이면, 지금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 초라함에서 벗어나면 된다.
지금의 삶이 목표가 없는 삶이면, 지금의 삶에서부터 작은 목표 하나라도 세워 열심히 살아 점점 키우면 된다.
우울한 마음이 든다면, 혹은 그 마음을 넘어 우울증에 걸렸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종교는 없지만) 오롯이 너만을 위해 기도할게."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먼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불편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병원은 무조건 예약제로 진행되며 현재 병명에 맞게 치료방향을 정해주니깐.
잘못된 관념으로 흔히들 알고있는 정신과로 이미지나 분위기를 치부해버리곤 하는데 말그대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는데 무조건 '약'으로 해결하는 병원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되면 발생하는 상담/치료 비용등이 굉장히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긴 하다.
경제적인 부담 혹은 단순히 가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털어놓는 것'을 추천한다.
그 대상이 사람일 경우에는 들어주는 자세가 남다르고 남을 생각하는,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나 또한 그런 대상이 있고 내가 그 대상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 대상이 되어줄 때가 많은 나는 남을 위해주고 경청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입이 무겁고 신뢰감이 높은 사람이다.
(예전같으면 오글거려 절대 쓰지 못할 말인데 지금은 내 성격을 강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메니에르 증상이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예전에 언급했던 고민상담에 대해 빠르게 추진해보겠다.
조금은 예민한 감정을 가진 분들은 사람이라는 대상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꼭 털어놓는 상대가 사람일 필요는 없다.
매일 덮고 자는 이불 혹은 배게여도 좋고 손때 묻은 인형 혹은 피아노 그리고 책이어도 좋다.
이 때, 인형, 피아노, 책 등과 같은 물건은 꼭 내 손때가 타는 것이 좋다.
이불이나 배게도 단순히 추천한 것이 아니다. 매일 덮고 잔다는 건 자신을 보호해주는 느낌 내지 안정감까지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정한 것이다.
꼭 자기계발서를 읽을 필요는 없다. 인문/철학서도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 또한 피해야 한다.
삶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 가장 좋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와 같은 소설부터 여행, 인문 에세이까지 읽다보면 와닿는 느낌이 다른 책이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이긴 해도 찾지 못해서일 뿐,
나를 위한 사람이,
나를 위한 인생이,
나를 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마냥 처져있으면 계속 처질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을 받아들이고, 일단 지금을 살아가면 된다.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처해진 상황에 대해 받아들이며, 현재의 삶을 일궈나가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현재의 삶에 순응하며 살지는말고 현재의 삶을 일궈나가며 살아가자!
난 덧대고 덧댄 글들을 빠르게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이 되는 순간, 난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드디어,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