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심리학은 어떻게 행복을 왜곡하는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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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요즘 나는 '행복'을 찾고 있다.

어리지도, 어리숙하지도 않지만 행복의 기준에 대해 가끔씩 갸우뚱거릴 때가 있는데 요즘은 내 마음이 진정 바라는 그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그러던 중에 읽게 된 책이 바로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이다.


저자, 김 태형은 사회심리학자로 '함께'라는 심리연구소의 소장이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주류 심리학에 대한 실망과 회의로 학계를 떠나 한동안 사회운동에 몰두하다 다시 심리학자의 길로 돌아왔다고 한다.

주류 심리학에 대한 특유의 정교하고 날카로운 비판과 한국 사회를 향한 꾸준하고 거침없는 발언으로 '싸우는 심리학자', '전투적  사회심리학자'라고 불린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지금 당신은 행복합니까?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바란다. 당연하다. 본인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누구나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고 싶어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자 목표다. 즉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파스칼 또한 말한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며 여기에 예외는 없다. (…) 행복은 모든 행동의 동기이며, 심지어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는 사람도 이 점은 같다."

행복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돈을 번다.

그렇게 해야만 행복을 위한 수단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부를 위해, 돈을 위해 행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즉, 행복이 다른 목적을 실현할 수 없는,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란 뜻이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물건과 부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우울하고, 더 폭력적이며, 더 자살 지향적이고,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2016년에 우울증 환자의 수가 64만 여명으로 추산되었는데 3년 후인 2019년에는 79만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을 갈망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행복해지기보다는 더 불행해지는 건 왜일까?


돈이 곧 행복이라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난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수긍할 순 없을 것 같다.

물론, 물질주의 행복론이 결국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에 시달리며 돈을 많이 벌어야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들다고 하지만 각자의 사정이 다르니 완벽하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빈곤이 행복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으리으리하게 살지 않아도 조그마한 내 집 마련은 당연해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있는 사람들이 더 불린다고 가로채버리니 없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허덕이게 되고 그 속에서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고 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LH사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도 몇 년전에 한 변호사가 자기 소유의 123채의 오피스텔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물질주의 행복론이 일절 발을 붙이지 못하는 건전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쾌락주의 행복론은 왜 엉터리 행복론인가


심리학자 프롬이 말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라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오히려 행복에서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행복론에는 금욕주의 행복론, 쾌락주의 행복론 등이 있는데 금욕주의가 자본주의와 상극이라면 쾌락주의는 자본주의와 합이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쾌락주의에서 행복이란 쾌락의 증가와 고통의 회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보고, 욕망을 충족해 쾌락을 느끼는 것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최상의 행복은 쾌락에 있다고 말한 것인데 단, 행복해지려면 무분별하게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감정은 쾌 혹은 불쾌의 두 바구니 중 하나에 반드시 담긴다. (…)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긍정적인 감정 경험의 빈도와 부정적인 감정 경험의 빈도를 저울에 달았을 때 긍정적인 감정 경험 쪽으로 더 많이 기울면 행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쾌락이 행복이 될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달콤한 디저트를 먹을 때 쾌감을 느낀다면 종일 디저트만 먹으면 된다. 물린다 해도 다른 디저트로 대체하며 행복을 위해 계속 먹으면 된다.

이게 과연 옳은 것일까?

즉, 행복은 쾌감이 아니다. 불쾌를 피하고 쾌를 추구하는 행동으로 절대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


루소는 말한다. "내 영혼이 갈망하는 행복은 스쳐 지나가는 덧없는 순간들이 아니라, 유일하고 지속되는 상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철학자 반 덴 보슈는 말한다. "쾌락이란, 일회적으로 지나가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이다. 행복이란 인간이 만족하고 기뻐하는 상태다. (…) 순간적인 기쁨 이상의 것이다."

행복은 일시적인 쾌감이 아닌 지속적인 무엇이라 할 수 있겠다.



진짜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의식주는 물론이고 다양한 사회관계를 맺고 정신적, 문화적 요구도 충족할 수 있는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을 단순히 명사로 지칭하기보단 동사로 지칭할 수 있는 행복의 중요한 조건인 노동 또한 필요하다.

노동이나 직업이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에 의아할 수 있겠으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한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건강한 몸과 마음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느낄 수 있는 것은 결국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같다.

결국 행복은 목적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물은 본능에 의해 살아가지만 우리는 본능이 아닌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이 있다면 목표지향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고 삶의 의미를 가능하게 해준다. 또한, 이것이 만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여태껏 크고 작은 장애물들에 부딪혀도 억지로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내게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아픔과 상처를 겪었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 또한 크게 다쳤다.

"증세가 악화되면 시력에 손상이 갈 수 있습니다.", "증세가 악화되면 청력에 손상이 갈 수 있습니다." 등의 말들을 들을 때면 문득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를 돌이켜 보게 된다.

진짜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곱씹으며 모두가 삶의 목적을 마음 속에 품고 어떻게든 '잘' 살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그저 바람이겠지만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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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5-08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좋은 주말 되세요~

하나의책장 2021-05-16 23: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행복하게 마무리하세요ㅎ

서니데이 2021-05-08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1-05-16 23: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ㅎ 굿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