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덕지덕지 붙는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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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좀 들어줘유~"
"와, 많이도 캐셨내요, 어디서 캐신거에요?"
"요기 앞에 말뚝 보이쥬. 거기가 굴 양식장이유."
"이걸 하루에 다 캐신거에요?"
"늘상 하는 일인디 뭐."
"힘드시겠어요. 근데, 요즘 굴 얼마나 받아요?"
"키로에 만 오천원."
"올 겨울 돈 좀 벌으셨어요?"
"요즘 사람들은 굴도 안 먹는게벼."

그러게 말이다. 요즘 사람들 쌀도 안먹고 굴도 안먹고, ....
뭘 먹고 산다냐? 다들.

굴을 가득 담은 수레를 밀고 가는 할매의 걸음이 뒤뚱뒤뚱이다.

--충남 멧돌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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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통해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시절이 지나면서 개미와 베짱이는 패러디되고, 베짱이처럼 사는 것을 선망하는 사회가 됐다. 개미처럼 죽어라 일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처럼 보여질 정도다. 이젠 게으름이 찬양되기도 한다. 그럼, 개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충남 당진에 사시는 정광영 선생님은 평생을 농부로 사신 분이다.
1970년대 가톨릭 농민회의 '한마음 한몸' 운동을 통해 생명에 대해 눈뜨면서 친환경 농사를 지으셨다....
1980년대 '농산물 제값 받기' 운동을 위해 영농일지를 써오셨다. 정부에 제시할 근거를 위해서였다.
지극한 성실함은 습관이 되어 현재까지도 유기농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영농일지 또한 계속이다. 허리가 아프고 관절 마디마디가 쑤신다고 하시면서도 말이다.
현재 71세인 정 선생님은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개미의 후회없는 삶. 든든하다.
그런데 왜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고 씁쓸할까.
아마 개미가 애써 일군 성실함의 터전이 위태롭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관심 밖 세상이 되어버린지 오래고 고려장처럼 여겨지는 농촌에서 성실함은 그 빛을 잃고 있다. 베짱이 또한 실은 그 성실함이 뒷받침되어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은 왜 그리도 쉽게 잊어버린 걸까.

베짱이를 꿈꾸는 또다른 벌레는 오늘도 '성실하게' 개미처럼 노래 연습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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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가면 흔히 접하는 풍경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참 무단히도 빈다.
종이로, 돌로, 그리고 온몸으로...
'빌다'라는 뜻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원에 대한 갈망이라는 뜻과 함께
빌어 먹다라는 전혀 다른 뜻의 다른 단어가 있다....
그런데 '빌다'는 그야말로 빌어먹을 짓이다.
'오죽하면'의 또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빌어먹고 나면 어쨋든 배가 부르듯
빌고 나면 어쨋든 속이 부른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위안 덕분에 맘은 편하다.
그러니 ...
빌고 있는 어머니들이여,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월악산 덕주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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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 저거 축구공이야?"
"아, 저거. 축구하기엔 너무 작고 딱딱해보이는데. 아빠가 보기엔 당구공 같아."
"아니야, 야구공이야"
"야구공은 바늘땀 자국이 있어."
"바늘땀이 뭐야?"
"실로 꿰맨 자국."
"아빠, 내가 말했지. 저거 야구공 아니라고."
???

2. "아빠, 캥거루는 앞다리고 서는 거야?"
"글쎄... 아빠 생각엔 뒷다리로 서 있을 것 같은데."
"여기 봐봐, 그림책에 캥거루가 앞다리로 서 있잖아."
"어디, 딸내미, 이건 뒷다리야."
"아니야. 앞다리라구. 캥거리는 앞다리로 선단 말이야."
???

억지는 갑의 특권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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