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다. 갑자기 총에 맞아 죽다니. SBS월화드라마 <패션왕>의 결말 얘기다. 강영걸이 죽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누가 죽인건지 가늠할 수도 없으니 이유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래도 곰곰히 생각해봤다. 단순히 비극을 위해 치닫은 결말이 아니라면 무슨 의도라도 있을텐데.

 

그때 문득 떠올랐다. 1960년 알랑 드롱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가. 혹시 강영걸은 리플리 증후군-상류 사회를 꿈꾸다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 상태.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 톰 리플리의 이름에서 따왔다-에 걸린 불나방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정재혁을 꿈꾸다 그를 흉내내고 결국 파멸로 끝을 맺은 것은 아닐까.

 

패션왕이 초반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던건 개인적으로 자수성가라는 주제 때문이었다. 홍대 앞 노점상에서 시작해 동대문을 거쳐 세계 4대 패션쇼에 이름을 올린 최범석 디자이너라는 '기적같은' 이야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중반 드라마는 대기업을 상징하는 정재혁과 강영걸의 싸움으로 진로를 바꾼듯 싶었다. 그래, 뭐 이런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기업 프렌들리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보여주는 것도 말이다. 그런데 잠깐의 성공이라는 달콤함을 맛본 강영걸이 갑자기 바뀐다. 욕망과 복수에만 사로잡힌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후반 강영걸을 연기한 유아인의 얼굴은 내내 찡그리는 표정 뿐이다. 알 수 없는 사이 리플리가 된 것이다.

 

10%가 아니라 단 1%로 치닫는 상류층과 대다수의 하류층으로 나뉘어 버린 현재의 대한민국. 그 1%에 대한 욕망이 대한민국을 굴러가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른다. '대박'이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뒤틀린 언어가 되어버린 것도 혹시 이것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욕망은 끝내 불발이 되고 만다. 강영걸의 죽음처럼. 난데없는 드라마의 결말은 혹시 이런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허망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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