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 구경은 됐다, 신나는 나만의 예술하기!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4
채운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천재 예찬이란 게으른 자들이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하거나 감추기 위해 지어낸 픽션인 셈이다. (25쪽)

천재라고 불리는 자들은 예찬되어야 할 신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생성을 사유하게 하는 자들이고, 어떤 목적을 향해 달리는 자들이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자들이며, 타고난 자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자들이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인간의 능력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태도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는 대신, 바로 그 무능력 때문에 능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할 줄 아는 용기. 한 번 해서 안 되는 일이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반복해서라도 되게 하려는 끈기. 정말 커다란 능력은 바로 이런 용기와 끈기가 아닐까.(33쪽)

깨달음을 이러저러한 것으로 규정되는 순간 경계가 생기고, 경계를 갖는 순간 경계를 벗어나는 것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컨대, 인간을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동물이라고 규정하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인간이나 인간보다 더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이보그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무언가를 실체로서 사고한다는 것은, 이처럼 사고의 경계를 만드는 명사적이고 점적인 사유다. 그게 바로 선승이 깨달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제자들에게 대답 대신 몽둥이로 화답했던 이유다. 깨달음이 뭔지 알고 싶으면 그저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할 뿐, 깨달음을 얻는 비밀 같은게 따로 있을리 없다는 것. (68쪽)

우리가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건 많은 경우 습관에 따른 것이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저장된 미적 기준에 비추어 해석하려고 하다보니, 익숙하고 습관적인 감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작품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익숙하지 않으므로 아름답지 않으며, 아름답지 않으므로 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충격적인게 아닐까. 예술의 반대는 비예술이 아니고, 아름다움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상식 자체를 의심하는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경계를 넘어 작품 속에서 각자가 질문을 구성하는 것이다. 각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시각으로 질문하기. 즐거운 예술은 질물을 통해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의삼하라, 거침없이.(103쪽)

예술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그 순간부터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건 누굴 속이려고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다.(106쪽)

인물에 대한 시각이든 공간에 대한 시각이든 역사에 대한 시각이든 하나의 절대적 시각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실 역시 하나가 아니다. 내가 보는 세계와 다른 사람이 보는 세계의 다름과 그 다름의 공존을 인정하자. 그러면 다른 세계로의 넘나듦이 가능해질 테고, 진실은 그런 넘나듦의 과정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지 법칙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113쪽)

대상의 외형을 닮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힘을 포착하는 것. .... 11월의 나무나 2월의 나무나 겉으로 보기엔 같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채 앙상한 가지만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11월의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인 반면, 2월의 나무는 봄을 준비하는 나무다. 즉, 11월의 나무는 몸을 바짝 움츠리고 겨울을 견뎌야 하지만 2월의 나무는 기지개를 켜고 봄을 호흡해야 하는 것. 예술은 그 차이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122쪽) 

위대한 배우와 삼류 배우의 차이는 이 세계와 얼마나 더 공감하느냐에 달린 것. 예술적 능력이란 더 많은 것들과 공감하고 변신할 수 있는 능력 외에 무엇이랴. 그러므로 언제든 만남을 준비하고, 변신 태세를 갖출 것.(127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는 사랑을 매우 흥미롭게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이란 상대방이 방출하는 모든 기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 관심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든 얼굴을 감싸든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걸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저 삶이 피곤한가, 일이 잘 안 됐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건가 등등 사랑하는 사람의 몸짓 하나가 우리의 해석 의지를 마구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마치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문헌학자들처럼 사랑하는 이의 몸짓 하나, 말 한마디도 심혈을 기울여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언제나 부지런하다. 예술이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세상과 사랑에 빠진 예술가는 세상이 뿜어내는 기호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한다. 예술은 거창한 어딘가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건강한 예술은 그러헥 삶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예술을 사랑하는 방법은 삶을 사랑하는 방법만큼 많다. 삶과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눈부신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랴.(134쪽)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것이다. 무엇을. 살아 있음을..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면, 또 슬픔과 분노를 준다면, 그건 우리가 이러저러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141쪽)

구경은 보는 것을 대상화하는 행위다. 친한 친구가 겪는 기쁨이나 아픔을 구경하지 않듯이, 코끼리의 생태를 알고 코끼리와 친구가 된 사람이라면 코끼리를 구경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거다. ...때문에 자연이든 동물이든 누군가의 삶이든, 무언가를 구경하는 입장에 선다는 건 아주 시시한 일이다. 구경당하는 입장에선 아주 불쾌하고 끔찍한 일일테고.

행동하는 자들만이 질문한다. 행동할 때만 장애물을 만나고, 장애물을 넘으려는 의지가 있을 때만 질문이 샘솟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질문이 많은 것도 그들이 쉼 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예술 전체를 물음표로 만드는 의심이고 질문이며, 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일종의 분열증이다. 즐겁고 건강한 분열증.(169쪽)

관습과 명령에 무기력하게 길들여진 나약한 신체가 아니라 다른 이의 욕망과 접속하면서 나날이 건강해지는 신체,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대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변모시키고 확장하는 신체. 그런 신체는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끊임없이 두리번거리고, 끊임없이 발산하고, 끊임없이 달리기 때문이다. 또 그런 신체는 고립되어 있는 법이 없다. 두리번거리고 달리면서 친구들을 만들기 떄문이다. (187쪽)

자신이 감지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만큼이 자신의 세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공명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계는 넓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아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밭을 가는 말은 광야를 달리는 말보다는 밭을 가는 소에 가깝고, 들판을 달리는 소는 밭을 가는 소보다는 광야를 달리는 말에 더 가깝다. 그럴진대 소나 말이라는 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들이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보다 중요한건,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에 무덤덤한지, 또 무엇을 만나면 기쁘고 무엇을 만나면 슬픈지, 어떤 일을 하면 능력이 커지고 어떤 일을 하면 작아지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지를 아는 일이다. 거미처럼 나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미세한 떨림들을 번개처럼 포착하는 일이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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