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일본침몰 2020>은 <일본침몰>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본이 대지진으로 침몰한다는 설정만 가져왔을뿐 그 내용의 전개와 주인공, 시대적 배경 또한 다르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스핀오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유아사 마사아키 연출로 총 10부작. 2020년 공개됐다.
소설이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와 정재계 엘리트, 과학자를 중심으로 국가의 위기관리와 일본의 순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애니는 평범한 한 가족의 생존탈출기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하고 전국 곳곳이 재난에 휩싸인다. 무토 아유무는 도쿄에서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데, 4년 후 국가대표 선발이 유력한 육상 꿈나무이다. 하지만 지진으로 인해 라커룸이 무너지고, 아유무는 건물이 무너진 잔해에 깔린 동료들을 버려둔 채 혼자 빠져 나온다. 이때 캐비넷에 긁혀 발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혼자 도망쳐 나온 아유무는 가족을 찾아 움직이고, 결국 남동생을 비롯해 필리핀 태생의 엄마, 조명기술자인 아버지 등을 만나게 된다. 가족은 생존을 위해 도쿄를 탈출한다. 이들의 탈출은 성공할 수 있을까.
스포일러 주의
<일본침몰 2020>을 보고 있자면,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주는 트라우마에 얼마나 일본인들이 불안해 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섬이 언제 잠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아유무의 동생 고우는 일본에서 사는 것을 싫어한다.
애니는 도쿄를 떠나 일종의 모험을 떠나는 가족을 따라간다. 이 가족은 여행 도중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런데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지면서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죽어 나간다. 그리고 이 죽음엔 아유무와 관련이 깊다. (완전히 고구마 같은 캐릭터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느닷없는 사건이 터지면서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반면 이들이 중간에 찾아간 샨 시티라는 곳은 마치 사이비 집단의 거주처처럼 보이지만, 일견 유토피아로 여겨질 정도다. 예측 못할 죽음이 지나가고 순간 평온함을 찾는다. 대지진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방문객들을 평화롭게 맞이한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지속되지 못한다. 지진의 여파는 샨 시티마저 집어 삼킨다. 극과 극을 오가는 여정이 주는 예측 불가가 <일본침몰 2020>의 매력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이런 극과 극의 오감이 일관성 없음으로 비칠 수 있겠다.
다만 에스토니아 출신의 유명 유튜버인 사이토의 생존 능력은 주인공 버프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사이토는 무토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이들을 여행의 목적지로 이끈다. 중간 중간 위험에 빠져 죽었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다시 돌아와 무토 가족을 돕는다. 애니 초반 지진 이후의 일본 상황과 시민들의 행동이 현실과 굉장히 가깝다는 느낌을 주다가, 사이토 이후 주인공 버프의 작동으로 현실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반대로 이런 영웅에 가까운 생존 기술을 즐겁게 만끽할 수도 있겠다.
지진 속 국가가 사라지는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주 작고 약한 손이라도 내밀고 싶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