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연일 화제다. 감독 필모의 최고작이라는 극찬이 쏟아지고 있다. 해외도 국내도 모두 최고 평점을 받을 정도로 칭찬 일색이다. 172분 동안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눈앞에 그대로 펼쳐내는 점이 놀랍다. 특히 CG를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실제의 물성을 필름으로 잡아내고 있어서 아이맥스가 아니더라도 화면이 전체적으로 묵직하다. 멧 데이먼, 앤 해서웨이. 톰 홀랜드, 샤를리즈 테론, 로버트 패티슨 등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빼 놓을 수 없다. 


다만 <오디세이아>의 내용을 알고 보는 사람들과 모르고 보는 사람들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테고, 특히 정통 서사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호감이 가는 반면, 최근 우리가 접하는 자극적인 내용과 반전 등의 스토리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CG의 발달로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화면에 익숙한 이들에겐 실제 모습으로 표현되는 극 중 판타지적 요소가 오히려 흥미를 줄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트로이 목마라는 전술을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 왕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의 과정과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의 빈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108명의 무뢰배(?)를 처단하는 과정을 그린다. 다만 이 지난한 과정을 시간의 순서대로 보여주질 않고, 고향에서의 현재 상황과 회고 장면을 오가는 식으로 극을 전개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순서대로 정렬하지 않는 것은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어 고향에 돌아와 경쟁자들마저 처단한다는 영웅적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지 않았을까 싶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향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선택의 상황에 놓인다. 그 선택의 상황은 많은 이들을 잃을 것인가, 소수를 희생할 것인가의 선택지인 경우가 많다. 또한 모든 선택이 이성적 판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감정적 판단도 개입된다. 오디세우스 자신은 항상 최선의 선택을 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대부분 희생이 따르면서 그에게는 승리와 생존이라는 자부감 보다는 희생된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둘러싼다. 놀란 감독은 오디세우스의 이 죄책감을 영화의 중심에 놓고 오디세우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또한 당시 이들의 문명을 지탱했던 <제우스의 법> 즉 '낯선 이를 환대하라'는 규칙이 오디세우스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제우스라는 신이 거지의 모습으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수 있으니, '거지 차림의 낯선 이라도 내쫓지 말고 접대를 하는 것이 좋다'라는 규칙은 절대 법칙에 가깝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 규칙을 이용해 트로이의 목마를 적에게 바치고, 목마 속에 군인들을 숨겨 기습하는 작전으로 전쟁에 승리한다. 반면 고향에서는 환대의 법칙 때문에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10년이 넘게 왕의 빈자리를 대신하면서도 그 자리를 넘보는 이들을 내쫓지 못하고 접대를 지속한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돌아와 접대를 받는 이들을 척결한다. 즉 환대의 시대가 끝이 났으며, 그것은 현 문명이 몰락했음을 말한다. 이제 환대의 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어떤 새로운 문명이 도래할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문명이 각자도생의 시대로 흘러가는 것이 바로 환대의 시대가 저물고 나타난 모습일지도 모른다. 


정통 서사극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강추하지만, 이런 서사에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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