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빈민가 아테나. 이곳에 사는 10대 아이가 경찰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에 분노한 아이의 세째 형 카림은 살인을 저지른 경찰을 찾아내라며 아테나에서 폭동을 일으킨다. 반면 둘째 형 아델은 군인으로 막내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폭동에는 동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 짓고자 한다. 첫째 형 모크타르는 막내 동생의 죽음엔 별 관심이 없고 폭동으로 인해 경찰이 몰려오자 마약밀매업을 하고 있는 자신의 사업이 손해를 입을까 전전긍긍한다. 


이들 형제는 알제리계 이민자 후손으로 프랑스에서 차별과 소외를 받고 있기도 하다. 막내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이 형제들이 각각 어떻게 죽음을 대하는지를 영화는 거칠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대부분 폭동의 현장 속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데,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장면이 많아 현장감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롱테이크가 가지고 있는 현장감이 오히려 주인공들 행동의 부자연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해 짜여진 각본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카메라가 혼잡한 군중을 뚫고 자유자재로 옮겨지는 장면은 눈길을 끈다. 메이킹 필름을 보고나서, 어떻게 이 장면이 가능했는지를 알게 되고 무릎을 탁 쳤다. 언뜻 드론으로 촬영한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웬걸, 카메라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장벽을 자연스레 넘어가며 찍었던 것이다. 롱테이크가 빚어내는 긴장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보는 재미를 넘어,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소외되고 억눌린 자의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형제의 죽음으로 분노가 폭발했지만, 그 분노는 오직 동생의 죽음으로 발생한 것만은 아니다. 공권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정의가 구현되어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일련의 사건들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 큰 몫을 차지한다. 군인인 아델이 카림을 설득할 수 없었던 것은 경찰이 진범을 찾아내지 못하고 감출 것이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공권력이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 된다. 우리 사회도 점점 다원화 되어지고, 이 과정에서 차별과 소외를 받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며, 게다가 빈부격차도 더욱 커져가고 있기에, 정부의 정의가 바로 서야만 갈등의 세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공권력은 갈등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그렇기에 경찰과 검찰이 정의로워져야 함은 필수이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청불. 프랑스 영화. 97분. 2022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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