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넷플릭스. 2019년 10월 23일 개봉. 청불. 드라마. 140분,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헝가리. 데이비드 미쇼 감독, 티모시 살라메 주연. 투박하지만 리얼한 액션, 감정과 욕망이 흔들어대는 정치가 담긴 묵직한 드라마. 


2.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 100년 전쟁 중 중반인 1415년 아쟁쿠르 전투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역사적 사실 중 전투의 양상과 결과는 가져오되, 나머지는 작가의 관점이 다소 들어가 있는 듯 보인다. 당시 전투에선 잉글랜드 병력에 비해 프랑스군은 중무장한 병력의 수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날씨와 지형 등의 영향을 잘 이용한 잉글랜드가 승리했다. 대규모 군사가 일제히 움직일 수 없는 좁은 지형에 비가 온 후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무거운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움직임이 둔해져 프랑스군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패했다. 


3. 영화 <더 킹:헨리 5세>는 헨리 5세가 어떻게 왕위에 올라서 아쟁쿠르 전투를 펼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전쟁과 이로 인한 죽음을 피하고자 했던 왕자 할은 왕좌에 관심없이 저잣거리에서 술과 여인으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동생이 왕의 자리를 얻고자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동생의 죽음과 병사들의 죽음을 막고자 상대의 수장과 1대 1 결투를 제안해 승리함으로써, 오히려 명성을 얻고 결국 왕위에 오르게 된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삶을 우리는 '운명'이라 부르곤 한다.


## 일종의 스포일러##

4. 왕 위에 오른 할, 헨리 5세는 명분없는 전쟁을 피하고자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자신을 죽이려 암살자를 보내는 등 도발이 끊이질 않는다. 결국 전쟁을 선언하고 프랑스로 침공한다. 전쟁에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지만, 자신을 전쟁으로 이끌었던 프랑스의 도발이 모두 거짓 정보였음을 알게 된다.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해 이권을 얻으려 했던 신하의 속임수였던 것이다. 잘못된 정보가 불러 온 전쟁. 어딘가 현실의 모습과 겹치지 않는가. 


5. 영화 <더 킹:헨리 5세>의 전쟁 장면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몸과 몸이 부딪히고 쓰러지며 뒤엉키는 투박한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전투 장면 하나 없이 투석기만을 쏘아대는 공성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전쟁이 이어질지, 전투는 어떻게 진행이 될지,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이런게 바로 연출의 힘이 아닐까. 


6. 영화 속 헨리 5세가 바라던 평화는 결국 전쟁을 치르고서야 이루어진다. 물론 이 평화는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지 않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전쟁은 결코 단 한 번으로 끝난 경우는 없다. 그 어떤 이유로든 전쟁을 추동하는 자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살펴봐야 한다. 그 목적/목표가 평화라 하더라도 말이다. 


600여년 전 우리 땅과 먼 유럽에서 벌어졌던 전쟁 속에서 지금의 우리 현실이 얼핏 보이는 것은 왜일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혀 믿기지 않다 보니, 역사적 장면들 속에서 자꾸 현실을 대입하려 한다. 그 사실 속에서 해결책을 찾고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계엄이라는 사건은 가짜 뉴스에 휘둘려 민주라는 허울을 쓴 목표로 거짓 또는 국지적인 전쟁까지도 도모한 모양새다. 이성적 성찰과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파묻혀 권력을 남용하면서 비극이 벌어졌다. 이런 비극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이권세력들의 민낯을 기억하고, 이들이 또다시 같은 일들을 벌일 수 없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감정의 파고에 휩쓸려 일을 그르치지 않는 힘 또한 길러야 할 것이다. 한 개인의 그릇된 욕망으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민주의 자세와 제도를 튼튼히 갖추어 가야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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