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20일 가끔 비 23도~31도
작은 밭을 가꾸면서 가장 겁이 나는 것은 뱀과 벌이다. 눈에 잘 보인다면 피하거나, 막대기나 약품 등을 사용하여 쫓아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뱀과 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디서 마주칠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게 한다. 하지만 밭 일을 하면서 두려움에 떨며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애쓰는 것은 아니지만 뱀과 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즉 생각을 안 하면 된다. 물론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에 자꾸 코끼리가 떠오르듯(정치권의 프레임 싸움), '뱀과 벌을 생각하지 마'라는 생각조차 없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밭 작업을 할 때는 실제 이런 생각조차 없다. 특히 올해는 지금까지 밭에서 뱀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아 더 그렇다. 지난해의 경우엔 봄에 두 번 정도 마주쳤는데 말이다.
하지만 약을 치지 않는 밭에, 두더지가 쏘다니는 밭에, 꿩이 알을 낳는 밭에, 뱀이 없을 리는 없었다. 기어코 뱀과 마주쳤다. 풀을 베고 농기구를 정리하러 우물가로 가던 중 어른 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은 뱀이 복분자 나무 밑으로 쏘~옥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이쿠야! 살짝 기겁을 하고 복분자 나무에서 쫓아내려 막대기로 휘휘 저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한참 복분자를 따야 하는데 뱀이 있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뱀을 본 이후로는 모든 게 조심스럽다. 혹시 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먼저 긴 막대기나 예초기로 휘휘 저어본다. 뱀이 실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행동의 변화를 가져 온다. 물론 뱀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존재를 잘 관찰해서 대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뱀이 실재하느냐 실재하지 않는냐 보다 더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관념이다. 머릿속에서 뱀이 떠나지 않는 한 뱀은 존재한다. 물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뱀에 대한 걱정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뱀이 없는 것은 아닐텐데도 말이다.
관념과 실재 사이. 밭 일을 하며 마주친 뱀이 남긴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