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1
S. N. Goenka 지음, 윌리엄 하트 엮음, 담마코리아 옮김 / 김영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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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불교라는 종교적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붓다가 처음부터 종교를 세우겠다고 생각했을리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깨친 것, 인생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했을 겁니다. 그런 가르침들이 어떤 형식을 갖추어가면서 불교라는 종교로 탄생 되었을테죠. 

 

이책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은 종교와는 상관없이 붓다가 우리에게 전한, 삶을 보다 행복하게 이끌어주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로 위빳사나 명상이라는 것입니다.

 

이책에선 붓다가 우리 삶이 고통인 이유를 갈애(갈망과 혐오)때문이라고 봅니다. 

 

진짜 깜마, 고통의 진짜 원인은 마음의 반응입니다. 한순간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반응은 그렇게 강하지 않을 수도 있고, 대단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적됩니다. 반응이 순간순간 반복되어 매번 심화되면, 갈망과 혐오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첫 설교에서 붓다가 딴하라고 한 것, 문자 그대로 설명하면 갈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이룰 수 없는 것을 끝없이 바라는, 동시에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불만을 갖는 정신적 습관입니다. 그리고 그 갈망과 불만은 그것이 클 수록 우리의 사고방식, 언행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더 많은 고통을 낳습니다.  77쪽  

 

붓다는 인과론을 말합니다. 고통의 원인인 갈애는 도대체 왜 생겨나는 것일까요.

 

깜마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한 행동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 됩니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행위를 소유하고, 행위를 물려받으며, 행위로 인해 생겨나고, 행위에 얽매여 있다.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안식처이다. 행위의 천함과 고귀함에 따라 자신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72쪽

 

말이나 행위, 겉으로 드러나는 영향은 단지 정신적 행위의 결과일 뿐입니다. 표현된 것의 실제 의도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정신적 행위야말로 미래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 즉 진정한 깜마입니다. 75쪽

 

자, 그렇다면 우리가 갈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행위해야 할까요. 흔히들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을 극한으로 몰고가다보면 삶에도 집착하지 않는 극도의 허무주의로 흘러갈 수도 있을법 합니다. 집착하지 않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집착 없음이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신성한 무관심입니다. 부모로서 당신은 자녀를 사랑으로 돌볼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집착하지 않고 그렇게 해야 하지요. 책임을 다하되 사랑이 넘쳐흘러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당신이 아픈 사람들 돌봐준다고 합시다. 당신이 돌봐줬지만 그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울지 마세요. 그건 쓸모없는 짓입니다. 평정심으로 그를 도울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성한 무관심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반응하는 것도 아니지요. 대신 균형 잡힌 마음으로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106쪽

 

아마, 이런 것 같습니다. '어떤 목표나 목적을 세우고 일을 진행하면서 그 목표나 목적에 집착하지 마라. 그저 최선을 다하라.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즉 내 능력 밖이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 그저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정도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결과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만, 행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세요. 125쪽 

 

그런데 자칫 이런 최선을 다한다는 행위가 모든 욕망을 끊어버리는 자기 억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자기절제가 오직 자기억압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정신적 긴장이 위험한 수준까지 높아지게 됩니다. 모든 억압된 욕망이 홍수로 범람하는 물처럼 자기부정이란 댐 뒤에서 차오를 것입니다. 그 댐은 언젠가 무너져 파괴적인 홍수를 일으키게 됩니다. 169쪽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갈망과 혐오에 빠지지않고, 극도의 자기절제라는 긴장된 상태가 아닌채, 나의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요.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고통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반응하지 않고 관찰하십시오. 어떤 경험은 유지하려고 하고 다른 경험은 피하려고 하는 대신에 이것은 가까이하고 저것은 밀어내는 대신에, 침착하게 평정한 마음으로 모든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만 하십시오.  183쪽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 바로 명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찰이 꼭 유쾌한 경험인 것만은 아닌가봅니다.

 

자기관찰을 통해 얻은 통찰들이 모두 유쾌하고나 더없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보통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선별적으로 바라봅니다. 거울을 볼 때 우리는 가장 돋보이는 자세를 취하고 제일 멋져 보이는 표정을 짓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는 평소에 성격 전체 중 자신의 장점은 최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며, 어떤 면들은 아예 빼고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현실이 아니라 보고 싶은 이미지를 봅니다. 그러나 위빳사나 명상은 현실을 모든 각도에서 관찰하는 기술입니다. 위빳사나 수련생은 자신이 어떠하다는 엄선된 이미지보다,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마주합니다. 어떤 면들은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지요.  22쪽

 

진리를 직접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을 바라보는 것, 자신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37쪽

 

우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자신과 남들에게 유익한, 건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관찰, 진리관찰의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44쪽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바로 수양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수양의 실천법을 담고 있진 않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고엔카의 명상을 교육하는 곳에서 직접 배워야 할 테이지요. 다만 우리 삶이 고통이며, 그것의 원인은 갈애이니, 자기관찰이라는 명상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제거해서 행복한 삶을 누리자는 말씀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집착하지 않는 삶이란 것이 결코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아님을, 자기관찰의 명상이 나만 행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알아차림과 평정심을 강하게 함으로써 모든 존재의 행복을 위해 수행하고 있습니다. ... 결국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부정성이 이 세상의 고통의 원인입니다. 마음이 순수해지면 우리 앞에 무한한 세상이 펼쳐지고,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즐기고 나눌 수 있게 됩니다. 260쪽

 

모두의 마음에 평화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기를 기원해봅니다.

 

 

 

 

 

 

 

 

 

 

 

 

 

붓다가 자주 말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모두 고통과 연관되어 있다. ... 모든 감각이 고통의 씨앗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워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서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됩니다.
- P286

붓다는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하고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순간에서 순간으로 흐르는 하나의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존재라는 것은 없으며,, 오직 계속되는 흐름, 지속적인 생성의 과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 P60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동시에 스스로를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힘을 다해서 그 사람을 막아야 하고, 오직 선의와 자비,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한 동정심만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혐오감과 분노로 행동한다면 그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지 않다면 그런 사람에 대한 선의를 가질 수 없지요. 그러니 자신의 내면에 평화를 계발하는 법을 수행하십시오. - P64

여덟가지 성스런 길에서 지혜를 훈련하는 두 가지 방법은 바로 바른 생각과 바른 이해입니다. 생각은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매 순간 지속되면 그것으로 위빳사나 수행을 시작하기에 충분합니다. - P171

갈망과 혐오의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체적 시각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깊이 궤뚫어볼 줄 알고, 겉으로 보이는 실제를 구성하는 그 속의 현상을 지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 P227

항상 평정을 유지한다는 것이 더 이상 다양한 삶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평정심으로 우리는 인생을 더욱 즐길 수 있습니다. 유쾌한 상황이 일어나면 완벽한 그리고 흐트러짐 없는 알아차림으로 현재를 완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이 지나갔을 때도 우리는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 또한 변화하는 것임을 이해하면서 여전히 미소를 짓습니다. 마찬가지로 힘든 상황이 오면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황을 낫게 해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이 경험 또한 무상하고 변화할 것임을 알고 계속 평화롭게 머뭅니다. 이런 방식으로 마음이 긴장하지 않게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즐겁고 건설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P240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착각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 P251

우리를 해탈로 이끄는 진정한 지혜는 무상함, 자아의 허황된 성질 그리고 고통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를 통해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이해입니다. - P253

붓다의 가르침은 자신에 대한 인식을 자기변화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체계입니다 자기 본성의 실제를 경험적 이해를 통해 얻음으로써,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배워서 건설적이고 유익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 P275

고통의 원인은 딴하, 즉 갈망과 혐오입니다. 이것은 보통 우리가 신체의 감각기관과 마음으로 접한 다양한 대상을 향해 갈망과 혐오의 반응을 일으키면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대상과 반응 사이에 숨겨진 사슬의 고리, 웨다나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외부적 실제가 아닌 우리 내부 감각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갈망이나 혐오로 반응하지 않고 감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면, 고통의 원인은 일어나지 않고 고통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붓다의 가르침을 수행하기 위해선 웨다나를 반드시 관찰해야 합니다. 웨다나를 제대로 알아차리려면 몸에서 관찰해야 합니다.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면, 우리는 문제의 뿌리까지 꿰뚫고 들어가 그것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본성을 깊이 관찰할 수 있고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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