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산문'이라는 개념이 잘 안 잡히지만 (오세영 선생님 덕분에 '산문'이라는 것은 '운문'에 대비되는 말로만 뇌리에 박혀있다. 중국에서 '산문'이란 수필인데, 무엇이든 다 다룰수 있는, 그러하되 '소설'처럼 작가의 '허구성'이 전제된 것은 아닌, '인문사회서'보다는 자유로운.. 뭐 그런 이미지인가 보다) 중국에서는 이 '산문'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중국 산문을 떠오르면, 역시 루쉰. 이 촌철살인. 

"계급사회 안에 살면서 계급을 초월하는 작가가 되려 하고, 전투의 시대에 살면서 전투를 떠나 독립하려고 하며, 현재에 살면서 장래에 줄 작품을 만들려 하는 이런 사람은 실로 마음속에 환영을 만드는 것이지 현실세게는 없다. 이런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은 마치 자기 손으로 자기의 머리털을 잡고 지구를 떠나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는 떠날 수 없다" (243) 

 

 

 

 

이런 명문장을 보면, 역시 해당 언어를 공부하고 싶어진다. 김시준 선생의 번역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김시준 선생의 '루쉰소설전집'으로 루쉰을 읽기도 했다.) 루쉰은 항상 그 살아있고도 통쾌한 비유로 나를 살아잡았다. 아 중국어 다시 힘 내서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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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23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국어로 시를 읊고 싶어요.
루쉰의 저 문장은 정말 멋지군요 ㅎㅎ

기인 2009-03-2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루쉰 문장은 참 독특해요 :)
 

오랜만에 복학하니 수업 듣는 모드가 잘 안잡힌다. 지금은 중문, 영문, 국문 수업을 듣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박사과정이라는 것은 이제 학계에서 '논문'이라는 것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고, 직업적으로 논문을 써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대학들에서의 평가가 모두 얼마나 많은 수의 논문이 '등재지'에 실렸느냐 여부이다) 그런데 이 논문이라는 체제가, 논문을 위한 논문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고민이다.  

결국 논문이란 어떤 종류의 틀에 맞추어서 특정 종류의 '앎'을 생산이나 조직해 내는 것일 터인데, 과연 내가 이것을 하고 싶은가,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학부 때 알아차렸거나, 적어도 석사 때 끝냈어야 할 고민을 아직도 하고 있으니, 항상 늦되고 남들 고민 다 끝나면 고민을 시작하는 나이지만, 답답하다. 

국문학 연구에서는 '이론' '방법론' '연구'라는 세가지 층위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세 층위가 따로논다. 이 세 층위를 화해시키는 것이, 결국 복학 첫학기의 목적일 터이다. 이론은 하늘에서 놀고, 방법론은 70~80년대이고, 연구는 지리멸렬하니 어쩌란 말인가.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서 헤엄쳐야 하는데, 무얼 또 그리 머뭇거리는지... 

아마 이것이 '밥값'을 하는 일인지 하는 고민일 터이다. 빡세게 몸으로 굴리는 것이라면, '사회' 속에서 운동을 하거나 직업을 갖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 '박사과정'이라는 것. 과연 밥값을 무엇으로 해야하나.  

우선은 맘 편히 그냥 '학생'으로 생각하고 눈이나 크게 뜨고, 귀나 열어 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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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어떻게 읽을까 - 도쿄대생을 위한 문학 교과서
가와모토 고지.고바야시 야스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문학 공부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필히 읽어볼 것. 정말 좋은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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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준 선생의 책만 보면, 국공합작 시기의 문인들은 자유로운 문학장 속에서 글을 발표하고 논의를 진행시킨 것 같은 환상이 생긴다. 

당시 각 정부의 '문화'정책은 어떠했을까? 공산당이 아직 문예선전정책에 관심이 없었을 때이니만큼, 다른 당파들도 그러했을까? 중국공산당이 문예선전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김시준 선생에 따르면 이는 1928.05이다. 이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미 카프는 1925에 성립되어 있었다. 중국 내 여타 사정들과 코민테른의 논의들, 동아시아의 담론 공간 등, 살펴볼 것이 많다.)

하나의 글, 또는 담론들에 새겨진 여러 갈래의 욕망들을 추적하는 일이 흥미로울 것 같다. '저자' 자신의 욕망 뿐만 아니라 (혹은 그 욕망이 구성되게 된 여타 힘의 흐름들) 당대 문학 장의 배치 등을 살펴볼 수 있으면, 보다 넓은 시야가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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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신해혁명전후 <<청년잡지>>의 발간 1915년을 기점으로 중국'현대문학'사가 시작된다고 본다. 중국현대문학사를 공부하면서 2가지 정도 의문점이 드는데, 

우선 첫째는 문학운동의 배경이 되는 물질적 기반이다. 소위 '언문일치'체의 주장을 하면서 '백화문학'운동이 일어나는 시점에, 당대 중국 인민들의 문해력의 수준이나, 잡지출판계의 상황(발간부수, 독자수 등), 전업작가라는 것이 가능했었는지, 가능했다면 어느정도 규모인지, '등단'과 같은 제도나 출신성분별로 학교라는 벽이 있었는지와 같은 문학 장이 성립될 수 있었던 배경들이 궁금해진다. 

둘째는 원세개 집권 전후의 '검열'이라는 시스템, '검열당국'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유사한 시기, 또는 4~5년 뒤의 한국은 일제 총독부라는 '검열당국'이 작동하는 하에서 문학을 하고 또 어쩌면 그때문에 '문학운동'이나 '문예운동'이라는 점이 중요해졌고, 또 일제도 이를 유인하고 야기한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중국 초기 문예운동가들이 정치로 전환하게 되는 것과 비교해보라) 원세개 집권과 지방 군벌들의 담론 장악력이 어느정도였는지, 검열 또는 자기검열의 문제가 궁금해진다. 

중국현대문학사를 들여다보면서, 일본문학사를 볼때와는 다른 의미에서, 한국(한반도)문학사의 이중삼중적인 복합성이 보여서 흥미롭다. 제국-식민지라는 층위, 서구-동아시아라는 층위, 일제-조선이라는 층위가 복합되면서, 서구-동아시아라는 층위만 유독 작동하는 일본이나, 서구-동아시아, 반식민지라는 층위가 작동하는 중국등이 보이면서, 역시 모두 특수속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며, 상호비교를 통해서 한-중-일의 독특성이 드러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을 파고든 연구를 더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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