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신해혁명전후 <<청년잡지>>의 발간 1915년을 기점으로 중국'현대문학'사가 시작된다고 본다. 중국현대문학사를 공부하면서 2가지 정도 의문점이 드는데, 

우선 첫째는 문학운동의 배경이 되는 물질적 기반이다. 소위 '언문일치'체의 주장을 하면서 '백화문학'운동이 일어나는 시점에, 당대 중국 인민들의 문해력의 수준이나, 잡지출판계의 상황(발간부수, 독자수 등), 전업작가라는 것이 가능했었는지, 가능했다면 어느정도 규모인지, '등단'과 같은 제도나 출신성분별로 학교라는 벽이 있었는지와 같은 문학 장이 성립될 수 있었던 배경들이 궁금해진다. 

둘째는 원세개 집권 전후의 '검열'이라는 시스템, '검열당국'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유사한 시기, 또는 4~5년 뒤의 한국은 일제 총독부라는 '검열당국'이 작동하는 하에서 문학을 하고 또 어쩌면 그때문에 '문학운동'이나 '문예운동'이라는 점이 중요해졌고, 또 일제도 이를 유인하고 야기한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중국 초기 문예운동가들이 정치로 전환하게 되는 것과 비교해보라) 원세개 집권과 지방 군벌들의 담론 장악력이 어느정도였는지, 검열 또는 자기검열의 문제가 궁금해진다. 

중국현대문학사를 들여다보면서, 일본문학사를 볼때와는 다른 의미에서, 한국(한반도)문학사의 이중삼중적인 복합성이 보여서 흥미롭다. 제국-식민지라는 층위, 서구-동아시아라는 층위, 일제-조선이라는 층위가 복합되면서, 서구-동아시아라는 층위만 유독 작동하는 일본이나, 서구-동아시아, 반식민지라는 층위가 작동하는 중국등이 보이면서, 역시 모두 특수속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며, 상호비교를 통해서 한-중-일의 독특성이 드러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을 파고든 연구를 더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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