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man (Paperback, GPH) - The Long Halloween
Loeb, Jeph / DC Comics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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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퍼히어로 물이나 그래픽노블에 대해 기대가 참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래픽노블 중 최고 수준에 달했다는 이 책을 원서로 질렀다. 결론적으로는 실망이다. 

배트맨. 누구나 알 만한 슈퍼히어로다. 재벌에 훈남이고 천재고 무술은 선수급, 부모님이 범죄자에 의해 살해당해서 스스로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돈을 처발라서 여러가지 기구를 소지하고 박쥐 코스튬을 입고 악당들을 처치하는 정신이상자. 

배트맨이 사는 '고담 시'라는 곳은 이미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는 곳이라서, 배트맨은 밤마다 악당들을 때려잡지만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니 밤의 활극은 되풀이 된다. 서사의 기본이다. 주인공은 무언가를 해결하려 하지만, 그것이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 결국 서사의 기본인 것. 

그런데, 이 배트맨 아저씨는 결국 공화당이 총기허용하는 논리인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해야만 한다' 를 떠올리게 한다. 치안이 안 좋아서 우리 부모님이 죽었음으로, 나는 돈 처들여서 나 스스로를 방어할 뿐만 아니라, 사회 악을 지맘대로 처단한다는 것. 법은 악당들을 무찌를 수 없으니 내가 스스로 한다는 것.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아닌가? 유럽의 스킨헤드들의 논리. 외국인들 때문에 경제가 망가졌는데, 그 놈들을 법이 처단하지 않으니 우리가 스스로 처단하겠다는 것. 나는 영웅이라는 것. 배트맨의 코스튬과 스킨헤드와 문신의 차이는? 배트맨은 재벌이고 스킨헤드는 가난하다는 것. 그렇다면 배트맨은 극우 정치인에 가까울 수도, 혹은 그들의 욕망. 

데모대를 보는 우파의 논리는, 저 놈들은 직업도 없고 사회 불만이 많고, 열심히 일하는 내 돈을 세금으로 다 떼어가려는 도둑놈 같은 놈이라는 시선이다. 이를 만화적으로 처리하면, 결국 고담시의 '악당'들 아닌가? 

왜 배트맨은 그 엄청난 재력, 능력, 미모를 가지고 시스템을 바꿀 생각을 안 할까? 이 만화가 계속 강조하는 것은, 시스템은 구제될 수 없다는 음울한 비젼이다. 결국은 개인이 돈을 드렇게 많이 벌거나, 아니면 캣우먼처럼 고양이적 능력을 얻거나 해야지,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영웅이거나 악당이거나, 아니면 모두 음울한 피해자. 시스템은 마피아에 의해 장악당해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세계. 고담시.

왠지 한미 fta의 무차별적 개방이 가져올 세계처럼 보인다. 슈퍼히어로라는 전제자체가,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에 기반한다. 영웅에 대한 기대는 현 시대에 대한 회의, 시스템에 대한 절망에서 비롯한다. 이에 비하면 드래곤볼의 '원기옥'이야말로 영웅을 통해 민의가 구현되는 과정, 민의의 힘을 보여준다고 말한다면 오버겠지.  

여튼 배트맨을 보면서 극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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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프스키 2012-03-2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서 일독 잘 했습니다. 그리고 문서를 가져가겠습니다.

배트맨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예전에 저도 당연히 본 적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런 의미였네요. '억울하면 출세하거나 부자가 되라!'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꺼라!'

영화에 배트맨의 고담시가 있다면 연극 - 음악(오페라/가극)엔 브레히트(1898 ~ 1956) - 바일(1900 ~ 50)의 <<<마하고니시의 흥망>>>의 마하고니시도 있긴 합니다. (Sony 에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으니 공연을 보시거나 음반 중에 하나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고담시와 마하고니 시 모두 디스토피아를 의미하지요. 다만 영화 배트맨이 당연한 (영웅)서사와 지배욕을 그렸다면 '마하고니'시는 부조리를 폭로한 것입니다.

문서가 간명하면서도 핵심을 폭로해서 더 좋다는 생각입니다. ^^

릴케 현상 2012-11-10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이 생각나는군요. 오랫만에 알라딘 들어오니 기인님도 보네요.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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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는 꼼수다'를 듣지 않았다. 이유는, '반한나라당'이라는 것은 내게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반한나라당', '반MB'를 주창하는 프로는 내게 새로울게 전혀 없었기 때문. 

이 책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관심이 없었는데, 딴지일보를 후원하는 심정으로 사서 봤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부터 나꼼수를 열심히 듣게 됬다. 더 잘 분노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으니까)

결론적으로 꽤나 흥미롭다. 첫장의 김어준의 좌파 우파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논의는 조금 유치해서 더 읽을까 말까 망설이게 했지만, 끝까지 읽어본 결과 추천이다. 이는 '반MB'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대한 비판과 충고, 내가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왜 이렇게 박근혜가 지지율이 높은가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 

즉 이 책을 읽었으면 좋은 사람. 

1. 진보정당 지지자 (닥치고 읽어볼 필요 있을듯) 

2. 박근혜 지지를 이해할 수 없거나, 박근혜를 지지하는 자 

3. 그 밖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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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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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패션잡지의 한국어 라이센스판 기자가 여주인공. (이 소설은 '여주'/'남주'라는 용어가 어울린다.) 명품을 욕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기아 아이들에게 기부도 하는 여성. 그 여주가 두 빼어난 남주들 사이에서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 (매우 잘난 두 남주들과 맺어질듯 하다가, 알고보니 왕자님 남주가 오랫동안 여주를 좋아했었다는 뻔한 설정). 

이러한 뻔한 설정과, 플롯의 개연성 없음은 즉각적 비판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찬찬히 이 소설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어설픈 칙릿이라고 하기에는 걸리는 문제들이 있다. 

우선, 자기 모순과 화해의 주제. 명품을 욕망하는 것과 아프리카 기아 아이들에게 기부도 하는 여성이라는 설정은, 어찌보면 '보편적'인 중산층(?) 한국 여성들의 두 가지 면모를 보여준다. 이것이 '모순'적이고 화해해야 될 성질의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우선 이 두 가지가 '모순'이라고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와 비슷한 내적 모순을 안고 산다. 특히 중산층이 되려는 욕망과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은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자기의 모순을 '모순'이라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그 모순은 지양되거나 아니면 모순은 덮어져야 한다. 일제말기 민족주의자들의, 사회주의자들의 전향에서, 지식인들이 이러한 내적 모순을 지양하는 방법은 내적 논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자기 합리화'가 모순을 무화하는 하나의 형식이라면, 더 쉬운 방식은 이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주인공 이서정은 작품 말미에 자신의 내적 모순을 인정하고 '화해'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과연 '그냥 나는 이래'라는 식의 무비판성과 구분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 모순을 파고들어야 했지 않은가? 아니면 이 모순이 모순이 아니라 양립가능한 두 가지 속성 내지는 욕망이라고 인지하거나. 

또 과연 물적 욕망과 윤리적 자세는 '모순'적인 것일까? 혹은 명품을 향한 욕망과 아프리카 기아 아이들에 대한 기부는 '물적 욕망'과 '윤리적 자세'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좋게 보면 모두 '자기 실현'이요, 나쁘게 보면 모두 인정투쟁의 일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를 보다 철저하게 다루지 못한 작가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주 '이서정'이 성수대교 붕괴라는 상처의 치유 과정이 주요한 서사로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붕괴는 한국 토건자본과 정경유착 자본구조의 후진성을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큰 상처를 입고 있는 주인공이 프랑스의 한국어 라이센스판 패션 잡지의 에디터라는 것은 얽히고 섥힌, 이중적이며 모방적인 한국 자본주의 속의 인물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경제성장이라는 신화(성수대교/패션잡지, 명품) 뒤의 후진성과 모방성(붕괴, 정경유착, 노동착취, 단가후려치기, 하청의 재하청, 프랑스제 명품과 이에 대한 라이센스판, 작품 내에서 외국잡지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촬영, 결국 유학을 가야만 되는 패션계 등등).  

이러한 자본주의 후진성 때문에 상처받고 살아가지만, 또 그 속에서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그 후진성과 모방성을 인정하며 화해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인 21세기 한국. (모방성의 극복은 이제는 '쟤네'가 우리를 모방하고 열망한다는 것이 한류열풍. 자본주의의 무국적성. 결국 자본주의적 욕망은 선후나 기원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콤플렉스는 극복되는가? 혹은 그 콤플렉스 극복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 또 후진성의 극복은 이제 우리도 OECD라는 것. EU와 미국의 경제가 무너지고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는 마당에 우리도 OECD라는 것. 매번 모든 지표가 OECD중 몇번째로 나오는 것. 이것이 결국 또 모방성과 후진성 콤플렉스.)

오히려 비평가들의 책무는, 이 소설의 구조적 약점을 지적하면서도, 이러한 소설 속 배경의 의미를 잡아내어, 이 소설을 매개로 독자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닐까. 비평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엥겔스가 발자크에 대해 평가했듯이,(혹은 발자크를 '전유'하였듯이) 백영옥은 자신의 패션잡지 기자 체험을 근거로, 가장 사실적으로 현대 한국 대졸 직장여성의 욕망을 그렸는지 모른다. (물론 여기서 이 '대졸직장여성'은 부모님이 압구정 살며,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한 이를 말하니, 우리 88만원 세대와는 쪼깨 거리가 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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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1-10-0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요. 외국나가셨나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기인 2011-10-1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준비중입니다. ㅎㅎ 안그래도 이번 미당학술제에서 백석으로 발표해요 ^^

릴케 현상 2011-10-1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간만에 뵐 수 있겠네요.
 
유년기의 끝 그리폰 북스 18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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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읽으니 김이 새는 감이 없지 않다. 1990년 초에 읽었으면 좋아했을 수도. 언제나 인류에게는 자신보다 더 큰 무엇에 자신을 합류하려는 욕망이 있는데, 종교는 물론 정치적으로 파시즘이나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도 이를 이용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소설의 마지막이 Overload 감독관의 목소리로 끝난 것이 마음에 든다. 개인이나 자아를 지키면서 끝까지 과학적 탐구를 지속하겠다는 목소리야말로, 서구 SF작가가 취할 수 있는 자세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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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7-0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작가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살짝 틀려서(그런데 과연 틀릴까요?) 그런 감상이 나오는건 당연하다고 보고 싶어요~ 그나저나 오래간만..

가넷 2011-07-0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읽은지도 벌써 8년이 넘었네요. 내용은 얼추 기억나기는 해도 자세히는 기억 안나네요. 다 읽고 나서는 갑자기 무서워졌던 기억만 생생하네요.-_-;;

기인 2011-10-07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정말 오랜만이네요 메피님 기억해주시고 계시다니! ㅎㅎ
이제 간간히 다시 들어와 보려고요. :)
가넷님: 네 인류가 진화의 한 단계라는 것. 전체로서 하나되는 이 설정은 에반게리온에서도 활용된 것 같아요 :)
 

몇몇 흥미로운 통찰들이, 근대(성)을 바라보는데 새로운 시각을 준다. 특히 근본적인 측면에서. 

그는 modern을 일종의 비유라고 파악하며, 이것은 늘 '다시쓰기'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는 리비도적인 충동과도 연결시킨다.  (1장의 3)

이러한 근본적 사유를 접할 때, 내 기존 생각들이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modern은 항상 '시기'구분과 연결되어 있음으로 '처음'이라는 욕망과 연결된다. 이 modern 또한 담론이며, 그 속에서 일종의 'narrative category'라 볼 수 있다. 

대학교육의 근본이 비판적 사고일지언데, modern을 알게 모르게 구체적 실재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무비판적으로 가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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