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프랑스 패션잡지의 한국어 라이센스판 기자가 여주인공. (이 소설은 '여주'/'남주'라는 용어가 어울린다.) 명품을 욕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기아 아이들에게 기부도 하는 여성. 그 여주가 두 빼어난 남주들 사이에서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 (매우 잘난 두 남주들과 맺어질듯 하다가, 알고보니 왕자님 남주가 오랫동안 여주를 좋아했었다는 뻔한 설정). 

이러한 뻔한 설정과, 플롯의 개연성 없음은 즉각적 비판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찬찬히 이 소설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어설픈 칙릿이라고 하기에는 걸리는 문제들이 있다. 

우선, 자기 모순과 화해의 주제. 명품을 욕망하는 것과 아프리카 기아 아이들에게 기부도 하는 여성이라는 설정은, 어찌보면 '보편적'인 중산층(?) 한국 여성들의 두 가지 면모를 보여준다. 이것이 '모순'적이고 화해해야 될 성질의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우선 이 두 가지가 '모순'이라고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와 비슷한 내적 모순을 안고 산다. 특히 중산층이 되려는 욕망과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은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자기의 모순을 '모순'이라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그 모순은 지양되거나 아니면 모순은 덮어져야 한다. 일제말기 민족주의자들의, 사회주의자들의 전향에서, 지식인들이 이러한 내적 모순을 지양하는 방법은 내적 논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자기 합리화'가 모순을 무화하는 하나의 형식이라면, 더 쉬운 방식은 이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주인공 이서정은 작품 말미에 자신의 내적 모순을 인정하고 '화해'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과연 '그냥 나는 이래'라는 식의 무비판성과 구분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 모순을 파고들어야 했지 않은가? 아니면 이 모순이 모순이 아니라 양립가능한 두 가지 속성 내지는 욕망이라고 인지하거나. 

또 과연 물적 욕망과 윤리적 자세는 '모순'적인 것일까? 혹은 명품을 향한 욕망과 아프리카 기아 아이들에 대한 기부는 '물적 욕망'과 '윤리적 자세'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좋게 보면 모두 '자기 실현'이요, 나쁘게 보면 모두 인정투쟁의 일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를 보다 철저하게 다루지 못한 작가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주 '이서정'이 성수대교 붕괴라는 상처의 치유 과정이 주요한 서사로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붕괴는 한국 토건자본과 정경유착 자본구조의 후진성을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큰 상처를 입고 있는 주인공이 프랑스의 한국어 라이센스판 패션 잡지의 에디터라는 것은 얽히고 섥힌, 이중적이며 모방적인 한국 자본주의 속의 인물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경제성장이라는 신화(성수대교/패션잡지, 명품) 뒤의 후진성과 모방성(붕괴, 정경유착, 노동착취, 단가후려치기, 하청의 재하청, 프랑스제 명품과 이에 대한 라이센스판, 작품 내에서 외국잡지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촬영, 결국 유학을 가야만 되는 패션계 등등).  

이러한 자본주의 후진성 때문에 상처받고 살아가지만, 또 그 속에서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그 후진성과 모방성을 인정하며 화해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인 21세기 한국. (모방성의 극복은 이제는 '쟤네'가 우리를 모방하고 열망한다는 것이 한류열풍. 자본주의의 무국적성. 결국 자본주의적 욕망은 선후나 기원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콤플렉스는 극복되는가? 혹은 그 콤플렉스 극복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 또 후진성의 극복은 이제 우리도 OECD라는 것. EU와 미국의 경제가 무너지고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는 마당에 우리도 OECD라는 것. 매번 모든 지표가 OECD중 몇번째로 나오는 것. 이것이 결국 또 모방성과 후진성 콤플렉스.)

오히려 비평가들의 책무는, 이 소설의 구조적 약점을 지적하면서도, 이러한 소설 속 배경의 의미를 잡아내어, 이 소설을 매개로 독자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닐까. 비평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엥겔스가 발자크에 대해 평가했듯이,(혹은 발자크를 '전유'하였듯이) 백영옥은 자신의 패션잡지 기자 체험을 근거로, 가장 사실적으로 현대 한국 대졸 직장여성의 욕망을 그렸는지 모른다. (물론 여기서 이 '대졸직장여성'은 부모님이 압구정 살며,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한 이를 말하니, 우리 88만원 세대와는 쪼깨 거리가 있다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케 현상 2011-10-0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요. 외국나가셨나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기인 2011-10-1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준비중입니다. ㅎㅎ 안그래도 이번 미당학술제에서 백석으로 발표해요 ^^

릴케 현상 2011-10-1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간만에 뵐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