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행 선생님 역 자본론. 할인된 가격으로 모두 장바구니에 담으면 102600원. 허;; 사실 이미 5년여 전에 샀기 때문에 지금 와서 자본론의 가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교보문고에서 the capital 펭귄 판으로 사면, 자본론 1~3권 합해서 이만원도 안되는데에 있다! 이런 -_-; 김수행 선생님의 자본론도 영역을 중역 한 것인데. 펭귄 판 자본론이 이만원이라니!!! ㅜㅠ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다면!! ㅡ,.ㅡ;

얼마전에 선배 결혼식에서 주례를 보시는 김수행 선생님을 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셔서 보통 주례사가 아닌 '사회 약자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껴라'등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언제나 인사를 하면 환하게 웃으시면서 받아주시는 김수행 선생님...

자신은 자본론 팔아서 아파트 분양금 냈다고 하시면서, 자본론이 날 먹여살렸다고 하시는 선생님.

그런데... 너무 비싸요 ㅜㅠ

(흠; 5년전에 산 나도 이런 감정을 느끼니, 얼마 전에 이 책을 산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영어를 어느정도 하는 사람이라면!!! ㅋㅋ 메롱이다. -_-a )

근데; 싸다는 이유로 이번에 자본론 영문판도 샀다. -_-a 신경림 시인이 자본론은 영문판이 가장 아름다운 문체라고 하셨다는데 어디 이제는 영문판으로 읽어볼까나;; 쿨럭...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본론 1권은 개정되서 읽기 어렵지 않았었는데... 나는 또 왜 영문판을 샀을까? 이만원이면 몇끼냐 ㅡ.,ㅡ;; 펭귄의 '세일'에 넘어가서 '자본론'을 구매하는 이 아이러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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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7-02-07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론 1권 읽기 모임에 참여하시는 거에요? 그럼 뵐 수 있겠군요. 참 저도 마르크스주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어요. 조만간 뵙겠군요.^^;

yoonta 2007-02-0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판은 흔히 말하는 외국의 핸드북수준의 페이퍼백 개념의 책이라 싸질수 있었던것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자본같은 고전은 국내에서도 저런 저가의 책이 나오면 좋을텐데..^^

기인 2007-02-0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ㅋ 네 그래요:) 반갑습니다. 1권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 다시 읽어보려고요. 스터디 짱인 경제학도의 관점이 어떨지 기대하고 있어요.
윤타님/네 ㅜㅠ 10만원이라니;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샀지만. 정말 비싸네요.

Mephistopheles 2007-02-0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건 다 몰라도 "어디 이제는 영문판으로 읽어볼까나;; 쿨럭..." 이 부분이 심히 부럽습니다..ㅋㅋ

기인 2007-02-0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잘 하는 언어가 한국어랑 영어 밖에 없습니다; 로쟈님은 한 4개 언어는 읽으시는 것 같던데요! 흠. 불어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라틴어 이것저것 건드리기만 하고, 깊게 파서 텍스트 읽을 수 있는 언어가 없네요 쩝. 이러면서 공부를 하겠다니 -_-;

비로그인 2007-03-0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일 날뻔했어요. 휴 하드커버는 너무 비싸.. 근대 자본론 말고 펭귄 출판사 세일하는게 많더라구요. 이것 저것 질러대다 보니.. 예산 초과해버렸네.. ;;;;

seeker16 2007-03-1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펭귄으로 읽으려구 다 합치면 13800원일 걸..흐흐..니체 전집 번역본을 놓고 내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기인 2007-03-15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니체도 펭귄판으로는 그렇게 싸요? 헐;;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하나…훈고학은 이제 그만"
  [반론] 한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묻는다
  2007-02-06 오전 9:50:37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출판사 펴냄)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트로츠키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실장을 지낸 이재영 씨와 국내의 대표적인 트로츠키주의자 단체 '다함께'의 이정구 씨가 한 차례씩 주고받은 논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이재영 씨가 다시 재반론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그는 이번 글에서 "이정구 씨의 반론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근거 없는 논리적 비약이 많다"며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좀 더 솔직하게 담았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트로츠키, 레닌, 마르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훈고학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트로츠키의 한국적 수용을 둘러싼 이번 논란이 현재 한국 진보 세력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한 지표라고 판단해 기고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없다
  
  '다함께'의 이정구는 내가, 트로츠키가 크론시타트 반란을 파괴했다고 비판한 것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무지"라고 주장한다. 사실 러시아 혁명을 잘 알지는 못한다. 잘 모르는 내가 알고, 잘 아는 그가 모르는 사실 몇 가지만 확인하자.
  
  이정구는 크론시타트 진압 당시 트로츠키가 외지에 출타 중이었으며, 군사령관이 아니라 '당 전쟁 정치위원'이었다고 변명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내전을 승리로 이끈 트로츠키의 업적 역시 대부분의 전투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무시되어야 한다.
  
  반란이 진압되기 며칠 전인 3월 5일, 트로츠키는 국방 인민위원 자격으로 크론시타트 수병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통첩했는데, 이 일도 타자병이나 전병의 책임이지 트로츠키의 책임이 아니라고 구차하게 변명해 보라. 내가 알고 싶은 것은 1980년 5월에 전두환이 어디에 있었는가가 아니다. 나는 혁명가 트로츠키가 무엇을 했는가를 묻고 있다.
  
  이정구는 '트로츠키가 진압하지 않은' 크론시타트 반란을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안타깝지 않은가? 트로츠키가 현장에 있었다면, 더 많은 치적을 쌓았을 텐데. 이정구는 반란이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건"이고, 반란자들이 "소비에트 내에서 볼셰비키의 제거를 주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이 '농민 신병'이라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도 거짓이다. 그 해 2월 페테르스부르크에서는 푸틸로프 공장을 비롯한 노동자 파업이 줄을 이었고,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은 파업 노동자들과 연계하며 그들의 요구 사항을 봉기에 내걸었다. 이에 볼셰비키 사병 당원의 3분의 1이 공식 탈당하여 봉기에 동참했다.
  
  반란자들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주장했다는 것도 거짓이다. 그런 유언비어는 국외에서 밀류코프(Miljukov)가 만들어낸 것이고, 반란자들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의 연장선에서 "소비에트에서의 선거"를 주장했다. 이정구의 러시아 혁명 얘기는 역사 날조다.
  
  이정구는 "크론시타트 수병 반란을 두고 이재영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운운하는 것은 트로츠키의 ABC에 동의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크론시타트 수병들은, 노동자 파업을 봉쇄한 계엄령 철폐, 사회주의자 석방, 집회의 권리,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소비에트 선거를 요구로 내걸었다. 이게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트로츠키의 ABC'는 잘 모르지만,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는 조금 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대한 트로츠키의 입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부정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자신이 권력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할 대상이 아니다.
  
  "소비에트 러시아 노동계급의 생산적 산업조직은 매우 큰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어떠한 과제일까? 그것은 물론 노동의 이익을 대표하여 국가와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제휴하여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조합은 원칙적으로 새로운 조직이며, 종래의 노동조합과 다를 뿐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의 혁명적 노동조합과도 다르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중)
  
  혁명과 내전기의 상황에서 볼셰비키와 트로츠키가 옳았는가, 노동자 반대파가 옳았는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발달한 현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민주주의의 최고양식으로서의 사회주의의 차원에서 당시 레닌이나 트로츠키가 한 일은 카니발리즘에 가깝다. 그래서 노동자 반대파들이 트로츠키를 짜르 시대 반동 장군이었던 트레포프에 견주어 비아냥댔던 것이다.
  
  "인민위원 지배 타도! 권력 인수 당시 공산당은 노동자들에게 모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3년 전 우리는 '당신들이 원할 때는 언제라도 당신들의 대표를 소환할 수 있고 당신들은 새로 소비에트 선거를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크론시타트에서 당으로부터의 압력이 없는 새 선거를 요구했을 때 새로 부상한 트레포프 트로츠키는 이렇게 명령했다. 총알을 아끼지 말라!" (<Pravda o kronstadte> 중)
  
  민주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천박한 태도는 차베스에 대한 돈독한 애정으로도 확인된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한 차베스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가 인기 있는 이유를 알고 싶기보다는 그가 입법권까지 독점한 것이 걱정된다. '사회주의'나 '반미'를 내걸었다고 열광할 필요는 없다. 그런 군부 쿠데타 정치인은 나세르 이래 수없이 많았다. 국유화나 미국과의 긴장이라면 단연 박정희를 꼽는 것이 옳다. 차베스의 실험은 페론보다 훨씬 덜 진지해 보인다.
  
  딱지 붙이기는 이제 그만!
  
  이정구는 "이재영은 (…) 다함께가 범자민통 동지들과 야합이라도 한 듯하게 말"했다고 타박한다. 그런데 바로 몇 줄 아래에서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여 투쟁하는 게 무슨 잘못일까?"라고 반문한다. '야합'이든 '연대'든, 했다는 말인가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재영의 다함께 비판에는 안타깝게도 (…) 분파주의가 엿보인다"고? 다함께가 당당하고 분파적이지 않다면 "주사파와 어울려 논다"는 지적에 그저 "그렇다"라고만 답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국내외 보수언론조차 (…)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도"했다고 뿌듯해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는가를 스스로 되짚어 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그 조상의 비극을 피할 수 있을 테니, 다행스럽다.
  
  물론 다함께는 옳다. 옳기 때문에 옳다. 옳은 조직이 하는 일이므로 누구와 놀든 그것 역시 옳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정성진 역시 충실한 트로츠키주의자로서 다함께의 이 같은 철학 방법을 따른다. 정성진이 포스트모더니즘, 자율주의, 케인스주의가 청산되지 않은 포스트스탈린주의라 규정할 때 그런 방법론이 가장 빛을 발한다.
  
  왜 포스트모더니즘이 포스트스탈린주의일까?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 경제학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논하면서도 스탈린에 반대한 트로츠키의 투쟁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다. (…)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 경제학은 스탈린주의를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포함시키는데, 나는 이것 역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것뿐이다. 올바른 트로츠키주의가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로 인정했으므로 포스트스탈린주의다!
  
  자율주의는 왜 또 포스트스탈린주의일까? 이정구는 "정 교수의 책을 조금만 훑어 보아도 (…) 풍부한 논거에 입각한 논리적 비판을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해주는데, 그곳 어디에서도 자율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관계에 대해 단 한 줄도 설명돼 있지 않다.
  
  케인스주의에 대해 정성진은 이렇게 말한다. "진보 진영의 케인스주의로의 경도는 (…)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스탈린주의적 뿌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이 반파시즘 인민전선 전술을 채택하면서 케인스와 같은 개량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이들과의 연합을 도모했던 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논박은 모리스 돕이 케인스 비판에 비적극적이었던 데 대한 증명일 수는 있지만, 장상환, 신정완, 이병천 등 한국의 '케인스주의자'를 비판하는 논거는 못 된다. 대입논술에서 이런 주장은 '논리 비약, 논거 부적절'이라 채점한다.
  
  훈고학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나는 트로츠키 같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투쟁하는 당대 혁명가의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함께 같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 망명객 시절의 언행에 더욱 주목한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라 불리는 체제의 이론적 기초와 정치적 토대의 상당 부분은 트로츠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는 생산민주주의를 주장한 노동자 반대파에 대항하여 '지령 관료제'를 옹호하였고, 노동조합을 군대처럼 통제하기를 희망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트로츠키주의자'는 그것을 보지 않는다.
  
  "흠집 없는 권위로의 도피", 고르바쵸프가 내건 "다시 레닌에게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이 경향의 시초이다. 모든 죄과를 스탈린에게 뒤집어씌우고, 최후의 보루를 지키고자 했던 이 발상은 마르크스 이래의 후계자들에게서 오도(誤導)와 왜곡보다는 계승이 더 많이 발견됨에 따라 스탈린에서 레닌으로, 레닌에서 마르크스로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파산하고 만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향에 아직도 둘러싸여 있다. 기존 사회주의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추정되는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의존, 청년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를 대립시키고 후기 마르크스를 취사선택하는 알튀세르의 방식, 그리고 유행하는 외래 사조(思潮)를 직수입하는 한국 진보진영의 천박한 상업주의.
  
  그러나 우리의 실패가 상당 부분, 현실 적합성에 대한 주체적 검증 없는 차용(借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더욱 중요하게는 진보사상 또는 진보운동이라는 것이 특정 사상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분리 곤란한 게슈탈트적(Gestalt的) 거대한 총체라는 점을 되짚어 볼 때, 특정한 이론적 권위로의 도피는 잠시의 모면책일 수는 있어도 진보사상 본래의 목적인 대중 조직, 국가 운영에 기여하기는 어렵다.
  
  "모건 스탠리의 2004년 4월 26일 민주노동당 방문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 만남에서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은 당이 직면하게 될 두 가지 시험대, 즉 시장과 대중 투쟁에 대한 개량주의자의 본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국유화 계획'을 묻는 모건 스탠리의 물음에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인식, 『다함께』 30호, 2004)
  
  개악보다 개량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나는 분명히 '개량주의자'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2004년 4월에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가? 다함께는 그 때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가? 현재는 있는가? 다함께는 개량주의자인가?
  
  국유화는 카페 혁명가의 낭만이다. 혁명을 준비하는 정당의 정책실장이라면 어떤 이유로, 어떤 기업을, 어떤 시기에, 어떤 방법을 통해 국유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국유화를 되풀이하는 데 멈춰서는 안 된다. 그의 책상 위에는 국유화 법률 공포안과 재정 충당 계획, 정치적 경제적 프로세스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4년의 민주노동당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질 필요도 없는 당이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렇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있어 우리는 실천의 문제에서 이론상의 문제로, 실존하는 구체에서 검증되지 않은 추상으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여 대한민국을 개조할 날이 멀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겨우 한두 걸음을 내딛는 것이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의 대장정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혁명을 이룰 정보와 지식,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어림과 나약함, 무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물론은 다른 철학 체계들과는 달리 결코 자기완결적일 수 없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부분을 다루는 여러 과학들과의 연결에 의해서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세계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과학과 물질 생산의 후진성은 그리스 철학을 명민한 추측으로서만 긍정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마르크스주의 역시 진보적 원칙과 몇 가지 과학적 발견의 '절대적 구성'일 뿐이다. 19세기와 20세기의 유물론은, 유물론의 내용을 채울 과학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나마 성과조차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물론 실현의 관념적 과도기였다.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했는가? 세상에 대한 무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지에 대한 무지.
  
  후진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21세기에 이르러서야 마르크스주의의 얼굴을 덮고 있던 카리스마 가면이 벗겨졌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그것에 접근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다함께처럼 "마르크스로 돌아가자(Return to Marx)"가 바른 길은 아닐 듯 하다.
  
  마르크스로의 복귀 또는 그의 수많은 문헌에서 그럼직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은 고순도의 결정을 얻기 위해 알코올 램프의 불꽃을 돋우는 아편쟁이의 모습에 가깝다. 그런 짓은 마르크스 훈고학(Marxolgy)이지,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아니다. 체제가, 매순간마다 재생산되는 물질과 의식의 최후 종합이라는 점에서 지난 150여 년을 거슬러 반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지평에서 이륙을 위한 가속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 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 모두를 안다. 우리의 이륙이 성공했을 때 그 비행기에 어떤 이름이 새겨질지를 알 필요는 없다.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 J. Gould)는 진리를 찾는 도상에서 인류가 지표 삼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적절한 가르침으로 코코란 선장의 말을 인용한다.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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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2-0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퍼오셨네요..^^ 크론슈(시?)타트봉기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약한 고리죠. 그래서 저런 식으로 궁색한 변명을 하는 듯합니다.

기인 2007-02-08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저도 이재영 씨 생각에 더 동의합니다. 학부때 다함께 친구들에 대해서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서 이기도 한 것 같아요 ^^;;;

yoonta 2007-02-08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 러시아상황을 자세히 알고싶으시다면 <러시아아나키스트1905,1917> (폴애브리치)를 구해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겁니다. 근데 절판되어서 쉽게 구하기는 힘드실듯, 아니면 영문판으로 < the anarchist in the russian revolution >를 읽으시거나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인 < Kronstadt 1921 > < The Russian Anarchists >등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되실겁니다.

기인 2007-02-08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감사합니다. :)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레닌 읽을 때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울라

노동자 국가 창출을 위해 노동자 정당이 존재하고, 당은 진공상태가 아닌 계급투쟁이라는 엄혹한 조건에서 존재하는 바, 당의 일상적 존재양식은 투쟁일 것입니다. 그리고 투쟁에서의 승리와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가 양립할 수 없을 때 후자의 폐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결단은 이 가치들의 이상적 구현은 혁명의 완성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신념에 근거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의 진정한 담지자는 제도, 불문율 등의 형식이 아닌 주체라는 것, 노동자 당에서의 민주주의의 달성은 이러저러한 형식이 아닌 혁명적 주체의 재생산에 달려있다는 것, 따라서 사회주의자는 당의 일상적 실천 가운데서 당과 함께하고 단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계급투쟁이라는 명제를 인정하는 이들에게는 1903년 이래로 공식화된 합리적 결론일 것입니다. 우리가 열사에게서 삶을 뜨겁게 사랑하는 이유가 삶을 불살라버린 근거가 되어버린 모순을 발견하듯이,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무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이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진형 사회주의'란 결국 적당히 사회주의 교양을 공부한 자유주의자의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 2007-02-06 12:37
 
 
로쟈 
 
 **님/ 농반진반입니다.^^
울라님/ 정답입니다. 마치 모범답안 같습니다... - 2007-02-06 14:34
 
 
푸하 
 
 문제는 부정적인 것의 담지자가 되고 싶은 개체가 있는가? 하는 것 같아요. - 2007-02-06 21:29
 
 
기인 
 
 그런 개체는 있을수도 있는데, 제가 문제삼고 있는 부분, 또는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다시 돌아온 주체"입니다. 과연 혁명적 주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용없는 당위가 아니라, 규정된 법률같은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담금질 되는 혁명적 주체라는 것. 그리고 그 실천과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사이의 역사적(현재 시점에서) 긴장. 당의 일상적 실천 가운데서 당과 함께하고 단련된다는 것. 그런데 현재 당이 과연 있는가? 아니면 당 또한 만들어가야 하는가?
계속 회귀하는 이유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충분한 이론적 반성이 부재하다는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울라님이 말씀하시는 '합리적 결론'이 더 이상 모든 '사회주의자'가 흔쾌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너무 쉽게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였어, 또는 그들은 맑스를 '곡해했어' 정도로 덥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것. 결국 그래서, 전망이 뚜렷하지 않고, 어떻게 가야하는지, 정말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으니, 답답한 것 아닐까요. '답답'하다라는 말은 너무 나이브하고, 오히려 '절망'과 '답답'의 중간에 가깝습니다. - 2007-02-07 14:32    
 
 
울라 
 
 올바른 전망 / 올바른 전망의 구체화로서의 혁명 / 구체화의 매개로서의 사회주의자 => 올바른 관념없이는 역사도 없다!?
의문)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가 현존하지 않는 데/존재한 적이 없는 데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올바른 전망/개념을 갖는 것은 가능한가?
'사회주의는 전망이 아니라 운동이다. 이 운동은 자본주의가 산출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운동으로서 자본주의와 함께 모순적 통일체을 구성한다. 우리는 모순적 통일체로서의 이 역사의 시기의 종착지를 사회주의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목적으로서의 사회주의없이도 스스로 운동한다. 이 운동은 목적인이 아닌 근거를 갖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전망이 불투명해서 못한다 = 적정이윤이 보장이 되지 않아서 투자 안한다> 사회주의는 투기가 아닙니다.
*전진하는 운동으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배우리라 믿습니다. - 2007-02-07 17:14
 
 
기인 
 
전진하는 운동으로부터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동의. 그런데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목적으로서의 사회주의 없이도 스스로 운동한다. 이 운동은 목적인이 아닌 근거를 갖기 때문이다'라는 판단은 역시 의심이 갑니다. 그렇다면 '전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또는 '전위'라는 주체는 불필요하고, pt가 역사적 운동과정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주체의 역할(또는 주체효과)를 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제가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는 '당'이 있습니까?
현 시점이 '전망'이 불투명한 시점이라는 것은 바로 '전진하는 운동'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지 못한 시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한 의문을 던지신 것처럼,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가 현존하지도 않았고,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역사적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적 반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실패에 대한 (이론적) 책임은 누가 져야 합니까?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 반성도 하나의 실천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닐까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날고, 철학의 임무는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고, 주체는 실천을 통해 구성되지만, 이론 또한 물질화된다는 것. '전진하는 운동'에 따른 새로운 '이론'이 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그 '이론'이 확고히 없어서 그것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울보님 지적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따로 제 페이퍼에 정리해 두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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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2-0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대단들 하시네요.로쟈님의 스타일도 엿보이네.거대담론과는 거리를 두신다는.걍 빠자나가시는^^
하여간 알라딘에는 대단한 분들이 많지만 조금도 부럽진 않군요.대학 다닐때 밥먹고 싶어죽겠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던 세미나 같아요.제 스타일이 나오지요.^^ ;
예전에 술친구들중에 인문사회 대학강사샘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 생각이 납니다.하나 알고 둘 알다 보니 새끼를 쳐서.하여간 얘들 저한테 많이 혼났어요.....제가 다 이겼거든요.혼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술값 안내고 비질거리며 2차도 나보고 쏘라고 한것.요즘은 연락 끊겼는데 아직 교수된 사람은 별로 없나보더군요.

기인 2007-02-0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대학강사 정말 환경 열악해요. 뭐 교수하려고 대학강사를 그 '매개'로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교수 되려고 공부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

드팀전 2007-02-0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은 조합주의에 관심이 많으신 듯 보여요.아닌가? .... 비판여론이 많지만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거의 없어보이는 ...바람도 있습니다.조합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려면 결국 독일처럼 탄탄한 산별이 필요한데..현재 우리 노동계의 성장과정에서 생긴 얽히고 섥힌 문제,그리고 이를 획책한 자본의 분열책등을 생각해보면 쉽지만은 않아요.노동성 자체를 인정 또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지요...푸하...비정규직 조교샘들도 요즘 술렁이던데.

기인 2007-02-09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조합주의에 대한 관심은 조선의 1920~30년대 자료들을 보다가 생겨났습니다. 실제 조선에서 광범한 조합주의 운동들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자생적인 것인지 어떠한 영향에서 발생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성공을 거두게 된 경위와 결국에는 막을 내린 원인도 탐구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적 사회주의'랄까. 어쨌든 한국의 환경에 맞는 것을 생각해봐야겠지요. ^^
 
 전출처 : 로쟈 >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지난 2일 세상을 떠난 오규원 시인의 장례식이 엊그제 강화도 정족산에서 있었다고 한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 것으로 추념을 대신한다.

중앙일보(07. 02. 06) 시인 오규원, 소나무 아래에 잠들다

소나무 가지가 흔들린다. 바람 한 줄기 불어온 모양이다. 시인 오규원이 갔다. 강화도 정족산 기슭의 소나무 아래에 묻혔다. 이름하여 수목장(樹木葬). 시인의 뼛가루는 송진이 되고 가지가 되었다가, 이윽고 솔방울로 매달릴 것이다.

5일 오후 2시쯤. 산비탈 소나무 숲에 고인의 옛 제자들이 두 손 모아쥐고 둘러섰다. 이창기.이경림.신경숙.황인숙.윤희상.장석남.박형준.양선희.최정례.이원.강영숙.천운영.윤성희.조용미 등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제자들이다. 선생으로부터 호된 꾸지람 들으며 시를 깨우친, 이제는 어엿한 시인과 소설가가 된 제자들이다. 선생의 말씀을 빌리자면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들'('프란츠 카프카' 부분)이다.

평생의 절반을 알고 지낸 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병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추모시를 읽었다.

'문득 돌아보니,/규원이, 자네가 없네./둘러보아 찾아도/규원이, 자네가 없네./…/규원이, 자네/이제 무엇이 되려는가./여기로부터 자리 옮겨/어디로 가려는가./…/나무 한 가지의 정령이 되어/영원의 하늘로 솟아 날아오르려는가/그것이 허망한가/그것이 슬픈가, 한스러운가.'

시인은 1991년부터 아팠다. 흔히 폐기종으로 알려진, 만성폐쇄성폐질환이란 희귀병을 앓았다. 허파가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기능을 잃어 인간이 누리는 산소의 20%만으로 살아야 하는 병이다. 하여 강원도 인제.무릉, 경기도 양평 등 공기 맑은 곳에서 귀한 숨 아껴가며 시 쓰고 살아왔다. 지난달 숨이 가빠왔다. 병원에 입원했고, 병문안 온 시인 이원의 손바닥에 선생은 손톱으로 시를 썼다.

'한적한 오후다/불타는 오후다/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1월 21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2월 2일, 시인은 66세의 일기를 마감했다. 병문안 왔던 이경림.최정례.양선희는 졸지에 선생의 임종마저 보게 됐다. 추모사에서 신경숙은 "그렇게 편찮으신 대로, 그렇게 늘 곁에 계실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겨우 말했다.



고인은 한글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한국 시사에서 오규원이란 이름은 자체로 하나의 계보였다. 수다한 제자 때문이 아니다. 그가 평생토록 쌓은 시업(詩業), '날이미지의 시론' 때문이다.

'주체중심, 인간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서 그 관념을 생산하는 수사법도 배제한, 그러한 상태의 살아 있는 이미지들을 시에 구현하는 것, 그것이 날[生]이미지 시이다.'('날이미지와 시'에서, 2005년)



인간의 관념이나 수사 따위로 오염되기 이전의,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그는 추구했다. 그래서 시창작실습 시간, 제자들이 밤새 쓴 습작원고에 시뻘건 줄 죽죽 그으며 "시가 되지 않는 것은 버려라" 호통쳤던 것이다.

그렇다고 늘 무섭게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수업 끝나고나면 선생은 막역한 친구가 됐다. 맞담배를 폈고, 후루룩 함께 라면을 들이마셨다. 87년 제자들이 길거리로 나가겠다고 결의했을 때, 선생은 "막는 것은 옳지 않겠지, 다치지만 말아라…"고 말했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은 꾹꾹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집안이 어려워 공장에서 학비를 번 뒤 늦깎이로 선생의 제자가 된 시인이다. 굳이 서울예대를 선택한 까닭을 그는 "오규원 선생이 계시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오규원 선생이 하필이면 떠돌이 시인이 정착한 바로 그 섬에 묻히고 있었다. 선생의 제자 문인들은 그래서, 농반진반으로 그를 능참봉으로 명했다. "선생을 평생 곁에서 모시게 됐다" 했더니 "이제부터는 바람소리 하나도 예사롭지 않겠지요"라고 답한다.

소나무 가지, 또 흔들린다. 문득 바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손민호 기자)

07.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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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성 바오로 성당. 둘러보는 것과 사진찍는 것. 둘 다 별로 안 좋아하는(이라기 보다는 귀찮아하는) 나와 애인. ㅋ 우선 건물들을 찍은 것을 올려봅니다. 프라하 안의 한산한 비셰그라드. 겨울에 가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없고 관광지도 대부분 휴업 중. 한적하게 산책을 하다 걸터 앉아서 성당을 찍습니다. 산책하기 정말 좋은 곳.




프라하에서 3시간 반 가량 걸려서 도착한 체스키 크롬노프. 영주의 성 등이 있는데. 역시 관광지라서 2월은 휴업. -_-;; 도시는 아름다웠지만 (아래도 사진). 사진빨 잘 받는 도시들..





이번에는 또 다른 크레믈린 성. (이 놈의 봉건 영주들의 잔재!) 여기는 프라하에서 기차타고 50분 가량.

여기 성도 매우 이쁜데, 아직 애인이 사진을 이것밖에 안 올려서;;;


프라하의 강. 해질 무렵. ㅋ 누가 찍었는지 모르지만 잘 찍었군!!!

프라하의 중심 구시가지. 이것도 이쪽 밖에 아직 사진이 안 올려져 있네요;



프라하 성 가는 길 도중 길 위에서 본 프라하. 붉은 지붕의 프라하, 천개의 탑의 프라하.

독일에게 얼른 항복한 관계로 잘 보존된 중세의 도시. 나는 왜 이런데서 감흥을 별반 못 느낄까?

중세인들을 상상해보지도 않고, '아름답다'라는 생각도 별로. 흑 ㅜㅠ

 

나는 오히려 경복궁이 좋아 ㅋㅋ 뭐 민족주의나 국수주의 같은 문제가 아니라,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 내 전공이 국문학이기도 하지만, 역시 얼마만큼 친숙하게

그 때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을 알고 내면화하고 있는가의 문제겠지.

 

어쨌든 사진 한번 정도 더 올리고, 마지막으로 쿤데라 관련 글 하나로 체코 여행기

마무리 해야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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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2-07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격적으로 올리시는군요. 사진도 좋은걸요^^

가넷 2007-02-0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사진빨 잘 받네요...ㅎㅎ; 저런 곳에서 산책하면 좋겠어요...^^;

기인 2007-02-0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ㅋㅋ 뭔가 쫌 '비현실적'이에요. 살아보고는 싶은 곳이더라고요. :)

드팀전 2007-02-07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복궁이 가깝게 느껴지신다니..전생에 왕족? 전 NL론으로 접근하지 않고 PD론으로 접근합니다.^^ 전 저기 보이는 골목길이 친근한데요.제가 가장 마음에드는 사진은 밑에 골목길 있는 사진입니다.전 골목길이 친근해요.^^

프레이야 2007-02-07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골목길 위에서 내려다 본, 다닥다닥 붙은 붉은 지붕들의 느낌이 좋아요.
골목길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

기인 2007-02-0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ㅋㅋ PD론이면 전생이 왕족인 것인가요? 계급적 의미요? ㅎㅎ
배혜경님/ 진짜. 사진으로 보니까 더 좋아요 ㅎㅎ 그래서 여행다니면 사진 찍나봐요.

해적오리 2007-02-0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강 사진, 잔디밭이 넓은 성당 사진.. 맘에 들어요.
전 산책하기 좋을 곳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

기인 2007-02-08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훗훗 저 사진 잘 찍죠? ㅋㅋ 아아 사진 공부해 볼까나~ 룰루
ㅋ 마음에 들어하시니까 왠지 제가 기분이 좋네요. ^^

LAYLA 2007-02-08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동화속 마을 같네요 ^,^

이리스 2007-02-19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이 정말 맘에 듭니다~ 저는 저런 풍경이 좋아요. 골목길도 ^^

기인 2007-02-1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layla님, 낡은구두님.
역시 여행은 찍은 사진을 통해, 여행이 끝나고 나서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