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라

노동자 국가 창출을 위해 노동자 정당이 존재하고, 당은 진공상태가 아닌 계급투쟁이라는 엄혹한 조건에서 존재하는 바, 당의 일상적 존재양식은 투쟁일 것입니다. 그리고 투쟁에서의 승리와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가 양립할 수 없을 때 후자의 폐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결단은 이 가치들의 이상적 구현은 혁명의 완성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신념에 근거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의 진정한 담지자는 제도, 불문율 등의 형식이 아닌 주체라는 것, 노동자 당에서의 민주주의의 달성은 이러저러한 형식이 아닌 혁명적 주체의 재생산에 달려있다는 것, 따라서 사회주의자는 당의 일상적 실천 가운데서 당과 함께하고 단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계급투쟁이라는 명제를 인정하는 이들에게는 1903년 이래로 공식화된 합리적 결론일 것입니다. 우리가 열사에게서 삶을 뜨겁게 사랑하는 이유가 삶을 불살라버린 근거가 되어버린 모순을 발견하듯이,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무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이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진형 사회주의'란 결국 적당히 사회주의 교양을 공부한 자유주의자의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 2007-02-06 12:37
 
 
로쟈 
 
 **님/ 농반진반입니다.^^
울라님/ 정답입니다. 마치 모범답안 같습니다... - 2007-02-06 14:34
 
 
푸하 
 
 문제는 부정적인 것의 담지자가 되고 싶은 개체가 있는가? 하는 것 같아요. - 2007-02-06 21:29
 
 
기인 
 
 그런 개체는 있을수도 있는데, 제가 문제삼고 있는 부분, 또는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다시 돌아온 주체"입니다. 과연 혁명적 주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용없는 당위가 아니라, 규정된 법률같은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담금질 되는 혁명적 주체라는 것. 그리고 그 실천과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사이의 역사적(현재 시점에서) 긴장. 당의 일상적 실천 가운데서 당과 함께하고 단련된다는 것. 그런데 현재 당이 과연 있는가? 아니면 당 또한 만들어가야 하는가?
계속 회귀하는 이유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충분한 이론적 반성이 부재하다는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울라님이 말씀하시는 '합리적 결론'이 더 이상 모든 '사회주의자'가 흔쾌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너무 쉽게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였어, 또는 그들은 맑스를 '곡해했어' 정도로 덥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것. 결국 그래서, 전망이 뚜렷하지 않고, 어떻게 가야하는지, 정말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으니, 답답한 것 아닐까요. '답답'하다라는 말은 너무 나이브하고, 오히려 '절망'과 '답답'의 중간에 가깝습니다. - 2007-02-07 14:32    
 
 
울라 
 
 올바른 전망 / 올바른 전망의 구체화로서의 혁명 / 구체화의 매개로서의 사회주의자 => 올바른 관념없이는 역사도 없다!?
의문)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가 현존하지 않는 데/존재한 적이 없는 데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올바른 전망/개념을 갖는 것은 가능한가?
'사회주의는 전망이 아니라 운동이다. 이 운동은 자본주의가 산출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운동으로서 자본주의와 함께 모순적 통일체을 구성한다. 우리는 모순적 통일체로서의 이 역사의 시기의 종착지를 사회주의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목적으로서의 사회주의없이도 스스로 운동한다. 이 운동은 목적인이 아닌 근거를 갖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전망이 불투명해서 못한다 = 적정이윤이 보장이 되지 않아서 투자 안한다> 사회주의는 투기가 아닙니다.
*전진하는 운동으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배우리라 믿습니다. - 2007-02-07 17:14
 
 
기인 
 
전진하는 운동으로부터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동의. 그런데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목적으로서의 사회주의 없이도 스스로 운동한다. 이 운동은 목적인이 아닌 근거를 갖기 때문이다'라는 판단은 역시 의심이 갑니다. 그렇다면 '전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또는 '전위'라는 주체는 불필요하고, pt가 역사적 운동과정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주체의 역할(또는 주체효과)를 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제가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는 '당'이 있습니까?
현 시점이 '전망'이 불투명한 시점이라는 것은 바로 '전진하는 운동'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지 못한 시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한 의문을 던지신 것처럼,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가 현존하지도 않았고,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역사적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적 반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실패에 대한 (이론적) 책임은 누가 져야 합니까?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 반성도 하나의 실천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닐까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날고, 철학의 임무는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고, 주체는 실천을 통해 구성되지만, 이론 또한 물질화된다는 것. '전진하는 운동'에 따른 새로운 '이론'이 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그 '이론'이 확고히 없어서 그것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울보님 지적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따로 제 페이퍼에 정리해 두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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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2-0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대단들 하시네요.로쟈님의 스타일도 엿보이네.거대담론과는 거리를 두신다는.걍 빠자나가시는^^
하여간 알라딘에는 대단한 분들이 많지만 조금도 부럽진 않군요.대학 다닐때 밥먹고 싶어죽겠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던 세미나 같아요.제 스타일이 나오지요.^^ ;
예전에 술친구들중에 인문사회 대학강사샘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 생각이 납니다.하나 알고 둘 알다 보니 새끼를 쳐서.하여간 얘들 저한테 많이 혼났어요.....제가 다 이겼거든요.혼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술값 안내고 비질거리며 2차도 나보고 쏘라고 한것.요즘은 연락 끊겼는데 아직 교수된 사람은 별로 없나보더군요.

기인 2007-02-0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대학강사 정말 환경 열악해요. 뭐 교수하려고 대학강사를 그 '매개'로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교수 되려고 공부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

드팀전 2007-02-0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은 조합주의에 관심이 많으신 듯 보여요.아닌가? .... 비판여론이 많지만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거의 없어보이는 ...바람도 있습니다.조합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려면 결국 독일처럼 탄탄한 산별이 필요한데..현재 우리 노동계의 성장과정에서 생긴 얽히고 섥힌 문제,그리고 이를 획책한 자본의 분열책등을 생각해보면 쉽지만은 않아요.노동성 자체를 인정 또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지요...푸하...비정규직 조교샘들도 요즘 술렁이던데.

기인 2007-02-09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조합주의에 대한 관심은 조선의 1920~30년대 자료들을 보다가 생겨났습니다. 실제 조선에서 광범한 조합주의 운동들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자생적인 것인지 어떠한 영향에서 발생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성공을 거두게 된 경위와 결국에는 막을 내린 원인도 탐구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적 사회주의'랄까. 어쨌든 한국의 환경에 맞는 것을 생각해봐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