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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감옥(監獄)은 예전에 교도소(矯導所)를 일컫는 말이었다. 감옥監獄은 '살피는 옥'이라는 뜻인 반면, 교도소는 '가르쳐서 지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전자가 사회의 외부인들을 사회와 격리시키는 곳이라면 후자는 이들을 다시 사회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다.
'교도소로부터의 사색'이 아니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것.
그렇다면, '감옥'/'교도소'란 무엇일까.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 곳. 학교-군대-교도소라는 '빡셈'의 강화됨.
학교는 초-중-고-대 라는 커리큘럼이 있다. 초등 6년 이후 중등 3년 고등 3년 등. 그 커리큘럼을 거치면 어느정도의 '교육'이 '교도'가 이루어진 것이고, 해당하는 '학위'로서 보상한다.
그렇다면 '교도소'는 중범죄일 수록 '교도'가 길게 필요하게 되어서, 절도 1년, 강도 3년, 무장강도 5년, 강간 몇년, 살인 몇년 이렇게 '커리큘럼'이 짜여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커리큘럼'에는 학문적 연구가 있을까? 학교 교육이 '교육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얼마나 가르쳐야 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처럼, 범죄학이 아니라 '범죄교육학'이라 이름 붙여야 될까. '범죄교도학' 정도.
절도는 몇 년을 '교도'하면 되고, 강도는 몇년, 강간은 몇년 하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일까? 절도범을 몇년 이러저한 '커리큘럼' 상으로 '교도'하니까 다음부터는 절도 안 하더라, 하는...
없다.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냥 가두어두는 것이다. 말만 '교도소'이지, 그 곳에서 신종 범죄를 배우기도 하고 '동업자'를 만나서 한껀 크게 하기로 했다가 잡혔다는 '뉴스'는 '뉴스'도 아니다.
결국 말그대로 '감옥'이다. 감옥에 갇히게 된 이들의 사회경제적 토대는 무시하고, 그들이 '사회'가 인정하지 못하는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들의 사연이 무엇이든, 집어넣고 보는 것. '순한 양'과 격리시키는 것.
신영복 선생은 그 곳에서 통혁당 사건으로 20년 2개월을 복역한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수사관으로 복무하던 중에 일어났던 상황이니, 군법재판소와 군대 감옥에서 처음에는 복역했다.
그가 감옥에서 만난 이들,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세상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에게는 크게 와 닿았다.
나도 얼마전까지는 박사과정에 있다가 '공익'으로 훈련소를 다녀왔다. 공익 훈련소는 전과자나 중학교만 졸업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의 세상인식과 삶의 태도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민중이라는 것, '우리'라는 것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은 나의 공익 훈련소 경험을 반추하게 한다.
또 나를 돌아보게 만든 것은, 독서라는 것은 세상의 인식에 대한 인식이라서, 이 보다는 세상 자체에 대한 인식과 성찰을 중요시한다는 선생의 성찰. 국문학도라는 특성도 있지만, 나는 세상보다도 오히려 '책' 속에 갇혀 있지 않았나하는 반성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