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미사일 방어체제 살림지식총서 5
정욱식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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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방어체제 MD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고, 신문과 잡지에서 이것저것 읽어서 어느정도 지식은 있었다. 또 9.11에 대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영화로 군산복합업체와 석유산업과 관련된 미국 경제-정치적 맥락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한 큐에 정리해주는 책, 특히 한국인의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국제 정치적 맥락을 깔끔하게 집어주는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미-러 관계가 러시아의 경제적 이득 추구 때문에, 미국의 MD 체제 강화에 더 이상 제동을 걸지 못하고, 중국 또한 마찬가지인 국제 정치적 맥락과 일본에 MD의 영향력 아래 들어오게끔 유도함으로서 동북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더욱 높인 부시 행정부의 전략.

결국에는 국제 정치라는 것은 현실주의적으로 자신(한 국가, 내지는 그 국가의 지배층 -부르주아)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기 마련이고, 이를 잘 포장해서 자국 내의 민중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바로 '명분' 즉 이데올로기 일 터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냉정하게 걷어내고 미국의 가면 뒤에 있는 군산복합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한 시각 위에, 남북한에게 미국이 북한 핵을 용인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즉 북한 핵을 이용해서 미국의 MD체제를 확립하여 군산복합체가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근거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 책이 쓰인 2003년의 4년 뒤인 오늘날 정세에 부합하는 것 같다. 부시 행정부가 왜 그렇게 북한과 협상하기를 '사실상' 꺼려했는지는 분명하다. 그것이 '자신'의 이득에 더 걸맞기 때문이다. 비실비실한 적이라도 '적'이 있어야 내부단결이 되고, 무기도 팔아 먹는다.

북한은 미국이 주권을 존중해주고, 침공하지 않으며, 경제제재 해제를 비롯한 경제 발전의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것을 담보해 준다면 핵 미사일 문제 등 미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줄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협상을 거부한 채, 대북 제재 및 MD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이 결코 북한의 핵무장이나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에 있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가 평화적으로 풀릴 경우 MD를 비롯한 신무기체계 개발 및 군사비 증액의 강력한 명분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 협상을 거부한 채, 북한의 핵무장을 '내면적으로' 용인하면서까지 이를 활용할 의돌르 보이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이를 통해 분명 자신의 절대주의적 안보관과 강력한 정치적 후원자인 군산복합체에 대한 보답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할 것이다.(57-58)

실제로 부시 행정부로서는 북핵 문제가 어떻게 귀결이 되어도, 자신은 크게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는 판ㄷ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핵포기를 하면 부시 행정부는 '힘에 의한 외교의 승리'로, 북한이 핵무장을 추진하면 MD 등 강력한 군비 증강의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60)

이러한 진단(물론 미국은 '한시적'으로만 북핵을 허용할 것이다) 아래 지은이는 남한에게는 '친미'도 '반미'도 아닌 '탈미'와 '평화주의'에 기반을 둔 민족공조로, 북한 또한 미국 패권주의에 맞서는 방식으로서의 '평화주의'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것이 남북한 모두 선택 가능한 카드일지는 의심이 든다. 평화는 힘이 없이는, 홀로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지키기 힘들다. 만약 북한이 '벼랑 끝 전선'을 포기하고 '평화주의'적 노선을 따르게 될 때, 미국은 북한에게 인권 문제 등을 구실로 계속 내정간섭을 심화할 것이고, 결국에는 개혁-개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했을 때 이 요구를 북한 노동당의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있을것인가. 북한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북한 지배층은 이를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역시 그들은 벼랑 끝에 서 있고, 벼랑 반대 방향으로의 길은 험하다.

남한도 마찬가지. 남한 지배층은 '탈미'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유할 수 있을까. 특히 동북아라는 지정학적 위치 상, '탈미'는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특히 남한 지배층들의 미국에 대한 맹신적 접근을 단시일 내에 패퇴시킬 수 없다고 했을 때, 이 '탈미' 또한 이론적으로나 가능할 뿐이 아닐까.

이 모두 급박한 동북아 상황에서 남북한 모두 추구하기 힘든 길이다. 그러나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면서 '이상'으로 품을 만한 내용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 투쟁도 바람직한 10년, 20년 후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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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1-0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M님/ 맞어요. 환상을 통해 돈을 버는 것. 이것이 21세기의 위대한 점 아니겠어요? '도상국'이나 '후진국'만이 땀을 흘려 돈을 버는 것 같아요.
총체적으로, 무서워요.
 
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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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때, 우리는 주사파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공부 좀 하라고, '아직도' 주체사상이냐고. 주사파로 묶일 수는 없지만, 소위 NL세력들에 대해서도 '통일'을 항상 소리 높여 부르짖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북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특별히 '해방'되어야 할 객체도, 우리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체'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별 관심 없었다. 타자.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요, 남한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주체는 더욱 아닌. 타자.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계기는, 대학원에 들어와서 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 때문에 금강산 관광 관련해서 간사를 맡게 되면서부터이다. 금강산 관광을 준비하며 북한의 까다로운 태도와 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날카로운 감정들을 새삼 느끼면서, '북한'이라는 미묘하고도 까다로운 주체에 대해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록 제한되고 통제된 금강산이나마, 그 곳을 밟았을 때. 김정일, 김일성의 이름이 붉은 그야말로 '용사비등'한 문체로 곳곳의 바위와 건물들에 새겨져 있는 땅에 섰을 때. 그들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야기를 걸고, 조금은 마른 북한 남자와 조금은 촌스러운 북한 여자들과 만나게 되었을 때. 그 때의 충격! 북한이라는 것은 남한을 전제해야만 존재하고, 남한은 북한을 전제해야만 존재한다는 것. 논리적으로도 '북'과 '남'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우리'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 언어 민족주의의 '위대한' 힘이여.

남한에서 차로 불과 30여분 가서 북에 도착할 때 흘러나왔던 '방갑습네다' 노래는 철책선과 군인들의 살벌한 경계에 뛰던 가슴을 또 다르게 움직였고, 북에서 출발할 때 '다시 만날 그 날까지'의 가사가 가슴을 때렸다.

그랬던 북한. 또 훈련소 입소 때, 하필이면 그 때, 북한의 '핵실험'이 실행되어 비상이 떨어졌고, 하필 그날 야간행군을 끝내고 불침번을 서다가 졸았던 때, 중령이 시찰을 돌아서 걸리게 된 훈련병 나.

군에 있을 때, 북한은 악마이고 전쟁 외에는 알지 못하며, '미친놈'들이니 이제 갈 때까지 간 거라는 '세뇌'에 지쳐갔다. 북한의 '민중'들은 한 없이 가까우면서도, 한없이 먼, 그래서 정말 공포의 대상인 미지의 존재로 각인되어 졌다.

그리고 얼마 전, 중학생과 고등학생에게 논술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북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었다. '불쌍한 나라'라고. 얼마 전에 있었던 핵실험이나 2002 월드컵 시기의 '서해교전'은 그들의 기억 속에 없었다. 한없이 불쌍한 나라지만, '타자'. 그들의 인식은 내 학부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북한에 사는 소시민들의 일상사. 일상을 통해서만이 '사람'됨이 드러나고 구성된다고 할 때, 정말 이 책은 '북한'의 소시민들을 잘 그려낸다. '북한'이 '타자'가 아닌 '우리'로 드러난다. 공포나 연민의 대상이 아닌, 대화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상으로.

물론 북한은 그러한 대상만은 아니다. 대미관계나 미국의 압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안온하게 살고 있는 남한의 소시민들을 압박한다. 2002 서해교전에서 국가장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병사들은 죽어가며, 서로를 죽여가면서 '국가'라는 이름의 대리전쟁을 치른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인민'들은 다시금 '남한' 또 '북한'으로 호명되며 이는 다시 '북한-빨갱이 미친놈', '남한-미제의 압잽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각인된다. 우리는 다시 '우리'됨을 그치고 서로의 철책선을 상기한다. 북한과 남한으로 존재한다.

결국 문제는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기보다는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로 물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라는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 인민은 '남한'이라는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 국민들과의 특정한 관계 속에서 특정한 성질을 갖는 대상으로 드러난다. 그럴 때, 이와 같은 책의 역할은 '북한 인민의 일상'과 '남한 소시민의 일상'이 만나는 점에 있어서의 '북한'이라는 대상. 그 따뜻한 공유지점들과 소중한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호명되지 않은 균열지점들을, 하나의 인간과 또 다른 인간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북한'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의 하나로 기능해 북-남, 남-북 관계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 주기를. 아니, ‘북한’ ‘남한’으로 존재하는 것을 멈추고, 함경도, 황해도, 평양의 ‘우리’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결국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괴물인지, 동포인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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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6 - 이탈리아 먼나라 이웃나라 6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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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아서, 이번에 개정판 이탈리아 편을 읽었는데 역시 너무 평이하고 그닥 새로운 점도 없어서 실망이었다.

이탈리아 편의 분량 중 80%는 로마에 관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나 <로마 제국 흥망사>같은 책을 보면 훨씬 자세하고 더 흥미진진하고, 현대 이탈리아 역사나 파시즘에 관해서는 관련 책을 보는 것이 더 좋다.

어찌보면 이 리뷰 자체가 '타겟 독자'가 아닌 내 입장에서 끄적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만약 성인 독자가 이 책이 읽을만할까 라고 궁금하게 여긴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몇 자 적는다.

이탈리아의 역사, 특히 로마사가 궁금하다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참고하면 되는데, 그녀는 쫌 영웅사관에 사로잡혀 있으며 귀족을 좋아하니 그것을 보완해 줄 만한 것으로는 키케로의 글들을 참조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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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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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냉소가 적절히 버무려진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진행된다. 홀든 콜필드라는 중상류층 16세 소년이 주인공으로 유명한 사립학교에서 퇴학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까지의 이틀 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신을 '홀든 콜필드'라고 주장하는 정신병원의 한 소년(?)이 얼마전의 과거를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만 읽으면 그가 왜 정신병원에서 치료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소설 중간에 아버지가 정신과 의사인 선배가 그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는 것이나, 그가 학교를 종종 옮겼다는 것, 그리고 그의 서술 자체에서 엿보이는 정신세계의 불안성 등을 그 이유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소설 내에서 홀든 콜필드는 부자집 아들이지만, 친구한테 맞아서 코피도 흘리고, '창녀'와 포주에게 속아서 돈을 빼앗기고, 믿었던 선생님한테는 성추행을 당하는 등, 온 세상이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 홀든은 온 세상을 부정적으로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거리에 뛰쳐나가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세상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소년은 세상에 패배한다.

소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준성인이라는 의미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라고 세상은 인식할지 모른다. 콜필드에게 세상은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말하지만, 콜필드는 학교의 모든 것이 못마땅할 뿐이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그 아이들을 잡아서 안전하게 놀 수 있게 하는 일. 결국 '성인'이라는 것은 직업을 갖고 사회에 '공헌'/'착취'당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콜필드라는 소년/준성인은 그러한 시스템 밖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시스템의 밖을 시스템 내적으로 구속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정신병원과 감옥. 콜필드는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또 하나는 '군대'로, 소설 안에서 여동생에게 콜필드가 아마 아빠는 나를 사관학교 같은 곳에 보내겠지 라고 말한다. 작가인 제롬 데이브드 샐린저 또한 중학교를 중퇴하고 사관학교를 가게 되었다.)

읽으면서 콜필드의 냉소와 유머에 즐거웠지만, 그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소년은 좌충우돌 서서히 '미쳐간다'. 이 '미친다'는 것은 결국 시스템에서 용인하는 정도를 넘어선다는 것이며, '소년'이라는 것은 시스템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단계/또는 따라서 시스템에 아직은 완전히 편입되지는 않은 존재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순수와 광기, 소년과 성인의 의미를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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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책세상 루트 2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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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이 책에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에는 동의하는 바이고, 중간 중간 삽입된 그림도 매우 웃기고 적절하다. 그런데 이 책 또한 타겟 독자가 중고생이었다가 성인이었다가 오락가락 한다.

탁석산씨는 집필 의도가 '칼럼', '사설'을 읽는데 오류를 잡아내기 위해서라고 하고, 그림 또한 준성인물(?)스러운 내용이 있어 예상 독자가 '성인'인 것 같지만 중간중간 논술 이야기도 나오는 등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어느정도 칼럼/사설을 읽는 성인이나 논술을 쓰려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니 대상 독자가 둘 다를 아우른다고 해도 괜찮다.

문제는 이 책이 출간된 2001년의 사례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서, 5년이 지난 지금 읽기에는 조금 '시의적절'하지 않은 면들이 보인다는 것. 내용은 별반 바꿀 필요는 없지만 5년이나 지난만큼, 2006년 버젼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어떨까? 책도 많이 팔리는데, 이 기회에 업그레이드 한 번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끝으로, 책 내용은 좋지만, '논증'을 강조하는 저자가, 흥분할 때마다 (한국은 이래서 안되, 저래서 안되 식의 주장) 적절한 논거를 제시하는 '논증'이 아니라 '우기기'를 하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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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6-12-2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M님/ 네 ㅎㅎ 그런 점도 있겠네요.
그래도 결국 논지는 바뀌는 게 없으니까, 수정증보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