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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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무슨 내용이지? 하고 책을 한번 훑어보려고 스륵 책장을 넘기는데 로빈슨, 항해일지, 이런 단어가 획획 지나갔다. 이거 로빈슨 크루소가 떠오르는데? 하고 책 뒤표지를 봤더니, 세상에, 그 로빈슨 크루소가 맞다. 아니 디포가 지은 로빈슨 크루소를 뒤집은 패러디 문학이다.

 

로빈슨 크루소야 뭐 현재 시대에서 고전이 되었지만, 그 고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그러니까 흔히 고전이라고 하면 유명은 한데 내용은 잘 모르고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 아닌가) 로빈슨 크루소는 보통 아이들이 읽는 세계 동화 전집에 꼭 포함된 이야기라서 세세하게는 몰라도 대강의 이야기는 다 안다. 우리 세대라면 노빈손 시리즈도 알 테고.

 

방드르디는 뭔고 하니 금요일이라는 불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로빈슨 크루소가 구해줬던 흑인에게 구해준 요일이 금요일이라 프라이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하인으로 삼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 하인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것만 봐도 아, 이 소설이 뭘 비판하겠구나 하는 감은 어느 정도 올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99.9% 로빈슨 크루소를 읽었던 게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내용에 대해 자기 스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일단 소설이 상당히 재미있다. 어쨌든 모험기니까.

 

390쪽의 책에서 320쪽부터 작품 해설이 시작된다. 내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작품 해설의 비중이 제일 많다. 참고로 작품 해설 전까지는 오히려 쉽게 읽히고 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읽힌다. 그만큼 이 책이 학술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은 책이겠지만, 또 그 반면에 이런 저런 내용을 깊게 음미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읽힌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로빈슨 크루소를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던 방드르디가 결말에서 그런 식으로 퇴장한다는 것은, 방드르디 또한 로빈슨 크루소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도구적인 존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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