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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졸업 : 스페셜 에디션 콤보팩 (2disc: BD+DVD) - Blu-ray & DVD Double Edition
마이크 니콜스 감독, 앤 밴크로프트 외 출연 / 컨텐트존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잘 몰랐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결혼식이 끝나기 전, 신부를 낚아채어 밖으로 뛰어가던 순박한 모습의 젊은이, 그리고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달려나가는 신부의 장면만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영화니까.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지금과는 다르게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니까, 영화, 특히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이국적인 분위기와 세련된 영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으리라.
영화의 정확한 내용은 잘 몰랐다. 다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장면 때문에, 사랑하는 남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혼을 하지 못했고,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용감한 청년의 행동으로 극적인 해피엔딩에 골인하였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부모의 반대일 것이고, 부모가 반대하는 이유는 양가의 집안 격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소박한 더스틴 호프만의 외모가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고, 그 외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기가 어려웠던 내 나이가 또 다른 이유였을 것이고.
뚜껑을 열어 본 이 영화의 내용은 어렴풋이 내가 믿고 있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더스틴 호프만은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밖에 없는 청춘이 아니라, 부잣집 도련님에 명문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각종 클럽 활동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그야말로 엄친아였던 것. 그럼 사랑하는 여자와 맺어지지 못할 뻔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 여자의 어머니와 불륜 관계였기 때문에.
어머니뻘 되는 유부녀, 그것도 자신의 부모와 가까운 사이인 상대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도 영화에서나 평범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이지 실제로는 참 힘든 상황인데다가, 심지어 그녀의 딸을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 그것도 모자라 결혼식 당일 그녀와 함께 도주하는 결말이라니. 이거 아무리 할리우드라지만 뭐 이런 막장 스토리가 있나 싶다. 법적으로는 딸이더라도 입양을 했거나, 혹은 남편의 전처의 딸이라는 설정 등으로 생물학적으로는 남이라고 설정하는 식으로 피해가지 않고 왜 굳이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만든 것일까? 아마도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 그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면, 아무래도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역시, 원작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각은 좀 더 나아갈 수 있다. 대체 원작자는 왜 이런 스토리를 만든 것인가?
원작은 62년, 영화는 67년. '졸업'의 벤자민이 대학교를 '졸업'한 시기는 60년대. 그 당시 미국은 그야말로 혼란의 세대였다고.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 젊은이들이 히피라는 이름으로 현상화된 것이 바로 이때이다. 주인공 벤야민도 마찬가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젊음과 부, 집안 등 모든 것이 풍족해보이는 이 청년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방황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이 아마도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이냐?" 이 말일 것이다. 벤자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한번씩 한다. 부모도, 친척도, 이웃들도. 부모는 그에게 대학원을 가라고 하고, 한 어른은 당시 첨단 산물 중 하나였을 '플라스틱'을 언급한다. 벤자민은 그 어떤 어른들의 말대로 하고 싶지도 않지만, 딱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저런 현실적 제약으로 꿈만 꾸어야 하는 것과, 능력과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 둘 중 어떤 쪽이 젊은이에게 더 불행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방향을 잡지 못하는 60년대 미국 청춘의 이야기는 2010년대의 대한민국의 청춘에게도 유효하다는 것. 50년이 지난 이 영화가 당시에도 감독에게 아카데미 상을 안겨줄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까지도 고전이 되어 수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라서가 아닐까? 주제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지금 보아도 세련된 부분이 많다. 카메라의 기법이나 화면 구도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로빈슨 부인이 유혹하는 장면에서 두 인물의 위치, 그리고 로빈슨 부인의 특정한 신체 부위에 카메라가 집중하는 것, 수영장에서 유유히 떠 있던 벤자민이 밖으로 훌쩍 뛰어넘는 장면이 바로 침대 위 로빈슨 부인에게 달려드는 장면으로 연결되는 것, 결혼식 장면에서 하객들의 목소리가 무음으로 처리되고 두 남녀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등 지금 보아도 놀라운 장면들이 많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젊은 남자와의 외도로 공허함을 달래는 로빈슨 부인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기성 세대를 의미하겠지. 그녀의 딸 일레인은 순수하면서도 당돌하고, 진실된 젊은 세대이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절연하고 딸과의 관계를 새롭게 쟁취한 벤자민은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이 상징성 때문에 벤자민이 관계를 가지는 두 명의 여자는 반드시 혈연관계여야 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당시의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와 생물학적으로는 연결되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전혀 다른, 혹은 다르다고 믿고 있는 부류였을 테니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환희에 빛나던 두 젊은이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표정이 다소 심란해진다. 아마도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겠지. 이 부분에 대한 해석도 사실 재미있는 것이 많은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500일의 썸머>가 떠올랐다. 바로 이 장면을 영화관에서 함께 보면서,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남자는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후 여자는 남자에게 이별을 고했다. DVD의 특별 영상에서 이제 중년이 된 더스틴 호프만은 25년 후, 두 사람이 부부가 되고 자녀가 있는 이른바 졸업의 두번째 이야기를 구상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결국 저 둘은 얼마 안 되어 헤어질 것이라고 예감했는데 말이다.
이 영화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OST. 사이먼 앤 가펑클이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았으며, 영화의 엄청난 흥행과 함께 사이먼 앤 가펑클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의 그룹 SG 워너비의 뜻이 바로 사이먼 앤 가펑클을 본받고 싶다는 의미라고. SG워너비의 초기부터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이름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과 함께, 저들이 그토록 본받고 싶다는 그 그룹은 대체 어떤 그룹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갑자기 그 기억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