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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SE (2disc) - 할인판
마이클 커티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영화 사상 가장 로맨틱한 장면 1위. 이것이 내가 카사블랑카를 보기 전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TV에서 본 적이 없었다. 비비안 리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주말의 명화로 여러 번 봤던 것으로 기억하고,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도 TV에서 봤던 것 같은데 말이다.
우연히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을 보고 완전히 반해서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카사블랑카를 보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깜찍하고 청순한 미인이 인기가 있는지 오드리 헵번이나 올리비아 핫세보다 덜 인기가 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나는 사진만 보고 바로 좋아진 고전 영화의 여배우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유일했던 것 같다. 다른 여배우들과는 다르게 특유의 지성적인 이미지와 깊은 눈매가 단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오드리 헵번은 보면 참 기분 좋아지는 배우이고, 말년의 인생도 아름다웠다고 느껴지지만, '전쟁과 평화''사브리나''티파니에서 아침을''로마의 휴일' 등을 보면서 그녀가 연기를 엄청 잘한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이미지가 계속 되풀이되어서 조금 식상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후대에 영향을 줄 정도인 그녀의 패션 감각은 지금 보아도 참 대단하다고 느껴지고, 사생활도 건전하다는 점이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그러고 보면 잉그리드 버그만은 오드리 헵번과는 여러 면에서 대비가 된다고 할까? 벨기에 출신인 오드리 헵번처럼, 잉그리드 버그만은 스웨덴 출신으로 둘 다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할리우드로 건너온 미인이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치과 의사와 결혼하고 딸이 있는 상태에서 유부남인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로지 그의 영화에 반해서 편지를 띄우고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르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할 경우에 자신이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은 로맨틱하기도 하다. 이 불륜은 1남 2녀를 남기고 재정적인 파탄 속에서 끝나게 되고, 다시 할리우드로 올아온 잉그리드 버그만은 두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복귀한다. 그 후 수많은 영화에 출연 후 마지막으로 노년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사생활은 깨끗한데 연기나 작품으로 임팩트가 없는 배우와, 사생활에는 조금 굴곡이 있더라도 연기가 뛰어난 배우 중 한 쪽에 손을 드렁주어야 한다면 나는 후자일 것 같다. 버그만은 나중에 회고하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비록 바닥까지 추락했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은 자신의 직업인 영화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로셀리니에게 가기 전에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최고의 여배우였고, 할리우드 복귀작에서도 두번째로 또 수상하며 멋지게 복귀했으며, 죽기 전까지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명작을 남겼고, 노년에 세번째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과정을 보면, 정말 영화를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대신 모나코의 왕비 자리를 택한 배우도, 상대적으로 빨리 은퇴한 후 평생 봉사를 한 배우도 다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서 찬미의 대상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생 전체를 열정적으로 살다간 잉그리드 버그만 쪽이 훨씬 더 감동적이라고 할까. 그녀의 딸은 이사벨라 로셀리니로 랑콤의 얼굴이었고, 현재까지 활동하는 배우이며, 이사벨라의 딸도 랑콤의 모델이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큰 딸은 한동안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했으나 그 이후에는 화해하여 죽을때까지 잘 지냈다고 한다. 이 디스크의 특별 영상에서 험프리보가트의 아들과 함께 각자의 부모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다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 대한 극찬은 수없이 많다. 또 이런 저런 뒷이야기도 많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이른바 쪽대본으로 남녀 배우들이 끝까지 결말을 몰랐으며, 실제 카사블랑카에는 안개가 끼지 않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부실한 세트를 가리기 위해 설정한 안개가 오히려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을 만들었다는 것 등. 그 유명한 Here's looking at you, kid라는 대사는 보가트가 당시 영어가 서툴었던 버그만에게 체스를 가르치며 자주 했던 말을 애드리브로 넣은 것이며, 너무나 유명한 OST인 AS time goes by는 영화를 다 만든 후 다시 음악을 만들어 작업을 하려고 했으나, 버그만이 다음 영화를 위하여 머리를 짧게 잘라버린 까닭에 결국 원래의 노래로 진행했다는 것 등. 수많은 우연이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들었고, 어떻게 보면 이런 저런 임기 응변이 이 영화를 인상깊게 만들었다는 점은 역으로 출연 배우들의 매력이 어마어마했다는 말도 되겠다. 이 디스크에는 이런 저런 스페셜 영상이 많았는데 한 영화 평론가의 마지막 코멘터리가 인상 깊다. 자신에게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시민 케인을 꼽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카사블랑카를 꼽겠다는 말.
카사블랑카 근처에도 가 보지 않은 영화이며, 이런 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게 되면 가슴이 먹먹하게 된다. 험프리 보가트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 1위로 선정된 적이 있다는데 이 영화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작은 키, 잘생기지 않은 외모지만 목소리와 몸짓, 눈빛은 정말 매력적이다. 잉그리드 버그만 역시 눈물이 고인 눈, 아래로 시선 처리할 때의 모습 등은 몇 번을 보아도 설렌다. 왼쪽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나와서 일부러 그 구도로 많이 찍었다는데, 그래서 험프리 보가트와 투샷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거의가 오른쪽에 위치하며 왼쪽 옆얼굴을 보여준다. 그때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또 장난 아니다.
여태껏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특별 영상이 많았던 것 같다. 코멘터리도 두 편, 아이들과 배우자 인터뷰 영상, 다큐멘터리와 애니매이션까지. 웬만하면 부가 영상은 스킵해버리는 나인데 80% 정도는 다 본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아마 당분간은 이 영화를 꼽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