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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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알란 칼손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사상도 거부하는 사람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쓸데없는 기대도 걱정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인생에서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단지 누워 잘 수 있는 침대, 세끼 밥, 이따금 목을 축일 수 있는 술 한 잔만 있으면 그 무엇이라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다. 믿기 힘들 정도의 무사태평한 성격인 그는 1905년 5월 2일 스웨덴에서 출생한 이후로 100년동안 살면서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순간에 끼어들게 된다.

 

마치 어린 시절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읽는 느낌이랄까. 우연에 우연이 꼬리를 물고, 주인공은 어떤 환경에서든 불사신처럼 생존하며, 수십, 수백만명이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그 시대를 묘사하는 톤은 심각하지 않고 경쾌해서 종종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극중 인물들이 총이나 칼을 통해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실수로 냉동실 전원을 끄지 않았든 코끼리로 깔아뭉겠든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모습은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질 정도로 절묘하다. 요컨대, 허무맹랑한 이야기이지만, 그 구조는 꽤 탄탄하며, 이렇게 즐겨도 되나 하는 자책이 들면서도 저절로 새어나오는 폭소는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다.

 

책의 맨 뒤를 보니 44쇄. 국내에서만 대체 몇 부가 팔린 것이고 전세계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독자자들이 이 책을 즐겼단 말인가? 그럴만한 가치가 이 책은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작품성이 아주 뛰어난 소설은 아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의 작가가 계속 이 소설 이후에 히트작을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한국, 미국, 일본, 영국, 간혹가다 프랑스와 독일, 그보다 더 간혹가다 중국 등으로 편중되어 있던 독서 생활에 이 책은 분명히 환기가 되었다.

 

영국하면, 안개와 비오는 날씨, 여왕, 피시 앤 칩스, 딱딱한 발음, 축구 등등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프랑스라면 에펠탑과 몽마르트, 카페와 빵집, 세느 강과 노래하는 듯한 불어가 생각나리라. 실재로 거기에 살지도 않으면서, 며칠 간의 체류, TV 여행 프로그램의 화면, 사춘기 시절부터 이어진 독서로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들.

 

스웨덴 작가의 이 책에서 등장하는 신선한 단어와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3750만 크로나, 아니 5000만 크로나, 말코손바닥 사슴고기, 감자로 만든 독한 증류주인 슈납스, 볼보, 불가리아인과 터키인의 피가 섞인 가게 주인, 핀란드 작가 파실린나, 여가수 소냐 헤덴브라트, 스물아홉가지 약초와 향료를 석 달 동안 화주에 담가 만든다는 감멜단스크.

 

익숙해서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그 풍경이 아니라, 색다른 지역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즐길 만 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거세와 정신 병원 강제 입원,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의 변화 등 1900년대 전반의 스웨덴 역사도 흥미로웠고.

 

 

복습해 보는 알란의 100년 연보 (마지막 장 참조)

 

1905~1929 0~24세 5월 2일 스웨덴 플렌 시의 소읍 윅스훌트에서 알란 엠마누엘 칼손 출생. 열 살의 나이에 폭약 회사에 취직. 부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열다섯 살에 자신의 회사 <칼손-다이너마이트>사를 창립. 폭약 실험을 하다가 정신 병원에 수용됨.

1914~1918 제 1차 세계 대전.

1917 러시아 혁명으로 레닌의 볼셰비키가 세계 최초의 공산 정권 수립.

1918 로마노프 왕조 최후의 차르 니콜라이 2세 처형.

 

1929~1939 24~34세 고향 윅스훌트를 떠나 헬레포르스네스 주물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 그곳에서 스페인 사회주의자 에스테반을 만나 스페인으로 떠남. 스페인 내전의 와중에 폭약이 설치된 다리를 건너려던 프랑코 장군의 목숨을 구함.

1936~1939 스페인 내전. 프랑코 장군이 인민전선 내각에 맞서 반란을 일으킴.

1039 1월 프랑코군 바르셀로나 점령. 3월 마드리드 입성.

 

1939~1945 34~40세 미국으로 건너가 핵폭탄 개발이 한창이던 로스 앨러모스의 국립 연구소에서 웨이터로 일함. 부통령 해리 트루먼과 친구가 됨.

1943~1945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핵폭탄 연구 진행.

1945 7월 미국, 세계 최초로 핵 실험에 성공. 4월 12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사망. 해리 트루먼 부통령, 대통령직 승계.

 

1945~1947 40~42세 쑹메이링의 국민당을 돕기 위해 중국으로 떠남. 이빈 시에서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을 구함.

1946~1949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의 내전. 공산당 승리 후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47~1948 42~43세 이란 테헤란의 비밀경찰 감옥에 갖혀 퍼거슨 신부를 만남.

1945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 영국 총선 패배.

 

1948~1953 43~48세 러시아 과학자 포포프를 따라 모스크바로 가서 스탈린을 만남. 반동으로 몰려 블라디보스토크로 노역을 가게 됨.

1949 8월 소련 핵 실험 성공.

 

1953 48세 블라디보스토크 수용소 탈출. 김일성, 김정일을 만남. 마오 쩌둥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남.

1950~1953 한국 전쟁.

 

1953~1968 48~63세 발리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냄. 친구 아인슈타인의 부인 아만다는 정치인이 됨.

1963 3월 발리 아궁 화산 폭발로 2천여 명 사망.

1968 3월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선출.

 

1968 63세 파리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통역으로 일함. 존슨 대통령을 만나 미국 스파이로 일하게 됨.

1968 프랑스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주도한 사회 변혁 운동인 68혁명 발발.

 

1968~1982 63~77세 러시아 과학자 포포프를 미국 첩자로 포섭. 모스크바에서 스파이 활동.

1945~199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이 대립하는 냉전 체제 고착. 1990년 독일 통일, 1992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로 종식.

 

1982~2005 77~100세 고향으로 돌아옴. 2005년 5월 2일 백 회 생일 파티를 앞두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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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크래커 2015-04-28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코손바닥 사슴고기??? 이따금 들르는 서점에서 특이한 제목 땜에 두어번 시선이 머물렀던 기억이 납니다. ˝화주˝란 말도 궁금하군요.

마고할미 2015-04-29 03:16   좋아요 0 | URL
화주란 불이 붙을 만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라고 합니다. 소주나 위스키, 브랜디가 화주에 속한다는군요. 추운 지방일수록 아무래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자주 마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말코손바닥 사슴고기`는 제가 띄어쓰기를 틀렸군요. `말코손바닥사슴의 고기`입니다. 말코손바닥사슴은 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 그러니까 이른바 북유럽인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북부 지역, 시베리아, 캐나다, 알래스카 등지에 분포한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엘크, 혹은 무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저도 말코손바닥사슴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처음 봤는데 엘크나 무스라는 단어는 다른 책에서 본 적 있어요. 사슴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그 크기가 커서 원주민들은 말처럼 타고 다닌다고 하는군요. 한때 멸종 위기에 있어서 적극적인 보호정책이 있었고, 최근에는 그 수가 다시 늘어났다고 합니다.

치즈크래커 2015-04-29 07:11   좋아요 0 | URL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마고할미 2015-04-29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특이하지만, 표지도 예쁜 책입니다.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순간들을 다루고 있지만 따로 역사책을 봐야 할 만큼 어려운 내용도 전혀 아니고, 중간 중간 유머 요소도 굉장히 많습니다. 한번쯤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치즈크래커 2015-04-29 07:12   좋아요 0 | URL
넵. 꼭 한번 읽어 봐야겠네요.~^^
 
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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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총 아홉 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황정은의 특징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리듬감이 느껴지고, 다음 이야기가 자꾸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어서 읽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다만 끝나고 나서 사유하는 시간이 오히려 길었던 것 같다.

 

재미있다. 이것은 확실하다. 재미있고, 이 작가는 묘사를 잘 한다. 하지만 서사는 부족하다. 기대되는 작가다. 묘사가 관찰에서 비롯된다면, 그래서 어떻게 관찰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대상이라도 묘사는 달라지는 것이라면, 확실한 것은 황정은은 관찰하기 위해 서 있는 자리의 위치가, 서 있는 모습이, 관찰하는 도구가, 많은 작가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읽으면서 다소 불편하다고 느꼈다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지 않으니까. 익숙하지 않지만, 상투적이지 않기에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다만, 소설 속에서 그리는 그 이미지라는 것들이, 여러 군데에서 중첩되는 느낌이 든다. 다른 책이기는 하지만, '낙하하다'의 몇 년째 낙하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구멍에서 한동안 낙하하여 지구 밖으로 뚫고 나간 앨리스가 떠오르고, 자연스레 그녀의 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떠오른다. '양산 펴기'에서의 양산은, 바로 뒤의 소설인 '디디의 우산'의 우산과 시각적인 이미지가 연결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황정은은 단편보다 장편이 더 좋은 것 같다. 여기 단편집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장편으로 발전시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몇 몇 있었다.

 

야행(夜行)
대니 드비토
낙하하다
옹기전(甕器傳)
묘씨생(猫氏生)
양산 펴기
디디의 우산
뼈 도둑
파씨의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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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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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보게 되면 제목 때문에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의 이름은 앨리시어. 물론 책을 읽어나가면서 왜 앨리스라는 이름을 가져왔는지, 우리가 앨리스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이 책에서 변주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 속에서 작가가 깔아놓은 이야기 말고도, 나름의 이야기로 유추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은 떡밥이다. 주인공은 전혀 야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앨리시어라는 한 여장 부랑자로부터 시작된다. 왜 여자일까, 왜 부랑자일까,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이 소설은 작가가 오사카 여행 당시 한신 백화점 근처에서 여자 부랑자를 보고 나서 구상하였다고 한다. 작가라면 그 기괴한 모습을 보면 당연히 저 사람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했을 것이고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었을 봄직하다.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 작가는 가정폭력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왔다.

 

이 책의 주된 소재는 가정 폭력이다. 특이한 것은, 가정 폭력의 주체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정 폭력의 형태는 때리는 아버지, 매맞는 어머니 혹은 묵인하는 어머니일 것이다. 여기에서 앨리시어와 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어머니이며, 아버지는 이를 묵인한다.

 

책은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은데, 그렇다고 가볍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리듬감이 있고, 특히나 대화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삽화들(아버지가 예전에 머슴으로 모셨던, 지금은 음식점을 하고 있는 옛 주인집에 가는 장면 등), 그리고 앨리시어가 동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네꼬와 여우의 이야기 등)이 그 부분만 따로 뗴어 놓고 보아도 재미있다.

 

다만, 이야기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문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앨리시어는 자신이 어머니보다 커지고, 힘도 세졌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머니에게 대들거나 폭력을 중지시키기 위한 어떤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전처 자식들과는 달리, 집을 떠나 버리겠다는 의지도 없으며, 여러가지 시도는 번번히 중간에 스러지고 만다. 동생의 죽음 이후, 어머니의 슬픔이 진짜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큰 뜻으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어머니마저도 끌어안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를 긍정까지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시 어린 시절에 외조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했던 어머니의 일화를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 마지막에 가서야, 동생이 죽고 나서야, 앨리시어는 집을 떠나는데, 그 모습 또한 이리저리 떠돌며 여장을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아도 단순히 현실의 도피이며, 가정폭력의 대물림에서 의지적으로 그 고리를 끊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에, 소설의 마지막은 희망이 아니라, 어쩌면 앨리시어 또한 그 대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황정은의 소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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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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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절필한 것이 정말 아까운 작가.

계속해서 소설을 썼더라면 아마 칠순이 된 지금쯤에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문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보면, 아마도 김승옥이 창작 생활을 지속했더라면 이미 한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김승옥의 단편들은 내 또래라면 모를 수가 없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 교과서, 수능 기출 문제, 수많은 참고서와 모의고사에 등장했던 그의 이름을 사춘기 시절 수백번은 접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좋은지도 잘 모르고 공부했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약 10년 만에 다시 접하게 된 그의 글은 여기에 실린 단편이 끝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좋았다.

 

사실 이번에 갑자기 이 단편집을 읽게 된 것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덕분이었는데, 실린 단편은 꽤 많지만 이미 절반 정도는 고등학교 시절 접했던 작품들이어서 전부 다 읽어나가는데 부담은 없었다. 원래 알고 있던 절반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읽었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었고, 이번에 처음 접한 나머지 반에 대해서는 처음 만났을 때의 신비함이 있었다. 방송을 들으면서 작가 개인에 대한 이야기와 소설을 둘러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유명한 광고처럼,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했던 바로 그 광고처럼, 표현이 짧고 지식이 부족해 이 소설들이 왜 좋은지 설명할 방법이 나에게는 없다. 참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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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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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다음의 정유정 소설.

<7년의 밤>보다 이 소설이 훨씬 좋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광주 출신이며 현재도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그녀, 현재 40대 후반인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면 소설 속 계엄 상황의 묘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직접 그 상황을 몸으로 겪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감정도.

 

링고, 스타, 쿠키. 이 중 링고는 개처럼 생긴 늑대다. 여기에서는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가 떠올랐다. 전체적인 느낌, 특히 남녀 주인공의 사랑은 강풀 만화 <당신의 모든 순간>을 떠올리게 했고.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잃지 않으며 꿋꿋이 자신이 할 일에 집중하는 몇몇 사람들, 그 중에서도 시민들이 수용되어 있는 체육관에서 아코디언을 켜던 마지막 남은 자원봉사자인 한 노인에서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마지막까지 연주를 계속하던 오케스트라가 생각나기도 했다. 개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보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개봉한 영화 <화이트 갓>이 생각났고. 언제 죽을지 모르며 고립되어 있다는 상황에서는 마치 홀로코스트를 다룬 <생존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역시 본 적은 없지만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 우연히도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개봉했던 영화 <감기>가 떠오르기도 했고.

 

작가가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것을 보면, 끝까지 독자가 집중하게 만드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지 소설의 미학적 측면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정유정의 소설에서는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나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핵심을 찌르는 부분은 많지만, 반드시 소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표현들은 아니다.

 

간호사라는 그녀의 이력 때문에, 그녀의 소설 속에서는 등장인물의 직업 중 의료인이 빠지지 않고, 병원도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엄청날 정도의 취재를 하여 생생한 세계를 그려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등장 인물 중 일부는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세계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작가 자신의 마음이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재미있는 소설. 다 읽고 나면 작가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소설 속 여자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었던 것도 이전의 정유정 소설보다 더 좋았던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다만, 굳이 흠을 잡자면, 작명 정도? 비틀즈의 링고 스타에서 이름을 따와 각각 링고, 스타로 불렀을 것 같은데, 만약 동일한 주인 밑에서 큰 개들에게 주인이 일괄적으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설정이면 모를까, 각기 다른 주인에게서 이름을 부여 받은 개들 치고는 좀 우연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이런 우연에 대해서 작가는 모르는척 한마디 언급도 없이 그냥 넘어가버리고. 더구나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어쩌다 간혹 그러면 모르겠는데 연예인 이름이 너무 많다.

 

동해, 윤문식, 김유미, 진경, 윤미래, 문대성, 조현재은 유명인사의 이름과 똑같고, 심지어 한동안 무명이다가 최근 주목받았거나, 이런 저런 다른 일들로 갑자기 검색어에 자주 올랐던 사람도 있다. 서재형, 강혜영, 임지영, 한기준, 박은희도 한 글자만 바꾸면 연예인 이름과 똑같다. 물론 이렇게까지 의심해보는 건 좀 지나치다고는 생각이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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