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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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읽은 책인데... 글쎄...

 

그러니까 이게 요약을 하자면 인생이란 마치 추리소설처럼 인과응보 명확하고 촘촘하게 짜인 플롯으로 구성된 것 같지만 실은 우연과 우연의 연속이며 사소해보이는 우연이 한 사람의 일생을 뒤흔들수도 있다, 이런 것 같은데 이미 이런 이야기는 너무 많이 봐서 신선하지는 않았는데...혹시 내가 놓치는 뭔가 다른 게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작고한 이 작가가 최초로 내어놓은 아이디어가 워낙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것이기에, 후대의 많은 작가들이 이 테마를 가져다 썼고 그 이후로는 오히려 이런 테마가 식상하게 느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독일어권 특유의 건조하고 담담한 서술은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것도 국민성을 닮아가는지, 끝없이 묘사가 이어지고 장대하게 펼쳐지는 프랑스 소설(물론 내가 읽은 소설에 한해서다, 나는 소설을 아주아주 적게 읽었으니까 잘은 모른다.)에 비해 이 소설은 단조롭다 못해 퍽퍽한 부분은 있다. 크림과 과일로 장식된 케이크를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한 느낌은 없지만, 딱딱하고 소금기 가득한 프레첼을 묵묵히 다 먹고 난 느낌.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나 형이상학적인 고민을 다루는 담담하고 건조한 스타일의 독일어권 소설을 나는 청소년기 때부터 사랑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서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면 먹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강한 향이나 달콤한 맛이 그리울 떄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달콤한 과자와 믹스 커피를 마셨던 것은 아마 그 떄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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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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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나온 소설이다.

 

40년대 출생한 일본 남자 작가.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나는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너무나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 모든 것이 나의 업이고 운명이라는 태도. 물론 살면서 우리의 인생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은 연이어 일어나고, 그것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거나, 극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고 이 소설 속 인물들, 그리고 작가가 지향하는 방식이 뭔지는 알 것 같고 그 또한 존중하고픈 마음이 들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공감도 가지 않고.

 

문장은 참 아름답다. 수십 년 전의 사랑 이야기. 은근하면서도 절절한, 이런 사랑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이제 이런 사랑은 현재에는 완전히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 한 번의 우연한 만남과 둘 사이에 지속되는 편지 교환, 그리고 나서 서로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아픔을 극복하고, 각자의 길을 살아가려는 것. 단 한 번의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편지 교환, 그리고 억지로 재회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로 편지가 종결되는 것. 마치 일종의 정신치료같다는 느낌도 들고. 어떻게 보니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혼네와 다테마에로 구분될 정도로 자신의 속마음을 까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의 문화가,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적으로, 영화적으로 더 아름다운 작품을 낳게 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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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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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때문이었다.

 

첫 방송, 소리나는 책이라는 코너에서 이 책의 일부를 진행자 이동진이 읽었다. 정확한 날짜는 내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해당 방송을 들었던 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오전이었고, 햇빛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따뜻했던 날이었다. 장소의 특성상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는데, 내가 워낙 일찍 도착했던 탓인지 처음에는 사람이 없다가 점점 밀물이 차오르듯 사람이 차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방송 초반이라 진행자는 다소 들떠 있었고, 목 상태는 좋았고, 열정이 넘쳤으나 애써 차분하게 눌러가며 낭독을 하였고, 당시 나는 그 소설의 낭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지금 그 시기는 이제 나에게 과거가 되었다. 내가 그 팟캐스트를 처음 들은 것이 작년 초였기 때문에, 그 방송을 내가 들은 것도 작년 초였다. 뒤늦게 안 셈이다. 이후 힘들었던 시기, 그 팟캐스트 방송을 벗삼아 하루에 두 개, 세 개씩 들어가며, 해당 책들을 전부 도서관에서 빌려보며, 때로는 구매해가며,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은 기록해가며, 그 힘든 시기를 버텨냈다. 그리고 잠깐의 달콤함이 있었고, 이후 다시 힘든 순간이 다가왔다. 지금도 힘들고. 하지만 언젠가 이 시기도 지나갈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닐까?

 

당시는 너무 힘들어 그 시기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은... 그 시기가 그립다. 그때가 지금보다 덜 힘들었기 떄문이 아니다. 힘든 강도는 똑같지만, 이미 그 시기를 벗어난 나는 마음껏 그 시기를 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기를 바라보는 여유도 생겼기 떄문이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렇다면 지금을 추억하여 웃을 수 있으리라.

 

일본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이 바로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한다. 그리고 그 데뷔작으로 감독은 전세계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자신의 이름을 평단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감명깊게 본 나로서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어쩌면 그냥 아련한 환상의 빛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방송을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이 소설이 좋았지만, 막상 사서 읽을 떄는 그만한 감동이 들지는 않았기 떄문이다.

 

어쨋든 당시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이후 절판되었던 이 책은 팟캐스트 덕에 다시 출간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미야모토 테루의 다른 작품도 이어서 출판될 수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작품도 전부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과 미야모토 테루의 다른 소설도 전부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두 거장 모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이동진의 말이 뒤늦게 요즘 나를 잡고 있다.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 남겨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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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콜럼 토빈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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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영화 브루클린 때문이었다.

 

애매하게 비어 있는 시간. 날은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떨어질 것 같은데 비는 오지 않고,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나는 며칠째 지쳐 있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기분만큼은 한없이 부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춥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럴 때는 영화관이 딱이다. 진한 커피 한 잔 들고 들어가 두 시간 동안 캄캄한 곳에서 환한 스크린만 마주하는 느낌. 그 느낌이 그리웠다.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다. 보고 싶은 영화, 지친 내가 갈 수 있을 거리의 영화관, 그리고 이동 거리까지 고려했을 때,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을 다행히 찾아내었다. 그리고 늦지 않게 도착했다.

 

아일랜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습하고 추운 기후, 반항, 저항, 잡초, 쓸쓸함, 변방 등.

 

실제로 가보지 못했지만, 그러기에 마음껏 내 머리속으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었다.

 

 

영화 보는 내내 행복했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 머리는 이미지가 꽉 점령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브루클린을 쳐보니, 원작, 소설 등등이 관련 검색어로 뜬다. 바로 구매했다. 이 이미지를 그대로 내 머릿속에 좀 더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매번 그 영상을 떠올릴 수 있게.

 

여주인공 시얼샤 로넌은 실제로 아일랜드 출신이다. 시얼샤란 이름도 아일랜드 어로 자유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일랜드 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천재적인 배우가 수많은 상을 휩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여 아일랜드 이주민 연기를 하는 모습은 반짝반짝 빛난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1950년대의 아일랜드는 지금의 한국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향수병에 시달리는 모습에 공감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치이고, 처음에는 재미있게 느껴졌던 일들도 어느새 일상이 되어가면서 버겁고 벗어던지고 싶어지다가, 반짝하고 날아든 우연과도 같은 인연에 활기가 돌고, 다시 그 인연조차 고민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 어쩌면 이렇게도 지금의 나의 상황과 비슷할까. 실제 완성도도 높은 영화이고 평단과 관객 양쪽에서 인정 받고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나는 그 이상으로 이 영화를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 여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내 상황 떄문이겠지. 수십 년 전, 다른 민족,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공감이 갈 줄이야.

 

"에일리스는 이탈리아계 배관공 청년 토니(에머리 코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가까스로 생활이 안정될 무렵 가족에게 닥친 사건으로-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가 그랬듯- 고향을 방문하게 되고 거기서 제2의 구애자 짐(돔놀 글리슨)을 만난다. 동향 청년 짐은 흠잡을 데 없지만, 토니는 특별하다. 이탈리아 남자에 대한 선입견을 핸디캡으로 짊어진 이 남성은 에일리스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매너로 점점 나를 안심시켰고, 안도는 감동으로 비약했다. 급기야 에일리스가 짐과 토니 사이에서 흔들리는 대목에 이르자 나는, 실로 오랜만에 한쪽을 편들며 영화 속 삼각관계를 주시했다. 외양부터 환경까지 에일리스와 소위 ‘그림’이 되는 쪽은 짐이다. 토니는 라틴계의 판이한 외모에, 에일리스보다 키가 작으며, 현재 가진 것도 많지 않다. 그러나 토니에겐 연인으로서 반려자로서 황금 같은 미덕이 있다. 이 남자는 결코 사랑을 빙자해 에일리스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야간대학이 끝나길 기다려 에일리스를 만난 토니가 “집에 가서 공부하고 자야 하는 거 잘 알아요. 그냥 집까지 같이 가기만 해요”라고 청하는 장면에서 많은 여성 관객이 감격했으리라. 토니는 에일리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노력하고 그녀의 공부와 일에 관한 수다를 진심으로 재미있게 듣는다. 토니는 에일리스한테 뭐가 유익한지 더 잘 안다는 오만을 부리지 않는다. 또한 한점의 열등감도 없이 육체노동의 보람을 즐기고 인생을 배우자와 공조해 완성하려고 한다. 원작 소설은 이 남자에게 거슬리는 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에일리스가 느끼는 두려움(‘사실일 리가 없어!’)을 묘사하는데 나도 백배 공감하고 말았다. 토니는 에일리스를 변화시켰고 짐은 토니가 변화시킨 에일리스에게 반한 셈이다. 짐에게 잠시 흔들린 에일리스에게 나는 거의 화가 났으나 오래가진 않았다. 시얼샤 로넌의 연기 덕이다. 악의적인 고발로 말미암아, 마침내 가야할 곳을 깨달은 에일리스의 눈은 분노로 파랗게 빛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무엇보다 본인의 오판을 향한다."

 

시네 21 김혜리 기자가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대해서 쓴 글 중 일부이다. 영화 속 에일리스에도, 그 에일리스에 공감한 김혜리 기자의 글에도 미친듯이 공감이 간다. 토니를 보면서, 토니와 비슷한 내 옆의 인연을 떠올렸고, 결말에 안도했고, 다시 한 번 감사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이 모든 느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의 결말처럼, 나 또한 지금을 떠올리며 훗날 웃을 때가 오리라. 에일리스에게 2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나도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소설과 영화의 마지막처럼 환하게 웃을 날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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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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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요즘 나를 꽉 잡고 있는 화두이다.

 

정말 어린 시절에는 나의 정체성을 '여자'라는 단어에 꾸겨 넣는 것을 거부했었는데, 나이가 먹어갈수록 나의 수많은 특성 중 '여성'을 긍정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로 발전하기까지.

 

나 또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었다. 데이지만큼은 아니지만, 아니 데이지와는 다른 나만의 이야기들.

 

 

딸,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아들, 남편, 아빠, 사위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 확연히 다르다. 단순히 빨강과 파랑, 녹색과 노랑 처럼 대비되는 느낌이 아니라, 명도와 채도가 완전히 다르다.

 

어린 시절 딸이면서도 아들과 구분점을 찾지 못했던 나는, 이제 서서히 타협을 한다. 세상이 여자를 보는 기준에 타협한다기보다는, 내 안의 본질적인 여성을 인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주인공 데이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딸, 아내, 엄마의 역할을 감내했다는 것은 같지만, 10년도 되지 않는 시기에 지역 신문에 칼럼을 썼던 데이지에 비해, 저자는 대학 총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소설과는 상관없이, 책의 주인공보다 저자에 대한 관심이 커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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