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보게 되면 제목 때문에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의 이름은 앨리시어. 물론 책을 읽어나가면서 왜 앨리스라는 이름을 가져왔는지, 우리가 앨리스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이 책에서 변주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 속에서 작가가 깔아놓은 이야기 말고도, 나름의 이야기로 유추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은 떡밥이다. 주인공은 전혀 야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앨리시어라는 한 여장 부랑자로부터 시작된다. 왜 여자일까, 왜 부랑자일까,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이 소설은 작가가 오사카 여행 당시 한신 백화점 근처에서 여자 부랑자를 보고 나서 구상하였다고 한다. 작가라면 그 기괴한 모습을 보면 당연히 저 사람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했을 것이고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었을 봄직하다.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 작가는 가정폭력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왔다.

 

이 책의 주된 소재는 가정 폭력이다. 특이한 것은, 가정 폭력의 주체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정 폭력의 형태는 때리는 아버지, 매맞는 어머니 혹은 묵인하는 어머니일 것이다. 여기에서 앨리시어와 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어머니이며, 아버지는 이를 묵인한다.

 

책은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은데, 그렇다고 가볍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리듬감이 있고, 특히나 대화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삽화들(아버지가 예전에 머슴으로 모셨던, 지금은 음식점을 하고 있는 옛 주인집에 가는 장면 등), 그리고 앨리시어가 동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네꼬와 여우의 이야기 등)이 그 부분만 따로 뗴어 놓고 보아도 재미있다.

 

다만, 이야기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문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앨리시어는 자신이 어머니보다 커지고, 힘도 세졌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머니에게 대들거나 폭력을 중지시키기 위한 어떤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전처 자식들과는 달리, 집을 떠나 버리겠다는 의지도 없으며, 여러가지 시도는 번번히 중간에 스러지고 만다. 동생의 죽음 이후, 어머니의 슬픔이 진짜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큰 뜻으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어머니마저도 끌어안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를 긍정까지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시 어린 시절에 외조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했던 어머니의 일화를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 마지막에 가서야, 동생이 죽고 나서야, 앨리시어는 집을 떠나는데, 그 모습 또한 이리저리 떠돌며 여장을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아도 단순히 현실의 도피이며, 가정폭력의 대물림에서 의지적으로 그 고리를 끊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에, 소설의 마지막은 희망이 아니라, 어쩌면 앨리시어 또한 그 대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황정은의 소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