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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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나 나쁜 일은 한꺼번에 밀물처럼 몰려온다. 여기 그런 집안의 좋지 않은 일들이 흥미를 자아내며 빨려 들게 만든다. 여자 친구인 지에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고 아버지는 췌장암 판명이 났으며 어머니는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다.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정말 밀물도 대단한 밀물이 밀려 들어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샤기 헤드'라는 카페를 하는 료스케는 아버지가 잘 계신가 하고는 집에 들렀다. 얼마전까지 3대가 함께 살던 집인데 이젠 쓸쓸하기만 하다.어머니의 부재로 먼지만 쌓여 있는 듯 하다. 갑자기 들러서인지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아버지를 찾던 중에 아버지 서재옷장이 약간 열려 있는 것을 발견,우연히 보게 된 상자에서 이상한 물건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것으로 보이는 백과 그속에 있는 '머리카락'. 젊을 때의 어머니 머리카락인가? 이상한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은 머리카락을 본 순간,자신이 네살쯤에 폐렴에 걸려 병원에 오랜기간 동안 입원했다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바뀐 듯 했다.하지만 식구들은 극구부인,어머니가 맞다는 것이다.자신이 아파서 그랬을까.

 

다시 상자에 백과 머리카락을 넣으려다 상자 밑에 누런 봉투를 보게 되었는데 노트 4권이 들어 있다. 무얼까 하고 펼쳐 보았는데 누군가 쓴 수기같기도 하면서 소설 같기도 한 정말 엄청난 '비밀'이 쓰여 있었다. '살인의 일기'라고 할까. 어려서 자신이 가담하게 되었던 그리고 '죽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느낀 희열에 대한 정말 엄청한 이야기. 누굴까? 아버지,혹은 어머니 누가 쓴 것일까? 일기일까 소설일까? 노트를 보기 전과 후의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것이 진짜 이야기인지 아니면 소설인지 꼭 밝혀내야한다.자신이 느꼈던 '가짜 어머니'에 대한 것 또한 알고 싶다. 자신 혼자서는 아버지를 따돌릴 수 없고 동생 요헤이의 도움이 필요할 듯 하여 이공계생인 동생의 힘과 머리를 빌려 보기로 한다. 동생에게 자신이 읽은 이야기를 해주자 시큰둥하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인지.

 

이야기는 '비밀 일기'와 같은 기록과 료스케 가족의 현재의 이야기가 병행하여 시작된다. 어머니는 왜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며 그리고 비밀 기록을 읽고 난 후 할아버지의 죽음에 또한 의문이 들었다.누군가 죽인것은 아닐까. 그리고 혼자되신 외할머니의 치매로 가끔 헛소리를 하듯 어머니를 보고 다른 이름을 부르던 것 하며 어머니는 극구부인하듯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을 외쳐 이야기 하던 것이며 왜 일까? 뭔가 큰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네살 때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갑자기 자신들이 살던 아파트에 불이 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고 분명 어머니가 바뀌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어머니'라고 우겼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그리고 동생이 태어나고.하지만 기록으로 본다면 분명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야기다. 살인과 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자신은 살인자의 아들이란 말인가.

 

숨겨진 가족의 비밀,진실은 무엇일까? 이 기록들을 정말 모두 다 믿어야 할까.지금까지 아무 이상없이 살아왔고 또 그렇게 믿었던 분들이 무언가 정말 대단한 비밀을 자신들에게 숨기고 살아왔다는 것인가.그렇다면 자신의 애인이었던 '지에'는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도무지 카페일에 전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읽던 비밀 기록을 중간에서 멈출 수도 없다.진실을 알려면 비밀 기록을 다 읽어야 한다. 읽을수록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확고해진다. 그렇다면 자신의 부모님들은 왜 지금까지 '비밀'에 부친 것인지.그렇게 비밀 기록과 함께 현재의 상황은 같은 속도로 평행선의 레일을 달려 간다.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는 속도로 함께 달려가는 속에서 아버지는 점점 초췌해지고 외할머니 또한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카페의 직원인 호소야씨는 지에를 찾으러 다녔다고 한다,왜 그녀를 찾으러 다녔을까.

 

비밀 기록 속에도 그렇고 현재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살인자와 간접살인자 그리고 살인자의 피를 물려 받은 사람들의 심리는 묘하게 엉켜서 점점 큰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왠지 모르게 '인간애'를 느끼게 하는 따듯함이 숨어 있다. 자신도 억제하지 못하는 '살인의 충동' 아니 죽어가는 그 순간을 묘하게 즐기는,그렇다면 '병이 아닌가. '어린 시절의 의사는 분명 '요리도코로(안식처)'라고 했으리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감각적인 안식처' 또는 '인식의 안식처' 혹은 '마음의 안식처' 라는 게 이 아이에게는 없다고.' 자신의 비틀린 삶을 기록해 놓고 '죽음'을 선택한 한사람,누굴까. 마음의 안식처를 가지지 못하고 '살인' 에 대한 충동도 억제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 누굴까.그렇다면 자신들의 가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현재의 가족이라고 하는 이 울타리를 이어갈 수 있을까.자신과 동생 요헤이의 관계는.

 

한사람의 고백성서와 같은 비밀 기록에 의해 가족의 비밀이 폭로되고 가족이 와해 직전에 처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무너뜨리기 보다는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 모든 위기상황을 탈피해 나간다. 모두가 비상구를 찾아 저마다 가족을 지켜려 한다. 두렵고 슬프고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슬픔이 정말 어느새 모두의 행복으로 변해간다. 비밀 기록이라는 파도로 인해 료스케의 가족이 출렁출렁 위기를 맞을 줄 알았지만 그들은 한 배를 타고 풍랑을 이겨내며 살인과 과거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또 그렇게 현재를 이겨나간다. 이제 더이상 과거의 슬픔에서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늦은 나이에 글을 쓰게 되었고 그녀의 화려한 경력이 또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누마타',늦깎이 작가로 이런 작품을 내 놓았으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다. 그녀의 나이와 경력 때문이었을까 중년 여인의 심리묘사 또한 잘 표현해냈다.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우선 순위로 읽어보게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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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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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서 만나 3개월 동안 함께 여행하고 방을 나누어 썼던 핀란드인 친구가,헤어지던 날 자신의 머리카락 끝을 조금 잘라 속이 비어 있는 목걸이에 넣어 제 목에 걸어준 적이 있습니다. '너랑 보낸 세 달 동안의 추억이 이 속에 들어 있어. 그 시간들은 이제 어딜 가든 함께할 거야.' 그녀의 말이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집시이기를 원하는 그녀,13년째 여행을 하며 얻은 모든 것들이 녹아 있듯 소설 속에는 그녀가 경험한 것들이 다양하게 녹아 있는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듯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이야기가 이어지기에 처음엔 조금 힘들게 시작을 했지만 읽다보니 그녀만의 매력에 슬슬 녹아나기 시작이다.

 

치유,현대인들은 누구가 마음의 병,영혼의 병을 한가지씩은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그것을 잘 끄집야 내어 치료를 하면 행복한 삶을 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병에 갇혀 지독하게 앓는 경우도 종종 있다. 치유,힐링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준다던지 그의 이야기 속의 상대가 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할 수 있는가 하면 어쩌면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또 다른 나로 거듭나듯 그렇게 변신을 꾀하며 과거 속의 자신으로 돌아가던가 아님 과거를 벗어난 미래로의 나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자르면 난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시원하고 깔끔하고 무언가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 듯한 영혼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어 난 스스로 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선택,몇 년 째 혼자서 자르고 있다. 칼 끝에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들의 아우성처럼 들리는 '사각사각'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조금 길다 싶으면 얼른 머리카락을 잘르고 싶어 안달을 한다.

 

'우리는 스스로 영혼을 하루에 0.35밀리미터씩 밖으로 밀어내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야. 영혼에 새겨진 모든 걸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슬픔이든,악몽이든,기쁨이나 추억 같은 것들도 너무 무거워지면 인간을 짓눌러버리거든. 어쩔 수 없이 하루에 그만큼씩은 자신을 머리카락에 적셔서 밀어내야 해.' 하루에 머리카락이 0.35밀리미터씩 자라나보다. 류는 유명하지도 않고 번화가도 아닌 곳에서 미용실을 하는 엄마가 컷트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진정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진실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듯 하여 컷트를 하는 엄마를 지켜 보며 자신도 모르게 컷트를 할 수 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미용실에서 하릴없이 동네 길고양들처럼 방치되어 있다가 미용실 옆에 있는 극단 달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존재감없이 지내게 되다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류,그렇게 하여 그는 뮤토가 되었다. '훌륭해. 넌 지금 가장 어려운 플레이를 해낸 거야. 제일 높은 허들을 맨 처음 뛰어넘은 거지. 내 눈이 정확했어. 넌 타고난 뮤토야.' 미나 선생님의 말처럼 류는 '타고난 뮤토'일까.

 

그가 자주 찾는 '카레'가게의 카레나 네코마마나 남편을 기다리는 리에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한가지씩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그것이 사랑에서 오는 두려움이나 집착 두려움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것들이라고 해도 뮤토인 그들은 미나 선생님이 정해 준 룰에 의해 치유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힐링을 해준다. 각가의 살아가는 모양이 다 다른 사람들은 영혼에 병 또한 다 다르다. 하지만 뮤토들은 자신들이 해야할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하여 정해진 시간동안 정해진 룰에 의해 뮤토로 길들여지지만 어느 날 문든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다. 이런 생활의 자신이 낯설다. 카레는 왜 맛없는 카레를 만들어야 하고 리에는 왜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려야 하는가. 자신은 언제까지 타인의 뮤토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 앞에 있는 거울을 치우듯 지금까지 자신을 보여주던 모든 것을 다 벗어 버리고 7년전 자신으로 돌아가 이젠 자신을 치유하려 하는 류, '우리 모두가 누군가와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게 되는 순간에,삶은 이어진다.' 카레의 맛 없는 카레도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리에의 긴 기다림도 모두 하릴없는 일들인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기다림에 지쳐가는 리에를 바라보던 카레는 리에의 남편이 되어 그들은 떠나갔고 류도 오랜 시간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 가는 레일 위에서 이젠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

 

타인의 병을 치유하듯 헤어 플레이를 해 주던 그는 네코마마에게서 이젠 자신의 삶을 치유받듯 머리카락을 자르게 내버려 둔다. 망망대해를 거울 삶아 그렇게 자신의 긴 시간동안 방치하듯 내버려 두었던 머리카락을,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에 그는 머리카락을 잘라 0.35밀리미터씩 밖으로 삐져 나왔던 영혼들과 작별을 고하면서 새로운 영혼과 만날 희망으로 채운다. '연극 속의 연극, 또 그 연극 속의 연극. 공연은 웅덩이처럼 자꾸만 더 깊은 곳의 무대로 나를 이끌었다. 거울 속의 거울.' 삶은 어쩌면 '연극 속의 연극이거나 거울 속의 거울' 처럼 마법처럼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나 그리고 또 나와 타인으로 연결되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나간다. 혼자서는 결코 빛날 수도 없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도 없다. '달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상대역이 없으면 우린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어. 누군가가 되쏘아주어야 우리는 비로수 '그것'이 되지.'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상대가 있어야 나도 스스로 빛날 수 있는 것이 삶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마법처럼 얼키고 설키어 '거울 속의 거울'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치유자가 되기도 하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 치유를 받아야 하는 삶,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읽었다. 괜히 소설을 읽고나니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자르고 싶은 생각, 나 뿐일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날이 덥다.이젠 거울 속에서 나와야 할 듯 하다.첫번째 소설이라는 작가,그녀의 긴 여행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 듯 하다. 이 작품으로 또 한명의 작가를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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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래 문학동네 동시집 22
권정생 지음, 김동수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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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까지 예쁜 동시집 한 권에 싣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한 가지 소망을 허락해 주시겠지요.' 권정생 선생이 일본에 있는 그의 그의 형수에게 보낸 편지의 한 귀절이다.죽기 전까지 예쁜 동시집 한 권에 싣고 싶다는 희망, 그렇게 하여 자신이 직접 정말 세상에 단 한 권 밖에 없는 동시집을 만들었다는 권정생 선생의 동시들이 세상 밖으로 드디어 나왔다. 이 책은 <동시 삼베 치마>라는 전작의 98편의 동시들에서 42편을 골라내어 좀더 고어를 현대어로 바꾸어 아이들이며 그외 사람들이 읽는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덩시 삼베 치마>가 엄마겪이라면 새끼 격으로 나오게 된 책이란다. <동시 삼베 치마>를 무척 읽고 싶었는데 기회를 잃어서 몹시 서운하던참에 이런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가 내게 와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받자마자 읽었던 정말 가슴이 따듯해지고 동심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해맑은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권정생 선생은 살아서의 삶 또한 세간에 이야기를 남겼지만 가시고 난 후에도 모두에게 교훈이 될 만한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남겨 주고 가셨다.비록 당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가셨다 하지만 누구보다 값진 '씨앗'을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 하나 심어 놓지 않았을까.누구보다 청빈했던 그의 삶, 그리고 나눔을 누구보다 더 많이 실천하신 삶이 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는데 이 책에서 만나는 동시 속에도 그의 맑고 올곧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늘 희망을 잃지 않고 '평생의 소원'을 간직하며 살았기에 이렇게 값진 동시를 남기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금의 아이들이 읽으면 이해를 못할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지금 시대와는 정말 많이 다른 그런 분위기와 이야기들이 동시 속에 있지만 그 시대를 거쳐왔거나 그 시대를 간접적이든 부모세대들에게 전해 들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세대들에게는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킬 이야기들이 가슴을 따듯하게 해 준다.우물... 골목길에 우물이/혼자 있다// 엄마가 퍼 간다/할매가 퍼 간다// 순이가 퍼 간다/돌이가 퍼 간다// 우물은 혼자서/ 물만 만든다// 엄마도 모르게/할매도 모르게// 순이도 모르게/돌이도 모르게// 우물은 밤새도록/물만 만든다// 내가 살던 어릴적 동네에도 동네 가운데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로 동네 사람들이 다 먹고 살았다.아침이면 큰 함지박을 이고 그곳에 가는게 일이었고 그곳에서는 비밀이 없다. 모두가 모여 쌀도 씻고 빨래도 하고 손과 발을 씻기도 하고 머리도 감고 그렇게 때론 동네 놀이터로 동네 사랑방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면서 동네의 역사와 함께 했던 우물, 그러나 동네에 상수도 놓이고 그 우물은 더이상 동네 놀이터도 사랑방과 같은 존재도 될 수 없었고 그저 농경수로 쓰이가 그 소임을 다하고 없어지고 말았다. 추억 속에는 그런 우물이 있다.그래서일까 가슴에 와 닿는 '우물'이란 동시가 반갑다. 따듯하다. 참 정겹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삼베치마... 왕골논 안쪽 집/새댁치마/노랑 곱슬 삼베 치마/새댁이 물동이 이고/너무 바쁘게 바쁘게/가기 때문에/삭삭삭삭 소리가 나요// 찡기네 할매 치마/올 굵은 무삼베 치마/찡기가 업힌 채 오줌을 싸도/금방 말라 버려요/홰나무 그늘에/잠깐 앉았다 일어나면/무릎까지 말려 올라가/바닥 뚫린/ 광주리 같아요// 재밌다. 치마가 말려 올라가는 그것까지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려냈다. 그리고 마지막엔 '바닥이 뚫린 광주리 같아요' 뒤집어 엎어 놓은 광주리,표현이 재밌으면서도 그 시대를 나타내는 말들이 참 좋다. 삼베치마에서 남 모르게 연륜이 느껴진다. 새댁의 치마는 '삭삭삭삭' 이지만 할매의 삼베치마는 손자가 오줌을 싸서 무언가 뻣뻣하여 바닥으로 구멍이 뚫린 광주리 같다는,나이에서 오는 연륜도 느껴지면서 치마가 같는 연륜도 느껴진다.

 

감자떡... 숙이 아빠도 감자떡 먹고 컸고/숙이 엄마도 감자떡 먹고 컸고// 그래서 숙이 엄마랑/숙이 아빠 얼굴이/감자처럼 둥굴둥굴 닮았어요// 숙이랑,석아랑,인구도/감자떡을 좋아하지요.// 그래서 모두 감자처럼 둥굴둥굴 예뻐요// 강원도를 '감자바위'라고 하는데 그러면 감자를 많이 먹는 강원도 사람들을 그린 것일까.그렇지는 않다. 그때는 쌀밥보다 우리는 '감자나 고구마'를 주식처럼 더 먹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었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감자도 둥글고 우리네 얼굴도 둥굴둥굴,그래서 더 이쁘고 정감이 가는 그런 얼굴이다. 신토불이도 느껴지면서 왠지 모르게 순박하면서 정이 뚝뚝 묻어 날것만 같은 얼굴들이며 동시다.

 

방물장수 할머니... 방물장수 할머니가/엉덩이 빼딱빼닥 오신다// 요롱 달린/사랍짝집 들여다보고/"동백기름 사이소?"/"안 사니덩"//...... 해 질 녁에/동리 어구 길에 선/내 눈이 뗑굴?// 저만치 가시는 할매 등어리에/묵직한 곡식 자루가 얹혀// 빼딱빼딱/가신다// 방물장수 할머니가 빼딱빼닥 오시어서는 이것저것 사라고 동리를 돌아 다니는데 모드가 '안 사니덩' 한다.걱정인 것이다. 허리도 구부정인데 헛걸음 한것은 아닌가 하고 할머니를 어느새 걱정하고 있다.그런데 해 질 녁 할머니를 보니 등에 방물보따리보다 무거움직한 '곡식 자루'가 얹혀 있는 것이다.얼마나 다행인가.무언가 팔았던가 외상을 놓았던 곳에서 값을 받으셨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헛걸음을 안하고 돌아가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빼딱빼닥 걷는 할머니의 걸음마져 정겹게 다가온다.

 

동시 속에는 정겨운 풍경도 정경운 말들도 많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들이 있는가 하면 풀이를 해주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따듯하고 읽는 것만으로 행복을 안겨준다. 그가 동화가 아닌 동시로 먼저 세상에 빛을 보았지만 동화나 그외 이야기는 많이 알려졌지만 동시는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그의 이름으로 된 '동시집'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참 기분 좋은 일인듯 하다. 정겨운 그림들도 좋고 동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따듯해진다. 동시를 다 읽고 손에서 책을 놓으려고 하면 먼 추억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훈훈해진다. 먼 기억속의 동네 친구를 만난다던가 추억의 물건이나 그외 풍경을 만난다던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성에 흠집을 낸다. 그리곤 묻는다.지금 어떠세요. 행복하세요.당신은 그처럼 평생 이루고 싶다는 희망이나 소원을 가지고 있나요? 자신의 평생의 희망이어서일까 동시 속에는 불행보다는 '행복과 희망'이 그리고 따듯함이 넘쳐 나면서 모두가 함께 하는 밝음으로 빛난다. 정말 봄이 찾아와 메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발문에 있는 그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동시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는 어쩌면 모두에게 스스로가 '희망' 이 되고자 했던 이였는지도 모른다. 동시를 다 읽고 발문을 읽다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절박함 속에서도 빛나는 희망을 보았고 노랬했던 권정생, 봄과 같은 희망으로 꽃 피운 동시들이 한동안 오래도록 가슴에 여운을 남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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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야 꽃이다 - 내일을 행복하게 해주는 이야기, 개정판
김병규 지음, 황중환 그림 / 예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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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도 깔끔하고 부제로 '내일을 행복하게 해주는 이야기'라고 되어 있기도 하지만 동화작가로 활동을 하시는 분이기도 하고 '정호승 시인'의 추천평을 읽고나니 얼른 읽고 싶은 생각에 책을 받자마자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정말 한 편 한 편 아니 한 장 한 장 넘겨가는 사이 내 가슴이 시나브로 따듯해지면서 아궁이에 불을 지핀 아랫목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앉아서 동화책을 한 권 펴 들고 읽는 기분이 들었다. 함께 삽인된 그림 또한 참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정말 입소문을 마구마구 내고 싶어지게 하는 따듯한 이야기에 읽고 나서도 기분이 좋았다. 오래간만에 대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어린이만 동화를 읽을것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이런 동화도 많이 나와서 삭막하고 각박해져 가는 우리네 가슴을 좀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도란도란 이야기가 넘쳐나는 그런 세상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들어가기 전에 작가의 말에 보면 '나무는 여러 차례나 우리를 데우 준다고 합니다...... 또 있습니다. 바로 떨어진 꽃입니다. 떨어진 꽃은 추억이 아닙니다. 떨어진 꽃, 장작보다 더 센 불기운으로,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하는 깨우침이라는 땀을 넉넉히 흘릴 절도로 우리의 마음을 데워 줍니다. 그래서 떨어진 꽃이 아름답습니다.' 라는 말이 너무 좋아 옆지기에게 들어 보라며 큰소리로 이 대목을 읽어 주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이 대목을 특히나 한참 다시 공부하고 있는 힘든 큰딸에게 읽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아니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꽃은 떨어지면 생명이 다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는,정말 떨어져야 꽃이라는,떨어진 꽃이 더 아름답고 꽃이 떨어져야 열매도 맺는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본다.

 

억이, 함께 심었다고 하여 모두가 좋은 나무로 똑같게 크는 것은 아니다.저마다 크는 성장 속도가 다르고 재목이 다른 것이다. 여기 그런 한사람이 있다. 집안이 어려워 학교에는 근처도 못 올 뻔했지만 선생님은 그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신 것이다.그렇게 하여 6학년 나이에 3학년에도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선생님 눈에는 무척 크게 느껴졌을 아이, 그 아이가 성년이 되어 선생님과 함께 동창회를 하는 자리에 나타났다.선생님은 오래전 그때만 생각하시고 작다고,남보다 왜 그리 작냐고 물으셨지만 그는 지금은 누구보다도 더 튼튼하게 자라 재목이 되어 있다. '선생님의 배려인줄도 모르고...저는 그때 어린 마음에 시험도 별것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게 자신감이 되었지요.'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가며 배운 것이라고는 없는 그에게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테스트로 산수나 국어가 아니라 그가 늘 접했던 현실적인 문제를 내어 '100점'을 맞게 하여 당신이 가르치셨던 선생님, 눈높이를 달리 하여 하나 하나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밑거름을 주신 선생님과 제자 이야기가 목울대를 건드린다.그의 이름이 억이다.

 

양말 다섯 켤레, 우리 어린시절에는 정말 양말 한 켤레도 아깝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지금은 너무 흔하기도 하지만 그땐 구멍이 나면 다시 기워서 신고 몇 번은 헝겊을 덧대어 신기도 하고 겹쳐 신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맏누이는 동생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학교를 포기하고 집안일을 돕고 동생들만 학교를 다녔기에 누나는 늘 동생들 발을 씻겨주고 양말을 빨고 구멍난 양말을 기워주고 아침이면 모두가 하나씩 챙겨 신을 수 있게 해주었다.그러니 누나는 식구들 발만 보면 누구 발인지 금방 맞출 수 있었다.그런 어느날 동생이 셋째 형의 양말까지 그러니까 두개를 가져갔으니 겨우 하나씩 돌아가던 양말이 없던 형은 추운날에 맨발로 학교에 가고 동생은 용의검사 때문에 이쁜 형의 양말을 들고 갔다.그런데 그런 동생은 맨발의 형의 발이 생각나 공부를 마치자마자 형이 있는 중학교로 달려가 형에게 양말을 전해 주려다 운동장에서 넘어져 발을 적시고 만다.형은 추운줄도 모르고 수돗가에서 동생의 발을 닦고 자신의 교복 소매로 물기를 닦아 준다.양말이 젖었으니 그냥 가라고 하니 그제서 형의 양말이 생각난 동생은 형에게 양말을 신으라고 양말을 전해주지만 형은 동생에게 신고 가라고 형의 양말을 건네주고 형은 동생의 젖은 양말을 깨끗이 빨아서 신고 교실로 향한다. 그 후로 동생은 고운 양말을 고집한다. 형의 따듯한 마음을 간직하는 의미로.

 

백만원짜리 식사, 채송화라는 동화를 쓰는 친구에게 은행에게 근무하는 숫자밖에 모르는 정말 쩐쩐한 친구가 있었다.그 친구는 얼마나 돈계산이 빠르고 자신이 손해보는 것은 안하는지 채송화라는 친구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 친구가 짠돌이라는 것을 잘 안다.그런 친구가 채송화가 동화책을 냈다고 하니 밥을 산단다.그것도 기꺼이,그러니 비싼 밥을 한번 얻어 먹자고 벼르고 친구를 만났더니 그럼 그렇지 겨우 포장마차에서 3만원에 모든 것을 해결했다. 싼 소주에 간단한 안주,그렇게 하여 비싼 밥을 얻어 먹으려고 갔다가 채송화의 동화책을 아들에게 주려고 샀다며 사인을 해달라고 하니 사인값도 안되겠다고 투덜거리는 채송화,그런데 주문이 없던 그의 동화책이 어느 시골 동네에서 몇 권씩 소량의 주문이 들어 오는 것이다. 그러다 정말 가랑비에 옷 젖는것 아닐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동화작가는 어느 날 친구가 근무하는 은행 근처에 갔다가 은행에 들러 친구를 보고 가려다 그 친구를 기다리며 친구를 '관찰'하게 되는데 아니 이런, 그 친구가 자신의 동화책을 사서 고객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는 것이다. 채송화 친구를 보자 얼른 감추었지만 이미 그는 보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친구의 책을 구매를 하여 첫고객이라고 해도 오랜 고객이라고 해도 선물로 그의 책을 주고 있었으니... 그러다 정말 친구 덕분인가 가랑비에 옷이 젖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그의 책이 베스트샐러가 된 것이다. 친구를 위해 뒤에서 진심을 다해 응원한 친구, 비싼 밥보다 더한 값진 우정을,친구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밥맛, 노인정에서 노인들이 모여 서로가 자식들이 비싸거나 맛있는 것을 사주었다며 자랑을 한다.그런 자랑은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할 수가 없으니 어느 집에 금송아지가 있다고 해도 믿어야 할 이야기고 남보다 더 크게 부풀리기 위하여 없던 이야기도 지어내기도 하는 그런 속에서 조용히 있는 분이게 어느 분이 말을 건다.'이봐,샌님. 자넨 무슨 별난 음식 먹어 본 것 없어?' 그러자 그 샌님은 이야기를 해 나간다.세상에서 두번다시는 맛 볼 수 없는 밥맛에 대하여. 그가 선생님을 하던 시절, 집집마다 가정방문을 다녔는데 어느 친구가 자신의 집에만 가정방문을 하지 않았다며 어머니가 모시고 오라고 한단다.그야말로 산넘고 물건너 찾아간 다리밑에는 움막이 있고 그 움막으로 들어가니 병이 난 어머니가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얻어온 밥 중에서 그래도 제일 성한 것이라며 이것저것 묻은 '상한 밥'을 한그릇 내 놓는다. 첫 술에 시큼하면서도 역겨운 냄새가 낫지만 그는 그 밥을 맛있게 꾹꾹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며 다 먹어 치웠더니 온 몸에서는 땀이 다나고 어머니는 무척 좋아하신다.그리고 그렇게 하여 그 제자를 정성으로 가르치게 된다. 모두들 비싸거나 별난 음식인 세상에서 구경하기도 힘들거나 이름을 외기도 힘든 음식을 얘기했지만 그는 누구도 먹을 수 없던 '상한 밥'인 정말 '밥 맛' 났던 한그릇의 밥에 대한 그리고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친구가 지금도 선생님을 아니 노인정분들을 찾아와 늘 싸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친구라는 것. 나 어릴 때에도 가정방문이라는 것이 있었다.그 날은 정말 동네잔치를 하듯 이집저집에서 난리가 났다. 선생님이 오시면 무엇을 대접할지. 하지만 시골이고 이집저집 다니며 배부르게 드신 선생님 정작 우리집에 오셔서 시원한 물만 한대접 드시고 가셨다는. 진정한 스승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런 훈훈한 이야기였다.

 

복이아재, 예전에는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방을 데우는 그런 온돌이 대부분이었다.그런 시절에는 구들에 불이 잘 들어야 최고였다. 불이 잘드는 집에는 사람들도 많이 들끓었다.아랫목에 앉아 모두가 삶은 고구마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하던 그런 시절이 있다.그런 시절에 동네에 구들을 잘 뚫는 '복이아재'가 있었다. 그는 남의 집을 다니며 구들을 손보느라 자신의 집 구들을 손볼 시간도 없었다.그렇게 겨울이 오고 그의 집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왜 그런가 하고 동네사람들이 그의 집에 가보니 겨울준비를 해 놓지 않아 아궁이에 땔 나무가 없었던 것,그래서 어린 아들과 모두가 오돌오돌 떨고 있는 것이다.그것을 본 동네분들은 저마다 장작을 가져다 놓고 쌀도 가져다 놓고 그렇게 하여 복이아재는 겨울을 따듯하게 날 수 있었지만 세월은 흘러 아궁이가 보일러로 바뀌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하던 밥은 전기가 대신 해주니 복이아재는 동네에서 할 일이 없어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런 복이아재를 동네사람들은 잊지 않고 기억해 주었다. 복이아재가 이사를 가고 나서 뭐든 하면 '복이 아재 반도 안된다'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그만큼 복이아재는 구들에서는 장인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할머니는 손녀가 속담을 묻자 '복이 아재 반도 안된다'라는 말을 해준다. 할머니는 그렇게 복이아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 따듯한 이야기다. 정이 남아 있고 가슴이 마구마구 따듯해지는,정말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모두가 아랫목에 모여 앉아 복이아재 이야기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그런 훈훈함이 목울대를 '컥'하게 한다.

 

나의 친정아버지도 구들을 참 잘 놓으셨다.이 이야기를 읽다보니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복이아재처럼 동네 구들을 손봐주러 잘다니시곤 했는데 한 집 한 집 연탄보일러가 들어오고 다른 보일러로 바뀌며 아버지는 어느날 그런 말씀을 하셨다.'이 구들청소도 이 아비가 마지막일거다.니들은 이런것 기억하려나 모르겠다.' 그 말씀이 불현듯 생각났다.그날은 아버지가 기다란 철막대 끝에 지프라기뭉치를 달아 우리집 구들청소를 마지막으로 하던 날이었다. 그 구들은 아버지가 손수 하나 하나 박석을 놓아 깔은 구들이었다. 그 구들을 놓을 때 난 그 구들에 들어가 놀기도 하고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또한 싸리나무로 채반을 만들거나 짚을 엮어 새끼를 꼬고 그것으로 멍석을 만들면서도 늘 그 말씀을 하셨다.'이것이 마지막일거다.아버지 없으면 누가 이런것 만들겠냐.쓰지도 않을텐데..'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물건들은 헛간에 있거나 지금도 시골집 어디엔가 분명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그 물건을 찾는 일은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도 지금은 내 곁에 없다. 먼 기억속의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이야기 정말 읽으며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들게 하는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들이 정말 한 편의 가슴 따듯한 동화를 읽는 것처럼 읽는 그 순간에 불에 확 데인것처럼 가슴이 따듯해지고 목울대가 컥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삭막해지고 '정'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스피드한 세상에서 아날로그적인 이야기들이 하나 둘 별이 되어 가슴에 콕 콕 박혀 밝게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일찍 뜨는 별도 있고,늦게 뜨는 별도 있지.공부도 마찬가지란다. 일찍 깨치는 사람도 있고,좀 늦는 사람도 있는 법이야. 종지야, 걱정할 것 없어.' 누구보다 '사랑'이 가득하고 사랑을 알았던 종지에게 할머니가 하는 따듯한 이야기. 꼭 '옛날옛날에..'로 시작을 해야할 것만 같은 훈훈한 이야기들이 옛날옛날에가 아니라 지금도 이렇게 훈훈한 이야기들이 세상을 데워주고 있음을 읽고나면 정말 '내일이 행복할 것'만 같은 이야기들을 단비처럼 지금 만났다는 것이 행운이다. 꽃이 떨어져야 결실을 맺을 수 있듯이 누군가의 희생이 아름답고 따듯한 사랑과 행복을 가져온 이야기들,내 영혼을 정말 따듯하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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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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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첫사랑이란 단어의 그 느낌만으로도 괜히 설레이고 무언가 이야기가 많이 쏟아져 나올것만 같은,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나 가슴 아픈 사연들 한가지는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오래전에 내가 소녀적에 읽은 책이고 한참 감성이 달달하던 사춘기 때 또 한번 읽으면서도 역시나 맘이 아팠던 소설이었는데 살다보니 잊고 있었다. 사랑타령을 할 나이도 아니고 살다보니 사랑보다 어쩌면 더 필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기에 '첫사랑'을 잊고 살았나보다.아니면 첫사랑에 데인 상처가 아물어 이젠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먼 기억속의 안개와도 같은 그 속을 다시 살펴볼 여력을 갖지 못했던 것일까. 첫사랑의 그 감정은 많이 퇴색해 버렸고 첫사랑의 달달함 보다는 세속적이고 찌든 때와 같은 밋밋한 나이기에 한번 더 찾아 읽고 싶었던 책이다.

 

겉표지의 숙녀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펭클은 만나면 겉표지의 매력에 빠진다.이 책 또한 그랬다. 그녀가 소설속의 그녀처럼 감정이입되어 책을 읽다가 표지의 그녀를 몇 번은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의 첫사랑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평범하다고,소설속이나 영화와 같은 사랑이 찾아오길 고대한다. '평범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전혀 평범하지 않다'라는 것은 보다 더 강조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블라디미르의 첫사랑은 어떠했다는 것일까.작가의 자전적인 소설,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지난 시절을 되돌아 볼 때 비슷한 점이 많이 녹아난 소설 '첫사랑'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에 독자를 더 설레이게 만든다.

 

사랑은 하는 순간에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오로지 사랑하는 사람과 나 자신이 속한 그 공간과 시간만 보인다. 모든 것은 둘에게로 통하듯 그렇게 성냥에 불이 붙는 순간 세상이 밝게 빛나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나듯 첫사랑 또한 그런 것 아닐까.그리고 그 불에 데인 듯한 상처는 영원히 지울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상흔이 되어 발목을 잡고 오래도록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고 다시 밀려왔다 사라지는 그 감정.볼테마르는 그녀를 보는 순간에 불에 데이는 것처럼 가슴에 그녀를 각인시키고 말았다.첫눈에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제 열 여섯,어지보면 소년의 티를 벗지 못했기도 하고 이제 막 청년으로 성장하는 소년이라고 할 수 있는 볼테마르에게 그들의 집 한 켠에 세를 들어온 자세키나 공작부인의 딸인 지나이다는 그런 존재였다. 공부를 해야하지만 그녀가 이사 온 뒤로 그녀 곁에 붙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떤 자유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볼테미르, 이제부터 그의 세계는 그녀로 정해졌다.

 

자신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열 살 연상이다. 어머니는 자세키나 공작부인과 그녀의 딸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 드나드는 많은 남자들 사이에 끼여 그녀의 치마폭에서 놀아난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자신의 남동생과 같은 소년취급을 하고 여왕의 시동쯤으로 여긴다. 그래도 그는 좋았다. 그의 세계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밤이고 낮이고 그녀를 향해 열려 있는 그의 모든 감각,그런데 그녀가 어느 순간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향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상대가 된 남자가 누굴까? 그녀의 집에 드나드는 남자들 중 한명일까. 그는 그녀가 운운한 밤에 분수대의 남자를 떠올리며 상대가 누군지 지켜보다가 우연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보게 된다.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부족한 듯 하지만 자신에게는 존경의 대상이며 신화와 같은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집에 드나드는 남자들과 그에게는 여왕과 같은 존재이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녀를 싫어하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설마 무슨 일일까,늦은 시간에 정원에서.

 

그렇게 그의 세상은 조금씩 무너져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와 여왕처럼 여기고 있는 지나이다,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감정은 내 몸 곳곳에 달콤한 고통으로 남았고, 결국 환희에 차서 뛰고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해소되었다. 분명 나는 아직 어린애였다.' 신화와 같은 인물인 아버지 앞에서건 여왕과 같은 지나이다 앞에서건 그는 아직 '어린애'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뒤를 쫒고 우연히 아버지와 함께 말을 타고 나갔다가 지나이다와 아버지가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아버지와 그녀의 사랑을 목격하고는 자신은 정말 어린애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을 한다. 아픈만큼 성숙해 지는 것이다. 아픈 사랑의 상처를 이겨내고 공부를 하여 점점 그들의 사랑에서 멀어져 가고 지나이다 또한 그녀의 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게 되고는 한번은 만나야지 했지만 그녀를 만나려고 하던 순간, 아이를 낳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그녀, 그에겐 첫사랑의 모두 고통이고 아픔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겉으로는 원만한 사이처럼 보여도 그 속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여자라기 보다는 대장부와 같았고 더구나 열 살이나 연상이었던 어머니 앞에서 근엄하고 겉모습을 보면 누구나 반할 정도로 각이 딱 잡힌,그리고 누구도 길들이지 못하는 야생마를 능숙하게 다루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어머니 보다는 어쩌면 지나이다에게 더 불타는 사랑을 가졌나보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목격하고 자신의 전부이며 사랑이라고 느꼈던 소년은 자신은 '어린애'에 불과함을 느낀다.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인을 놓고 줄다리기를 할까. 그러니 지나이다가 그를 '여왕의 시동으로 임명'하지 않았을까. 그가 그녀를 향해 있음을 알았다면 빨리 그 불길을 잡아 주었어야 하는데 그녀 또한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어 자신을 다스리는 것 또한 문제였는데 볼테미르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지만 그 끝이 결코 행복하지 않아 볼테미르에겐 더욱 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첫사랑이 되었다.그러나 사람이란 언젠가는 한번 가야만 하는 길,거리의 노파의 죽음을 보면서 초연하게 모든 것을 떨쳐내듯 이제는 성숙해졌다. 첫사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월의 빛바램을 볼 수 있다.미성숙한 첫사랑의 상흔을 아름답고도 향기로우면서도 애틋하고 씁쓸하게 그녀낸 작품을 읽으면서 첫사랑, 그 오랜 기억을 잠깐 떠올려 본다. 무언가 부족하고 덜 여물었기에 더욱 애틋하고 설레이고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첫사랑, 그 사랑을 안고 모두들 안녕하고 있는 것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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