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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박민규 작가는 내게는 처음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구매해 놓고 읽지 않아 뒤로 쳐져 있어 잊기전에 읽어야지 해야한 것이 벌써 한 해가 다 가고 있다.그러다 만나게 된 그의 단편소설집 <더블>은 '동전의 양면을 보듯 작가의 깊은 속 헤엄쳐가기' 라고 해야 하나 좀더 작가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작품인듯 하다. 단편소설은 장편과는 다르게 그 작가의 글쓰기 저력을 볼 수 있어 에세이와 더불어 많이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장편보다 어찌보면 글쓰기 저력 뿐만이 아니라 그 속내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그런면에서 그를 장편이 아닌 단편으로 먼저 만난 것을 어쩌면 행운이라 여긴다.
더블 A에서 처음 만난 <근처>는 40세 말기암 환자가 고향으로 내려가 자신의 지난날과 그리고 친구들과 마주치면서 자신은 삶이 혹은 생이 절박한데 비해 친구들은 그의 생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고 남에겐 자신의 삶이 다르게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어려움에 처한것을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타인은 내 어려움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현대인의 삶은 성냥갑처럼 네모로 나뉘어진 아파트의 현관문만 닫으면 타인과 단절이다. 그런 삶에서 자신이 비로소 절실할때만 타인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있다. 어린시절 동심을 간직한 삶도 세월의 때가 묻어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현재의 모습에서 어린시절의 그사람을 읽는 다는 것은 어렵다.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면 겨우 때묻지 않은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결국 삶은 홀로 가는 길이다. '누군가 무단횡단을 하고, 멈칫 중앙선에 서 있던 낯선 얼굴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나도 사라진다, 사라질 것이다.정말 다 온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정말 다 왔다니까, 아직 모북의 푯말을 보지도 못했는데 아픈 육신이 서둘러 대꾸를 한다.달그락, 흔들리는 상자 속에서 30년 전의 소년 하나가 소릴 죽여 울고 있다. 나를 넣어둔 것은 누구였을까. 나를 꺼내려는 것은 또 누구일까. 나는 왜 이곳에 무단으로 놓여 있었던가. 스스럼없이, 하여 스스럼없이.' 결국 죽음앞에서 모든 것을 체념하듯 '<나>의 근처를 배회할 인간일 뿐이다.' 라는 말처럼 자신의 근처만 서성이다 갈 인생인데 우린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아픈 자신을 위하여 병간호를 하듯 정성을 다 하듯 아이들마져 떼어 놓고 왔던 순임이마져 '나 돈 좀 빌려줘' 자신이 살길을 헤쳐나가기 위하여 죽어가는 자신을 발판으로 삼는 현실, 인생의 깊은 속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언저리만 배회하다 가는 삶은 아닌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서는 읽고 한참 머물러 생각하게 한다. 과연 삶은, 인생은 어떤것일까? 어떻게 나 잘살고 있나요? 누군가에게 물어야 될 것만 같다. 더블B의 <낮잠>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아내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는데 그가 먼저 가고 자신은 열심히 살았다고 했는데 자식들은 자신의 모든것을 갉아 먹고 또 다른 객체로 나오는 우렁이처럼 자신이 모든것을 다 파먹으려 한다. 자기가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요양원에 갈 돈만 남겨 놓고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 요양원에 들어간 남자, 그곳에서 첫사랑 여인을 만난다. 그시절에 그녀는 문학소녀이었고 모두가 그녀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금 모습은 치매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초라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서 오래전 소녀시절의 그녀를 연상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추억뿐이다. 그 요양원에서 만날 줄도 몰랐지만 그녀가 행복한 삶이 아닌 질곡의 삶을 살아 왔음을 알고는 연민의 마음을 가지는 그, 그리고 그녀를 사모했던 동창생이 또 한 명 있다. 그와 라이벌이 되어 그녀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듯 하여 그에게는 친구가 아닌 웬수가 될 판에 그가 그만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고 만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뜻하지 않게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타난 그녀의 아들이 쏟아 내는 비루한 삶,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녀를 아들에게서 인수인계를 받는 것처럼 혼인신고를 한다. 먼저 간 아내에게 못한 것들을 이제 잘 해보려는, 하지만 그들에게 내일은 없다. 언제 어떤 삶이 그들에게 닥칠지 모른다. 인생은 어쩌면 낮잠 한 번 잘못 자고 일어나면 변하듯 할 수 있다. 아님 자신의 간절하게 원하던 것을 가졌을때 자신도 모르게 비로소 낮잠에,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인생이 무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이런 단편도 좋았지만 단편집엔 SF도 있다.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마구마구 부딪혀 오는 눈보라처럼 달려온다. 그의 소설들에서는 다양한 욕들도 참 많이 나온다. 리얼하다. 한국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망설임없이 쏟아내는 욕들이 '통쾌한 배설' 처럼 속 시원하게 변기물을 내리듯 흘러 내려간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누런 강 배 한 척>에서는 노년의 삶이 또한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 장 떨어진다, 떨어졌다. 왜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한때 잘나가던 선배, 하지만 그는 밀려나고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에게 가시오가피를 팔러 왔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으면서 선배가 안되 보여서 할 수 없이 자신이 생활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줄 알면서 가시오가피를 받아 들고 오지만 치매에 걸린 아내를 낮시간 돌보아준 맘도 없는 며느리에게 던지듯 주고 만다. 그리곤 자신의 알맹이를 빼먹으려는 딸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정리하여 주듯 하고는 그들은 동반자살을 하려고 결심하고는 떠난다. '아내의 손을 잡고 백화점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무작정 아내는 기뻐했고, 분별없이 일곱 벌의 옷을 닥치는 대로 골랐다. 모두가, 강렬한 원색의 옷이었다. 피처럼 빨간 원피스가 있었는데, 예전의 아내라면 공짜로 줘도 입지 못할 옷이었다. 그 옷을 입고, 아내는 소녀처럼 기뻐했다. 소년처럼, 나는 눈물이 나왔다.' 인생은 정말 무얼까? 자식을 위해 마지막까지 속을 다 파내어 주고는 빈껍데기로 돌아서 죽음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자각할 수 없는 아내가 눈에 들어오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남자의 눈에 어린 눈물, 하지만 꽃이 지고 있다.
그의 소설들을 읽다보니 어쩌면 그의 소설의 그 깊은 속은 '소통' 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식과 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내와 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과거와 소통을 못하거나 혹은 친구와 사회와 소통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모두 담겨 있다. 그들이 만약에 소통을 했다면 삶은 인생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굿바이,제플린> 에서 처럼 우린 에드벌룬과 같은 '공기 비행기' 와 같은 큰 꿈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것은 한낱 허상일 수도 있다. 늘 쳐다만 보고 달려 간다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가 결혼을 결심한 미려에게 단한마디 언질이라도 주었더라면 아님 자신의 가슴에만 품고 있지 말고 그녀와 '소통' 이 되었다면 총에 맞고 땅에 떨어진 공기가 빠진 비행기처럼 되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쫓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기 보다는 가끔 앉아서 다리쉼을 하듯 '인생' 을 들여다 보는 눈을 가지라는 것처럼 무언가와의 '소통' 을 말해준다. 책 표지처럼 가면을 벗고 가면 속에 숨어 있는 자신과 만나듯 소통을 한다면 현재의 오늘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 오늘과 만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더블' 의 단편들은 한번에 모두를 읽고 덮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편씩 다시 꺼내어 읽어 보고 싶은 소설들이다. 추억의 서랍을 열고 한개씩 추억의 물건들의 그 속을 들여다보듯 단편들의 속을 다시금 되새김질 하고 싶은 소설들이다. 이 단편집을 계기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프로필의 이상스런 모습으로 그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하다. '소설 어떠셨어요.' 하면서 말이다. 한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 하기도 어렵지만 지구의 미래를 정의하기도 어렵듯이 여기저기서 서로 다른 언어로 쌓아 올리는 바벨탑과 같은 그의 울림은 잠시, 나의 오늘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은 내일이 남아 있는 유일한 오늘이군요. 이제 곧 모든 어제도 사라지겠죠.' 라면서 말이다.소통을 하지 못하고 막혀 있는 누군에게 비타민처럼 지금 바로 상처 치료가 되는 '치유제' 와 같은 기회를 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