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이성부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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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인 이성부, 그의 시집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산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정말 시집 한 권 들고 얼른 숲으로 가야할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시집이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와 <도둑 산길>을 읽다보니 산행시인이라는 그를 진정으로 표현해 낸 책이 <지리산> 아닌가 하여 얼른 이 책도 구매를 해 놓았다. 그냥 책장에 꽂아 두기엔 설레임이 커서 다른 책을 읽으며 설레임이 가라 앉지 않은통에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직접 지리산을 산행해 본 적은 없지만 올 봄에 지리산 노고단까지는 성삼재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가서 그 후반부터는 산책로를 이용하여 노고단쉼터까지 올라가 본 것이 지리산을 밟아 본 기억에 전부다. 그렇게 간 봄 여행에서 그곳이 너무 좋아 주변을 돌면서 지리산 정기를 받고자했다. 지리산은 정말 어머니와 같은 넓은 품으로 둘러봐도 늘 아쉬움을 남겨 줄 만큼 여러도와 몇 개의 시군에 걸쳐서 있으니 한부분 한부분 정해 놓고 여행을 해 보는 것도 좋은 산이다. 그런데 그런 산을 직접 발로 걸어서 한걸음 한걸음 느끼고 마음에 담은 것을 '詩' 로 토해냈다는 것이 진정 대단하다. 그의 다른 시집들도 보면 산행의 그 묘미가 잘 드러나 있는데 이 시집 또한 그와 함께 동행을 하여 지리산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산에 역사가 있었다...앞부분 생략하고... 산이 흐르고 나도 따라 흐른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먼 곳으로 우리가 흐른다/  산은 그런것 같다 멈추어 있는것 같지만 산에 올라보면 구비구비 그 줄기따라 흐르고 있다.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산이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정상을 밟아 본 사람만이 느끼고 볼 수 있는 풍경이 다 담겨 있는 듯 하여 밑줄 쫙 그어본다. 산이 흐르고 나도 따라 흐른다. 멈추어 있고 고여 있는 것은 썩는다고 했다. 그래서 고인물은 썩은 물이라 하여 악취가 난다고 하였는데 멈추지 않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산처럼 그리고 세월처럼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둥글둥글 산과 닮아가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시를 읽다가 중간 중간 내 맘에 드는 표현이 있음 밑줄을 그어본다. '중산리' 라는 시에는 '그리움도 손에 잡혀 가슴이 뛴다.' 라는 부분이 있다. 그리움이 손에 잡힌다는 표현이 정말 멋지다. 천왕봉에 걸린 흰구름을 보고 느낀 그의 그리움, 괜히 빨리 중산리로 향하여 나도 그 그리움을 잡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중산리엔 못 가봤지만 노고단에서 안개에 휩싸인 그곳을 보니 선계가 따로 없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르게 아마도 지상이 아닌 선계에 있는 듯하여 몽롱하던 그 기억이 난다. 

다시 남명선생.... 세상에 나아가서 부대끼는 사람보다/ 세상에서 숨어 귀 막고 눈 가린 사람이/ 세상을 더 잘 터득하는 법!/....... 지리산은 역사와 많은 인재와 사람을 품고 있다. 그곳의 인물들에 대하여는 잘 모르지만 영화나 그외 소설속에서 더듬더듬 만나는 인물들을 보면 지리산에 반하여 혹은 지리산에 안주하여 세상과는 담을 쌓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곳에 있으면서 세상을 정말 더 잘 터득한 '득도한 자' 들을 만나게 된다. 세상속에 있어야 세상의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 감고 귀 막아도 모든 것은 보이고 들리는 듯. 

좋은 사람 때문에.. 초가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그 까닭을 안다/ 몸이 젖어서 안으로 불붙는 외로움을 만드는/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후두두둑 나무기둥 스쳐 빗물 쏟아지거나/ 고인 물웅덩이에 안개 깔린 하늘 비치거나/ 풀이파리들 더 꼿꼿하게 자라나거나/ 달아니기를 잊은 다람쥐 한 마리/ 나를 빼꼼이 쳐다보거나/ 하는 일들이 모두/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외로움이야말로 자유라는 것을/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감기에 걸릴 뻔한 자유가/ 그 좋은 사람 때문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안다/  너무 좋아서 시의 전문을 모두 옮겨 본다. 비 맞으며 산에 오르고 그 비로 인하여 감기에 걸려도 너무 좋은 산행, 그런 산행을 가고 싶다. 혼자 하는 산행도 좋지만 가끔 거리가 조금 서먹해진 사람과 함께 산행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관계가 좋아진다. 함께 산행을 하다보면 자주 손을 잡게 되고 말도 더 많이 하게 되어 관계가 급격히 좋아질 수 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산행은 더없이 좋다. 그런 가을산행을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시이다.

피아골 다랑이논..... 앞부분 생략....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 가슴 가득히 불덩이를 안고/ 피와 땀을 뒤섞이게 하는/ 그것이 눈물겨워 나도 고개 숙인다/  참 좋은 부분이라 옮겨 본다. 남해 다랑이논에 가보고 싶었는데 1박2일을 통해 소개된 지리산 둘레길 중에 '다랑이논' 이 있는 마을 풍경을 보면서 또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척박한 자연에 순응하며 살기 위한 힘든 몸부림이 잘 표현된 다랑이논, 그것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개가 겹치다 보니 정말 멋진 풍경을 자아내게 되었다. 삿갓으로 가리면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하여 삿갓배미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에서 읽었는데 이 시에서는 그 다랑이논을 일군 사람,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이란 표현이 좋아 옮겨본다. 그야말로 역사가 켜켜이 이어진 논이라 하겠다. 지리산은 그렇게 역사도 깊고 역사와 함께 한 이들도 많고 이 시집을 읽다보면 그런 역사와 인물 그리고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시인의 시집에 집착하여 읽게 되었나보다. 지리산 산행을 갈때는 이 시집 한 권 들고 어느 한적한 곳에 앉아 한번 더 느끼며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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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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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라면 어떻게 될까?
라는 한 줄의 의문으로 시작하는 단편들은 베르나르의 상상력답다. '주제 사라마구' 가 '만약에...' 시작하는 한 줄의 의문에서 소설을 시작한다고 하였는데 베르나르 역시나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만약에....' 라는 상상력에 맞는 단편들을 쏟아 내놓고 있다. '나는 이 단편집에 인류의 <있을 법한 미래> 에 관한 전망, 그리고 나 자신의 삶에 일어난 사건들, 즉 <있을 법한 과거> 를 섞어 놓았다.' 어쩌면 그런 미래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그의 상상력이지만 재밌다. 그는 '단편소설은 작가라는 장인의 공방 같은 것이다.' 라고 했다. 장편소설 보다도 작가의 단편들을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글 재주가 있는지 알게 된다. 장편을 이어나가는 필력도 중요하겠지만 맛깔스런 단편들을 줄줄 쏟아 내놓는 작가를 보면 그의 소설들이 다시 보인다. 베르나르는 <개미>라는 소설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다보면 그의 기발한 상상력에 웃음을 머금을 때가 있다. 이 책에서 그가 그리는 단편들은 미래의 파라다이스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파라다이스' 이고 지금 현재의 환경및 그외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어쩌면 파라다이스라는 역설적 이야기들인듯 하다. 그가 그려낸 파라다이스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을까 들여다볼까.

환경 파괴범은 모두 교수형... 아고 큰일났다. 환경 파괴범이 모두 교수셩에 처한다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어찌될까.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자동차 운전금지,흡연금지, 석유를 동력으로 하는 모터 사용 금지, 가스를 배출하는 공장 가동 금지, 연기를 내뿜는 것은 그 무엇이든 사용 금지. 바비큐나 굴뚝 연기 심지어 폭죽까지도... 그렇다면 이것에 한가지라도 해당이 안되고 현재를 살 수 있을까. 우선은 자동차 운전 금지하면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다. 교수형에 처하는 사람들이, 자연에 퇴비로 이용되는 사람들이 넘쳐날 듯 하다. 한집에 두대도 많은 요즘, 아니 식구수 대로 자동차를 보여하는 집도 많다. 그렇게 본다면 살아남지 못할 자가 넘쳐날 듯 하다. 흡연금지는 그야말로 건강을 챙길 수 있으니 좋은 듯 하다. 그러지 않아도 공공기관건물이나 그외 흡연자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흡연을 하면 교수형이라면 먼저 '담배공사' 는 어찌되는 것인가. 담배를 심지도 말고 만들지도 말아야 할 터인데. 거기에 고기를 먹으면 교수형이라면 삼겹살이라면 죽고 못 사는 우리에겐 정말 죽으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소설속 그동안은 정말 모범적으로 살아왔는데 아버지 또한 모범인 이었는데 여자의 꾀임에 빠져 할리데이비슨의 그 짜릿한 맛에 빠졌다가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은 것이다. 그 또한 교수형에는 처하게 되지만 할리데이비슨이 주던 그 헤어날 수 없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베르나르는 어쩌면 지금의 지구라도 잘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그만의 교훈을 담은 단편이라 생각한다.

존중의 문제.... 아이들도 많고 수영장이 딸린 집에 아내도 있고 큰 집의 대출도 갚아 나가야 하는 경호일을 하는 남자에게 유명인이 경호를 부탁했다. 그가 하는 행동들은 맘에 들지 않지만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굽혀가며 경호일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보수를 챙기는 남자, 그에게 유명인이 다시금 한번 더 경호를 부탁하는데 경호일을 하는 남자가 제시하는 가격을 절대 줄 수 없다는 유명인, 서로 밀고 당기고 하지만 그는 절대 자신이 제시하는 가격에서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하여 경호일을 하는 남자는 강하게 거절을 하고 만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리곤 그가 나오는 티비 화면에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다른 방송에서 아무리 재미 없는 방송을 하여도 결코 그남자의 프로를 보지 않는다. 유명인이 자신을 조금만더 배려하고 존중해 주었다면 그는 경호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었을텐데, 그남자가 나오는 프로를 돌리지 않았을텐데 깐깐한 유명인 때문에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 작은 차이로 인하여 유명인라도 일을 강하게 거절하는 자존심 있는 남자로 거듭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제일 중요한 것은 '존중과 배려' 이다. 얼마전 읽은 <스님의 주례사>에도 보면 부부사이에도 남편이 아내를 '존중과 배려' 를 해 주지 않기에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는 글이 있다. 하물며 돈이 얽힌 갑과 을의 관계는 존중과 배려가 더 필요한 관계이다.

꽃 섹스.... 더이상 남자와 여자가 정자가 난자를 만나 배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여자고 불임이 되고 남자도 불임이 되어 꽃과 나비처럼 꽃가루를 나비나 벌이나 어느 매개체에 의하여 체외수정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점점 전자파나 그외 환경오염등에 노출이 되어 불임이 늘어나고 사고방식이 달라져 출산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이 단편처럼 된다면 정말 그땐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는데 난자와 정자가 꽃가루처럼 공중에 날려 나비에 의한 수정이 이루어진다는 기발한 그만의 상상, 그런 세상이 도래하기 전에 의식이 좀더 깨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기자신이 욕심이나 그외 편한것을 선호하며 살기 보다는 인간 본연의 의무를 이행하며 사는 것이 인류를 위하여 좀더 현명한 삶은 아닐지.

안개 속의 살인...부제로 '있을 법한 과거' 라고 했다. 한 엄마가 두 아들을 모두 키울 능력이 되지 못하여 큰아들을 선택하고 막내는 손발을 묶어서 죽이고는 운하에 버린다. 그렇다면 그런 부모가 그녀 혼자일까. 기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사를 보내려고 하지만 좀더 경험자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좀더 다른 각도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눈으로 기사를 쓰라고 충고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비단 운하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그 아이 혼자뿐일까. 기사는 많은 이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운하에서 놀던 아이가 가로등이 없어 미끄러져 죽었다고 쓰인다. 진실과는 너무도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동정을 보내고 시는 각성을 하여 가로등도 놓이게 되고 좀더 운하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 그곳에 죽음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 현실은 너무도 다르게 포장이 되어 놓이게 된다. 현재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사실과는 동떨어지게 포장이 되어 진실인듯 세상에 노출이 되는 일들이 과연 어떻게 작용을 할까. 모든 사실이 진실로 노출이 될때와 그렇지 않을때의 차이, 하지만 진실은 진실일때가 진실된것 아닐까.

내일 여자들은...'언젠가는 지구상에 여자들만 남고, 남자들은 전설 속으로 사라지리라.' 만약에 지구상에 여자들만 남게 된다면. 정말 아마조네스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수명이 더 긴것은 자생능력,복원능력이 남자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얼마전 뉴스를 본 듯 한데 남자들은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도 여자보다 더 높을 것이고 술과 담배등에 노출이 되어 수명을 더 단축시키게 되겠지만 어쩌면 남자 스스로 도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들이 술을 마시는것도 모두 정당화 시키고 합리화 시켜 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자멸하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하여 남자가 사라지고 여자만이 지구상에 남게 된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핵 한방이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그외 자연이 남아남지 못하기에 핵에 대한 면역력이 더 강한 무언가를 원하던 마들렌은 엄마의 도움으로 인하여 드디어 수컷보다는 암컷이 자생력이 뛰어나고 환경에 적응하며 태생보다는 난태생이 더 강하다는 것을 전해듣게 되고는 알 속에서 태어난다면 핵에 대한 면역력이 더 강하다는 밝혀내게 되지만 그녀의 연구의 반대파인 핵보유국은 그녀의 연구를 물거품화 하기 위하여 그녀의 목숨을 노린다. 그러다 엄마가 동성을 나누었던 아줌마의 아들에 의해 보호를 받던 중, 그녀의 생일날에 그야말로 핵으로 인한 지구종말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고 마들렌과 그 남자는 그녀가 탄생시킨 알들과 그들의 정자와 난자로 탄생시킨 새로운 생명체와 함께 파라다이스를 맞게 된다. 난태생의 역사로 가기전 그들은 마지막 태생을 하는 사람들이 되는데 그런 날이 오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강한 메세지가 느껴진다. 어쩌면 이 내용은 그가 서두에서 말했듯이 영화화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 소설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파라다이스' 는 환경파괴와 오염등으로 인하여 우리가 번식능력을 잃게 되고 그러므로 인하여 현재와는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맞게 된다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지금부터라도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고 좀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가꾸어 '파라다이스' 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경고성 글들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덫에 의해 스스로 자멸하듯 모든 능력을 상실해 가면서 새로운 세상이 온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파라다이스다. 있을때 잘 지키고 보존하자. 내가 누릴 수 있다고 하여 넘쳐나는 무절제한 생활보다는 모자라는 듯함이 지구와 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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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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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라는 작가의 말이 좋아서 먼저 밑줄을 쫙 그어 놓고 다시 한번 더 읽었다. 그가 이 소설에 나타내려 한 것들이 모두 윗 글속에 담겨 있는 듯 하다. 

조정래, 그의 책으로는 필독서인 <태백산맥> <아리랑> 그리고 <한강> 을 거쳐 오랜시간 겨울잠을 자듯 하다가 <인간연습>이란 책을 만났다. 전작들과는 너무 비교가 되는 작품이었지만 그가 역사라고는 할 수 없는 대하소설에 비하면 단편과 같은 장편소설로 전작들은 우리민족의 역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면 <인간연습>은 그 모든 아픔을 한몸에 담고 있는 전향수에 대한 이야기다. 전작을 오랜 여운에 비하면 이 소설은 작가 능력에 부족한 작품처럼 아쉬움을 남겨 주었는데 얼마전 만난 <사람의 탈>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어찌하다보니 역사의 그 현장에서 밀려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아픔을 간직한 우리 역사와 같은 인물에 대하여 스케일이 큰 소설이지만 빠른 전개로 그 아픔을 전해주지만 그 소설 또한 내겐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면 그의 대하소설의 힘이 아직 남아있어서일까. 그런 소설들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연중에 작가에게 대하소설에서 보여 주었던 그 강한 힘을 한번더 보여주길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현대사를 통해 그런 소설을 탄생시키지 못한다고는 볼 수 없는 문제이기에 흡입력이 강한 그만의 힘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해거름에 구불거리는 야산 길을 따라 검은 승용차가 날렵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 늘씬한 몸매의 유연함이 마치 잔잔한 물결을 가르는 물개의 매끈한 몸짓 같았다.’ 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뉴스를 통해 접했던 대기업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일인자인 기업과 이등인 기업,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라는 말처럼 우린 성적이나 그외 무엇으라도 일등을 하려고 눈물나는 노력을 한다. 사회가 일등만 기억하고 아류는 기억해주지 않기에 남을 밟고라도 일등의 자리에 올라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류’ ’불법’ 을 저지르고도 이슈화가 되면 사회 통념상 눈감아 주기를 그냥 지나쳐 흘러가길 바라는 뉴스를 종종 접하기도 했다. 소설속 주인공이 말하는 ’골든 패밀리’ 라는 부류에 속하지 않아서일까 그런 일들은 내 일이 아니기에 한번 입에 올렸다가 잊고 만다. 그들이 범하는 잘못된 일들을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깨어 있는 자’ 가 되어 그 속을 속속들이 깨부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소설을 읽는다면 ’깨어 있는 자’ 가 되어 보는 것도 괜찮다.

일등인 태봉의 그늘에서 이등으로 각인되어야 하는 일광그룹 남회장, 그는 일등인 태봉이 잘못을 저지르면 무죄로 풀려 나지만 자신은 실형을 선고 받는 그 부당함이 싫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무시를 당하며 물려 받은 일광그룹을 일등기업으로 만들고 싶어 대작전에 돌입한다. 자신 밑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윤성훈을 비롯하여 해외파인 강기준을 몰아세워 태봉이나 그외 자신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피를 수혈하게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개척센터’ 이름을 보면 뜻을 알듯 말듯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자세하게 모를 그런 팀을 만들고 자신의 기업을 일류로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작전을 펼친다. 그들 또한 태봉에 맞설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을 스카우트 하는데 알게모르게 기울인 뇌물이 대단하다. 완전한 조직이라 할 수 있는 힘을 마련한 그들은 어마어마한 보수를 기대하지만 워낙에 짠 남회장은 떡값에 불과한 돈으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자신은 모든 것을 가진듯 부풀려졌는데.

드러나지 않는 돈인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조성해 놓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들도 모르는 곳에서 틈이 발견되고 그 틈마져 돈으로 해결을 말끔하게 하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가 남았다. ’이거 갑자기 눈부시게 보이네. 알고 보니 무서운 독종에 영웅 아니신가.’ 라고 할 정도의 강기준과 ’첩보원 같은 게 아니라 그는 바로 태봉그룹의 1급 첩보원이었다. 일광그룹이 닮고 싶어 하는 그 막강한 정보 조직체를 만들어 낸 기둥 중의 하나’ 인 박재우와 남회장 바로 밑에서 그의 실세를 등에 업고 모든 일을 좌지우지 하는 윤성훈, 그들이 모이면 못할것이 없는 철인팀이 되었다. 태봉을 능가하는 조직력과 비자금도 조성을 해 놓았는데 회장 아들에게 재산권과 경영권을 불법승계를 못할것이 없을까. 그들은 한 팀인듯 하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면서 언제고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적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회장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만 그 모든 비리에 대한 반대파가 있는 것이다. 자신과 비슷하게 출발을 했으나 자신보다 먼저 앞서 가 있는 사람을 보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옳은 소리를 한 진검사, 그는 옷을 벗고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비리와 거짓과 싸우는 일선에 서게 되는 그를 비롯하여 사회에서 깨어 있는 소리가 조금씩 커지게 되고 억억 거리며 회장 밑에서 그의 힘에 눌려 ’허수아비춤’ 을 추던 그들이 회장의 욕심에 조금씩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고 마침내 강기준이 반기를 들고 나온다. 하지만 소설은 너무 갑자기 막을 내린다. 

조직사회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면 자신의 목소리 보다는 전체나 그외 우두머리의 소리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모두가 ’노’를 하는데자신만 ’예스’ 를 할 수 없음이 ’사오정’ 이나 ’명예퇴직’ 이니 하는 그동안 우리사회에 불어닥친 무서운 칼바람 앞에 남자들의 의지는 나약해지고 말았다.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살기 보다는 어느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 놓은듯 영혼을 잃어버린듯 살아가는 남자들이 피곤한 사회로 바뀐지가 오래다. 이 소설속에는 ’수컷들의 야성본능’ 인 ’영역싸움’ 이 잘 드러난다. 거기에 ’약육강식’ 이다. 힘이 없는 자는 힘 있는 자에게 먹히고 짓밟히고 만다. 수컷들의 날것 냄새가 나는 소설은 그들이 영역싸움을 하기 위하여 얼마나 비열하고 비굴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가진자의 자만 또한 얼마나 끝이 없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가져야 일등이고 얼마나 더 올라가야 자신의 욕심을 다 채울 수 있는지 그 끝도 없는 싸움에서 자신 또한 스스로 무너지고 있음을 모르면서 계속적으로 앞으로 전진만 일삼는 슬픈 군상의 일면을 일광그룹의 남회장을 통해, 그리고 그 밑에서 자신의 영혼을 돈과 바꾼 이들의 허수아비춤으로 날것 냄새를 그대로 보여준다. 

’윤성훈이 몇 걸음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의 뒷덜미가 꼿꼿하게 곤두서 있었다. 그 성깔 돋은 뒷덜미를 보면서 박재우는, 성질 내지 말아라. 어차피 인생사는 경쟁이고 싸움판 아니더냐.’ 라는 말을 던진다. ’인생사는 경쟁이고 싸움판’ 그것도 수컷들의 싸움판을, 살아 남기 위하여 돈 앞에서 비굴한 그들이 벌이는 비리는 자신들은 비밀리에 움직인다고 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보인다. 문어발식 성장과 집착, 그게 과연 영원할까? 외국의 경우 최고부자인 자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들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을 하던가 기부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선 이야기이다. 우린 어떻게 하던지 자식에게 불법으로라도 물려주려고 하고 남이 모르는 주머니를 차려고 한다. 그러다 걸리면 나도 남처럼 ’무죄’ 이겠지 하는 생각을 갖는다. 무엇이 무죄일까? 국가에 그동안 이바지한 공로가 커서. 그 공로 또한 불법으로 이룩된 것 아닌가. 모두가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소설속에서는 불법으로 축적된 그들의 성이 언제까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을 폭로하듯 진실과 대면하는 반전이 좀더 더 다루어졌으면 하는데 갑자기 끝나서 조금 섭섭하고 아쉽다.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이 선택한 길.
수컷들의 영역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하여 서로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쓴다. 그리고 일에 대한 댓가 또한 마땅히 남보다 더 많이 받길 원하지만 최고 위에 있는 자는 그렇지가 않다. 자신의 주머니를 더 챙기지 남의 주머니를 결코 채워주지 않으려 한다. 그의 주머니엔 욕심이란 것이 들어 앉아 있기에 ’남’ 을 생각하기엔 부족하다. 무엇이든 최고이고 남보다 더 위이길 원하는 자들의 마지막 길은 무엇일까. 진시황 또한 영원한 삶을 얻지 못했듯이 그들이 가려는 길 또한 영원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그치게 되는 허수아비춤처럼 모든 이가 영혼이 없는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일순간 돈의 힘에 눌려 자신을 잃어버렸다 해도 그 길이 늘 언제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맛있는 맛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이성이 있는 동물이기에 언제고 뒤돌아 본다면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 현대사를 날카롭게 꼬집은 작가의 필력은 아직 녹슬지 않았지만 무언가 2% 부족함을 느낀다. 이야기가 막 전개되는 시점에서 끝이 난 듯한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어쩜 작가는 그런 일광의 마지막 참혹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허수아비춤을 추던 그들이 느껴야 할 참회의 시간을 어쩌면 독자의 몫으로 돌렸는지 모른다. 그런 과오를 더이상 저지르지 않기 위하여 독자는 깨어 있으라 한다.’회장은 노조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고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가 치가 떨리게 싫어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두가지가 더 있었다. 분배라는 말만 들으면 치를 떨었고, 사회 환원이라는 말에도 치를 떨었다.’ 이젠 후손을 위하여 돌려줘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움켜쥐고 있다고 모두가 내것이 되는것이 아니고 모두가 마지막길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닌 분배와 환원이라 말한다. ’그게 바로 돈의 힘이죠. 돈을 앞세워 실패한 적 없으니까 그들은 돈의 힘을 절대 신봉하면서 거칠 게 없는 거지요. 대학이 돈 힘에 넘어가는 판인데 가난한 개인이야 더 말할것 없는 거지요.’ 돈의 힘을 밑고 날뛰는 각축장과 같은 남자들의 본능을 잘 표현해 놓은 소설은 좀더 이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니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기업들이 투명경영을 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언제고 허수아비춤을 추어야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는 음보다 양이 많기에 살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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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산길
이성부 지음 / 책만드는집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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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인 이성부, 그의 전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라는 시집을 읽고 너무 좋아서 <도둑 산길>과 <지리산>을 구매를 했다. 그런데 시인의 이야기를 만난 것은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에서 이다. 필자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의 한 부분을 걸었던 그가 지리산을 뒷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 하고는 그 사진을 언젠가 프로필 사진으로 쓰겠다는 이야기를 그 책에서 읽었는데 바로 그 사진이 이 책의 프로필에 실려 있는 것이다. 너무 반갑다. 타지에서 고향사람을 만난것처럼 반가워 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그렇게 좋아. 반가워?' 하며 내게 반문을 한다. '좋지..' 했는데 그에겐 아무런 감정이 없다. 내가 해주는 이야기가 책을 읽지 않은 그에겐 느낌이 없는 것이다.하지만 내겐 너무 좋다. 

산행을 하며 오로지 산행하면서 만나는 나무와 숲 들꽃 길 사람들 자연에 대한 이야기로만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힘든 일이다. 요즘 사람들은 시집을 잘 읽지 않으려 한다. 시집을 읽으려 하지 않는것 뿐만이 아니라 시를 잘 쓰려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돈이 되지 않는 시를 누가 쓰고 누가 읽겠는가. 하지만 그는 긴 아픔의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금 쏟아낸 이야기들이 자연과 벗하며 힘든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듯 한 산행 이야기라 더 좋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이후 간암이란 큰 병마와 싸우며 힘든 시간을 이겨낸 듯 하다. 그가 산과 함께 한 시간도 30여년이고 시와 함께 한 시간도 30여년이라고 했듯이 아픔의 시간인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왔기에 그가 느끼는 산들바람은 더욱 싱그럽고 상큼하게 전해진다.

안 가본 산... 내 책장에 꽂혀진 아직 안 읽은 책들을/ 한 권씩 뽑아 천천히 읽어가듯이/ 안 가본 산을 물어물어 찾아가 오르는 것은/ 어디 놀라운 풍경이 있는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마냥 흘러가고픈 마음 때문이 아니라/ 산길에 무리 지어 핀 작은 꽃들 행여나 다칠까 봐/ 이러질 발을 옮겨 딛는 조심스러운 행복을 위해서라 아니라...... 아직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사랑의 속살을 찾아서/ 거기 가지런히 꽂혀진 안 읽은 책들을 차분하게 펼치듯/ 이렇게 낯선 적요 속으로 들어가 안기는 일이/ 나에게는 가슴 설레는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백비... 감악산 정수리에 서 있는 글자가 없는 비석 하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너무 크고 많은 생 담고 있는 나머지/ 점 하나 획 한 줄도 새길 수 없었던 것은 아닌지...... 저리 덤덤하게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을/ 저렇게 밋밋하게 그냥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어느 사이 속보가 되어... 걷는 것이 나에게는 사랑 찾아가는 일이다/ 길에서 슬픔 다독여 잠들게 하는 법을 배우고/ 걸어가면서 내 그리움에 날개 다는 일이 익숙해졌다/ 숲에서는 나도 키가 커져 하늘 가까이 팔을 뻗고/ 산봉우리에서는 이상하게도 내가 낮아져서/ 자꾸 아래를 내려다 보거나 멀리로만 눈이 간다/ ..... 먼 곳을 향해 떼어놓는 발걸음마다/ 나는 찾아가야 할 곳이 있어 내가 항상 기쁘다/ 갈수록 내 등짐도 가볍게 비워져서/ 어느 사이에 발걸음 속도가 붙었구나!/ 

건너 산이 더 높아 보인다... 산봉우리에 올라가 바라볼 때마다/ 저 건너편 산봉우리가 더 높아 보인다/ 건너편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이까 올랐던 산봉우리 되돌아보면/ 이게 뭔가 그 봉우리가 역시 더 크고 높게 보인다/.... 산에 다니면서부터 나는 나의 시가/ 낮은 목소리로 가라앉아 숨을 죽이거나/ 느리게 걸어가서도 결국은/ 쓸모없이 모두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키가 큰 욕망은 마침내 무너지고 널브러져서/ 부스러기가 된다는 것을 산이 가르쳤다/......

그의 시를 읽고 있다 보면 내가 산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힘들게 그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무를 만나고 잠시 잠깐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만나고 건너편 산봉우리를 만나고 이름모를 들꽃을 만나고 나의 인생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참 좋다. 산에 가지 못하는 날, 산에 가고 싶은 날 시인의 시들을 읽고 있다보면 내가 산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가 느낀 느낌들이 그가 전해준 느낌들이 그가 그려준 풍경들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나도 산인이 되어 있는 기분이다. 그가 '간암' 이라는 큰 산을 넘어 들려주는 산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좋다. 부디 건강해져서 백두대간 아니 더 많은 산들을 오르고 그리고 내리거나 도둑 산길을 다니며 만났던 이야기들을 '시詩' 로 승화시켜 보여주길 바란다. 자신의 삶과 함께 했던 시와 산행이 이렇게 멋지게 그 자신을 나타내주는 글이 될 수 있어 좋다. 시집을 읽고 나면 빨리 산에 가고 싶어진다. 나 혼자 오롯이 오솔길을 차지하고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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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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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인가 아마조네스인가 간통한 자들인가.비밀스러운 집단 A의 꿈과 욕망, 그리고 추락!
책날개에 있는 문구가 '뭐지?' 하게 만든다. 하성란이란 작가는 <삿뽀르 여인숙> 이란 책을 구매해 놓았지만 아직 읽지를 않아서 작가에 대한 것이 내겐 아무것도 없다. 이 책으로 그녀를 탐하고 싶었는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추리물일까 아님 실화를 배경으로 한 그냥 장편소설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다 그래도 결말엔 무언가 있겠지 하다가 책을 다 읽고 나선 씁쓸함을 어쩌지 못했다. 작가의 첫 만남이었는데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니다.

이야기는 오대양(주) 사건을 다루고 있다. 주홍글씨의 A처럼 발신인을 밝히지 않고 그냥 A라고만 적혀서 보내 온 편지, 그 뒤에는 24명의 여자들이 뒤엉키듯 죽어 있던 신신양회 사건이 다루어진다. 아버지가 없이 오로지 아마조네스처럼 여자들만의 나라처럼 엄마와 이모들로 이루어졌던 집단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게 모두 다 죽게 되고 그 자리에서 살아 남은 단 한명은 실명의 상태라 아무것도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을 저장하지 못하는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그녀를 향하던 손, '이 냄새다. 밭에 뿌려 놓은 분뇨라 웅덩이에 고여 썩어가는 오수냄새, 풀숲 건너에서 짐승의 사체가 부패하며 내는 냄새, 단맛이 들어가는 과일향 사이사이로 내 후각은 대번에 이 냄새를 가려냈다.' 라는 처음은 좋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질 수록 난해함과 사건이 이어지지 않고 잡설이 길어지는 듯한 우왕좌왕 하는 느낌, 나만 그런가 하면서 읽어 나갔지만 내겐 정말 모를 소설이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밝혀지지 않은 신신양회의 '엄마와 이모'에게서 태어났던 아이들은 그녀들이 집단자살을 하고 다시금 모이게 된다. 사회에 나가 그녀들은 자신들의 '엄마와 이모' 들이 저질렀던 '남자사냥' 처럼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우수한 정자를 원한다. 그런 그녀들이 하나 둘 임신을 하고 다시금 그들이 태어났던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그곳에 모여 다시금 자신들의 엄마와 이모가 '신신양회' 라는 공장을 세워 그곳을 부흥시켰던 것처럼 그들 또한 어머니의 대를 이어 아버지가 없는 아이를 키우며 공장을 다시 살려낸다. 그 공장을 다시 살려낸 장본인은 다른 아닌 여자가 아닌 그 시대 여자아이들과 함께 태어난 남자아이,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았고 그 아버지는 막강한 부를 가진 자이다. 아버지를 이용하여 자신 또한 자신들의 엄마와 이모가 저질렀던 과오를 되살리는 그들, 그들의 미래는?

남자를 찾아나서기 위하여 자신들이 편지에 썼던 'A' 라는 글자는 자신들의 과거사를 밝혀내는 'A' 로 다시금 자신들에게 돌아온다. 종교집단인지 정말 아마조네스인지 밝혀지지 않은 그들에게 'A'  란 무엇이고 책을 읽는 독자가 느껴야 할 'A' 란 무엇일까? 소설이 좀더 다듬어지고 매끄럽게 이어졌거나 아님 완벽한 미스터리 추리물로 가려고 했다면 그 길로 오롯이 가던가 했다면 멋진 소설로 거듭날 수 있었을텐데 소설은 그렇지 않다. 작가의 잡설이 너무 많이 끼어 들고 독자 또한 충분히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사족처럼 너무 많이 끼어 있어 난잡한 소설이 되고 말았다. 내가 읽고 뱉어낸 한마디는 '에이, 괜히 읽었어.' 어쩔 수 없다. 내 감정은.

자음과 모음의 책은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다른 소설보다는 좀더 '실험적' 인 소설들이 많다. 읽고 나서 후회한 책이 몇 권 있다. 이게 소설일까 이걸 책이라 해야 하나.. 하며 읽었던 기억이 몇 권 있는데 이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설이 되었다는 것이 아쉽다. 그것도 '하성란' 이란 작가는 내겐 처음이었는데 첫만남이 너무 반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의 다른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다듬어지고 독자가 반한 만한 '추리물' 아님 다른 장르의 소설을 내 놓을 수도 있었는데 너무 서둘러 내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 누군가를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이 상실이나 금기를 뜻한다면 신신양회집 아이들에게 아버지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였다. 모든 단어들이 관계 속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어머니', '어머니' 라는 단어는 '아버지' 가 있어 힘을 얻게 되지만, 우리들에게 엄마, 어머니란 단어는 없었다.' 신신양회 아이들에게 아버지란 단어가 없듯이 이 소설엔 무언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 든다. 어느 한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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