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베이커 자서전 : 성장
러셀 베이커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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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의 연세로 어머니의 적적함은 끝이 났다. 그래 가을 이후로 어머니의 정신은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 첫 줄에서 눈물이 왈칵, 지난달에 우리곁을 떠나가신 아버지의 마지막이 생각나 한 줄을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 울아버지는 칠십칠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폐암 판정을 작년에 받으시고 정말 건강하게 농사일을 모두 마치시고는 거짓말처럼 편안하게 주무시다 이승의 손을 놓아버리셨다. 막된말로 가족에게 똥오줌 한 번 받아내게 하지 않시고 그렇다고 치매기 또한 없으시게 정말 말끔한 모습으로 전날까지 움직이시고 이야기 하시고 드실것 다 드신후에 주무시는 동안 그렇게 영원한 잠에 빠지시고 말았다. 그래서였을까 첫 줄이 날 울렸다. 여든의 연세로 러셀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시다 가셨나보다. 

강인한 여전사 같았던 러셀의 어머니, 교사시절에 차가 고장나 차를 수리하면서 술병을 가지고 있던 그를 고쳐보겠다고 곁에 다가갔던 것이 그만 그와 인연을 맺게 되고 남편의 짧은 생으로 인해 대공황시절에 아이들과 구호품으로 타며 어렵게 살아야만 했던 여인. 러셀의 아버지는 그가 네살에 돌아가셨다. 러셀의 아버지가 결혼승낙을 받기 위하여 어머니를 데리고 할머니에게 간 날, 두 여인은 강하게 부딪혔다. 할머니도 강한 여인이었지만 어머니 또한 할머니만큼 강했던 것이다. 서로를 받아 들일 수 없었기에 그들은 할머니의 힘이 닿지 않은 곳에서 살 듯 가까운 곳에서 떨어져 살았지만 손자를 무척 이뻐하셨던 할머니,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들에게 빚만 남기듯 가난을 남겨 놓고 가셨다. 할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듯 외삼촌을 찾아가 더부살이를 하게 된 러셀의 가족, 어쩔 수 없이 막내 여동생은 자식이 없는 집에 주고 돌아서야만 했다.

모두가 다 힘든 대공황시절이었기에 어머니는 러셀에게 여덟 살 때부터 밥벌이로 신문을 팔게 했다. '네가 부지런을 떠느니 차라리 장작에 새순이 돋겠다. 당장 부엌으로 가서 도리스가 설거지 하는 것을 거들어!' 하지만 그 일이 싫었던 러셀, 그런 반면에 그의 여동생 도리스는 그와는 너무도 반대다. 그가 신문을 팔지 못하여 어머니가 도리스를 딸려 보낸 날 도리스는 그에게 보란듯이 '한방' 먹인다. '그 애는 가방에서 신문 한 부를 빼들고 있다가,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자마자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차로 뛰어가 그 조그만 주먹으로 닫혀 있는 창문을 쾅쾅 두들겼다. 운전자는, 아마 그의 차를 급습한 꼬마의 행동에 당황해서인지 창문을 황급히 내렸다. 그러자 도리스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한 부를 차 안에 던져 넣었다. '아저씨, 이 신물이 필요하실 거에요. 5센트밖에 안 해요.' 여기서 나 또한 '빵'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오빠 러셀에 비해 적극적이며 모든 일에 활달하고 어려서부터 자기몫을 단단히 해내는 도리스, 그녀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도리스도 그렇고 여성이 강한 집안이다. 그런 속에서 꿋꿋이 자신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그가 거쳐야 했던 아픔들과 대공황의 가난은 고스란히 담겨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어린시절부터 미미라는 고아나 마찬가지인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기 까지 스물 다섯 정도의 생까지 그려지며 앞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어머니의 마지막으로 써 놓아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전해준다. 대공황시절 비록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난하긴 했지만 자존심을 절대 굽히지 않고 반듯하게 아들을 키워 출세시키기 위하여 모질게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러셀 또한 삐뚫어 나가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 매달리며 신문팔이라는 밥벌이까지 하면서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그가 어려서 그토록 싫어했던 신문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성장을 했다는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힘이 크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그는 여전사와 같은 강한 어머니가 만들어낸 '작품' 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삼촌 집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어머니처럼 강인한 팻 외숙모와 살면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또한 재밌으면서도 감동을 준다. '팻 외숙모 역시 점차 온전한 자기 집에서 살기를 원했다. 우리가 공황 초기에 앨런 외삼촌 집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어머니는 기껏해야 세를 얻기 전까지 서너 달만 신세를 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황의 수렁 속에서 서너 달은 어느덧 3년이 되었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은 팻 외숙모와 앨런 외삼촌에게 이전의 사생활을 되찾기까지 50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로 보였다.'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외삼촌들까지 모이게 되는 팻 외숙모네서 독립을 하여 자신들만 살게 되고 그곳에서 구호품을 받아 살 정도로 바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허브아저씨' 와 결혼을 선택하여 그들의 대공황시절에 막을 내리게 되지만 대학 또한 망설이게 되는데 친구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고 행운의 여신의 미소를 보듯 장학생으로 발탁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 자신보다 더 대단한 친구들을 보고 좌절할즈음 해군에 입대를 하게 되고 그토록 어렵고 무서워 하던 수영을 간단하게 배우게 되면서 그는 삶의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수영은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두려움은 다루는 해군의 원칙은 그것을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었다.훈련 교관은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했다.' 자신이 물을 무서워 한다는 것을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여 못하던 수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술 덕분이지만 비행술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가 '최고' 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서 그의 삶은 활짝 피었지만 여자만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미미와 밀고 당기면서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들이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고 어머니 또한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린시절부터 외삼촌내 집에서의 더부살이며 학교에서의 이야기며 여동생 도리스와의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재미와 감동을 준다. 자서전이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소설 한 편' 을 읽고 있는 기분이고 대공황시절을 잘 견디어내는 한 가족사의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의 이야기가 약간 지루하가 싶을 때 도리스의 이야기는 웃음을 '빵' 터지게 하니 정말 웃음과 감동이 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 하루는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를 팔아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내가 투덜댔다. '엄마의 아빠가 그 재산만 찾았어도 내가 이 고생을 안 해도 될 텐데.' '오빤 그런 헛소리를 믿어?' 정말 현실적인 동생이다. 감성적이며 소심한 오빠 러셀에 비해 현실적이며 그녀 또한 어머니처럼 강인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늘 ' 에드윈 아저씨처럼 네 이름이 이렇게 또렷이 인쇄되어 나오면 그땐 너도 출세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러셀의 출세를 위해서는 모든 다 할 수 있는 '모성애' 를 보여 주었다. 자서전이라기 보다 다르게 보면 어머니의 성공한 아들을 키워낸 소설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아버지없이 대공황시절을 견디어 내야 했던 가족 이야기와 그의 성장기는 자신은 철저하게 외로웠지만 자식을 위하여는 '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되고야 만다는 믿음으로 반평생을 살아오셨다.'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또 그렇게 살아 오셨기에 러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는 말처럼 꿈을 꾸면서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러셀의 성장기' 는 자식을 키우는 내게도 '지침서' 와 같은 책이 되어 주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어머니가 그러하지 않을까만은 오로지 자식만 바라보며 한 길을 가듯 하셨던 반듯한 어머니가 있어 그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았을까.대공황인 어려운 시절을 살아 오면서 어른들에게서 일찍부터 세상을 배운 러셀, 지금의 아이들이라면 흔들릴 수 있는 환경인데도 자신의 꿈을 향햐여 올라 갈 수 있는 조력자인 어머니의 힘을 바탕으로 흔들림없이 성장기를 잘 극복한 그의 이야기는 꼭 딸들에게도 읽어보라 권하고 싶어졌다. 자서전이 아닌 '성장기' 를 극복해 나간 그와 가족들의 감동과 재미가 있는 이야기는 모든 힘의 근본은 '가정과 가족' 에서 온다는 것을 한번 더 느끼게 해준 책이다. 어렵다고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포기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되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미래는 꿈 꾸는 자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좋은 책이다. 그 후의 이야기가 <좋은 시절>이라는 후속편으로 나와 있다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삶이란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새해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듯 연말에 읽게 됨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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