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선생님을 두 번 만났다. 처음에는 주말 도서관 강좌에서, 두번째는 평일 저녁 도서관 강좌에서. 최근 알라딘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한겨레21: 페미니즘*민주주의 특강>에
참석하고 싶었으나, 아… 수요일 저녁에는 시간내기가 어려워
포기하고 말았다. 두번째 평일 저녁 강의에는 2-30대의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참석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한겨레 특강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주말 오후의 첫번째 강의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정희진 선생님은 강의 주제였던 “엄마, 페미니즘, 인문학”의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방대한 주제인지, 왜 나에게는 이렇게 어려운 강연만 주어지는지에 대해 잠깐 언급하시고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참석자들에게 물어보셨다. 한 분이 손을
드시고는, 나는 그냥 정희진이라는 사람 때문에 왔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시라고 말씀하셨다. 앳되 보이는 학생은 페미니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참석했다고
했다. 적극적이지만 소심한 나는, 크게 말하지 않는 나는, 3년치의 용기를 싹싹 긁어 모아 손을 들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큰애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전업주부인데요. 최근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부끄럽다, 이 말이… 공부한다 말하기에는 너무 공부하지 않는 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전업주부와 페미니즘이 만나지지 않아요. 시간 많은 여자들의 한가한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해서 자꾸 위축됩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전업주부와 페미니즘이 만나지지 않는다,에서 울컥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집중한 가운데 무언가를 말한다는
데서 긴장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전업주부와 페미니즘
때문이라고는, 그 둘이 갈등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열정적이고 시원한 강의였다. Meta gender가 젠더에 기반하되 어떻게 젠더를 넘어설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셨다. 2-300년 정도 계속되어 온 인종, 계급의 문제보다 더 근원적이고
역사가 오래된(?) 성별의 문제가 어떻게 ‘갑을’관계의 모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구체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처한 ‘여성’이라는 위치
때문에 여성이 성별 이데올로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앎은 위치성에 의해
결정되기에 그러하다고 말씀하셨다. 강의 도중 몇 개의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 한 권, 한 권 아름다울 뿐더러 두껍고 어려워
보인다. 일단 도서관에서 한 권 빌려왔는데 외모가 후덜덜하다.
<괴델, 에셔, 바흐> <천재를 키운 여자들>, <세계 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문명과 전쟁>, <파시즘의 대중 심리>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의 두 기둥은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에서는 절망조차 사치였다. 언젠가 만나야
할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은 미루고 싶은, 그리고 못 본
척 하는 이름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마침 주말에 읽었던 책에는 프로이드가 등장했다.
As
the eminent psychoanalyst Clara Thompson put it : Freud never became free from
the Victorian attitude toward women. He accepted as an inevitable part of the
fate of being a woman the limitation of outlook and life of the Victorian era. …
The castration complex and penis envy concepts, two of the most basic ideas in
his whole thinking, are postulated on the assumption that women are biologically
inferior to men.” (125p)
결국 만나게 되어 있고, 언젠가 만나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만나면 반가울지 괴로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일단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를 5번 정도 읽고 나서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