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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는 안 되지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사노 요코의 특별한 솔직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녀의 책은 손에 잡으면 놓기가 어렵다. 어제는 이런 단락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나도 연애를 했다. 나 자신이 멋있어진 기분이었다. 단순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에 물었다.
“나, 예뻐?”
“얼굴 같은 거 난 신경 안 써.”
하고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기쁘고 분했다. (<그 사람>,18쪽)
나는 기쁘면서 분했다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콕 질려 그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었다.
나는 기쁘고 분했다.
<응답하라 1997>의 <제10화 당신이 좋은 이유>에서
호야가 서인국에게 왜 정은지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호야는 어렸을 때부터 봐서, 가까이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서, 이런 식의 대답을 예상했던 것
같다.
서인국이 말한다. 이쁘잖아.
호야는 뭔 소리냐며 서인국을 다시 바라보고.
서인국이 다시 말한다. 이쁘다. 내
눈엔.
안 예쁜 여자에게 (거짓말로라도) 예쁘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도 있을테다. 그 말을 해야한다고 해서, 여자친구에게, 애인에게, 아내에게 억지로 예쁘다는 말을 한다는 것도 좀 웃긴 일이다. 모두 다 예쁠 필요도 없고, 모두 다 예쁠 수도 없다. 김태희는 예쁘고, 한가인도 예쁘고,
수지도 예쁜데, 세 명은 객관적으로 예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을 두고 ‘예쁘다’고 할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쯔위를 말할테고, 설현을 생각할 테고, 김소현을 떠올리겠지만, 아무튼 이 사람들은 다 예쁘다. 좋겠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만나는 사람들 중에 예쁜 사람은 많지 않다. 경험으로 추측하건대, 고등학교 한 반에 한 명, 그러니까 4-50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그 애를 지칭할 때, “아, 걔, 3반에 예쁜 애?”라고 하는 애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셈하면, 50명 중에 한 명 정도가 객관적으로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예쁜 사람일 테고, 나머지 사람들은 예쁜 사람은 아닌 거다. 귀엽기도 할 테고, 섹시하기도 할 테고, 멋있기도 할 테지만, 아무튼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거다.
난 사랑에 빠졌을 때, 남자친구가, 애인이, 남편이, 네가 예뻐서 좋다고. 네가
좋은 이유는, 네가 예뻐서라고 말했을 때,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은 여자들의 웃음이 뭘 뜻하는지 알 것 같다. 자신이 나름 괜찮고,
매력도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 생각해도 예쁜 것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자신의 남친이, 애인이 자신에게 너가 예쁘다, 나는 네가 예뻐서 좋아,라고 말한다면, 그 남자는 콩깍지가 씌었다는 거고, 여자는 그걸 알아챘다는 거다. 내가 예쁘지 않다는 걸 나도 알고 있지만, 네가 나를 예쁘다고 하는
걸로 봐서, 예뻐서 좋다고 말하는 걸로 봐서, 너는 나한테
반했구나. 나한테 반했어.
그 사람<이 문장의 ‘그 사람’은 너무너무 예뻐서 지나가는 남자 여자가 모두 돌아보던 사람, 샤노 요코가 그 미모를 높이 칭송했던 여자다>은 내가 연애한
사람과 결혼했다. 나한테 “얼굴 같은 거 신경 안 써”라고 말한 사람과. 난 울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아 그래, 어쩔 수 없지, 글쎄 그렇게 예쁜걸 뭐. 게다가 다정한 눈을 하고 있었는걸. 그러고 얼마 지나서 울었다. 아주 조금. 아무도 밉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쓸쓸해서 울었다. (21쪽)
그 다음 이야기는 20년후의 일이다. 샤노
요코는 너무나 예쁜 그녀와 그녀와 결혼한 자신의 옛 애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왜 사노 요코는
눈을 감고 기둥 뒤에 숨었을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