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여드름 치료, 영어 학습법의 공통점은, 이것만은 확실하다는 성공 비법이 모든 사람에게
두루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다이어트법이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체질, 다른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일 수 있다. 특정한 여드름 치료법이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를 발휘해 도자기 피부, 아기
피부의 기쁨을 선사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난 비용을 치루게 하는 ‘밑 빠진 독’이 될 수도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있지만 특별한 성공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회화, 영어문법, 영어작문, 비즈니스
영어, 유학 영어, 취업 영어등 각 분야 영어책의 범람 속에서
영어학습법 또한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공한 사람이 들려주는 성공 비법이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부족한 것은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마음과 자세이건만, 일단 책을 집었으니 끝까지 간다. 최근 가장 핫하다는 영어학습법 책을 읽었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영어학습법
책도 제목이 중요하다. 제목이 책내용의 반 이상을 이야기한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저자가 주장하는 영어공부의 비법은 ‘외우기’이고, 얼마만큼이요?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책 한 권’을 외우라고 주문한다. 외우는 책의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웠다는
게 중요하다.
지은이 김민식은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나와 한국 3M에 영업직으로 입사했다가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을 거쳐, MBC 공채로
들어가 예능과 드라마 연출을 하고 있다. 시트콤 <뉴논스톱>과 <내조의 여왕>등이
대표작이다. 영어학습 책을 쓰기에 아주 좋은 이력이다.
대부분의 영어학습 책이 그러하듯,
1장에서는 영어공부의 필요성과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2장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외워라’, ‘하루 10문장만 외워보자’, ‘회화 암송은 드라마 연기하듯이’ 등의 저자 팁이 쏟아진다. ‘어떤 책을 외우면 좋을까’에서는 문성현의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을 추천한다. 3장은 짬짬이 시간을 활용하는 법, 4장은 책 한 권을 외운 후, 미국 드라마, 어린이 영어책, 영어원서, <TED>
강의 등을 통해 놀면서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태도다.
영어공부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영어를 공부해야만, 영어를
잘해야만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저자로서는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가 ‘지독한 영어 공부’였다는 말이다. 이
세상 무슨 일이든, 일정 정도 이상의 수준에 오르는 일은 어렵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영어가 또 하나의 국어 대접을 받는 나라에서, 공대 출신의 순수 국내파가 영어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면, 스스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얻게 되는 건 당연하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문단을 옮겨본다.
책을 읽고도 암송법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너무 자책하진 마세요. 대부분이 그래요. 기껏 돈을 주고
책을 샀는데, 막상 책 한 권을 못 외워서 아쉬울 분들께도 뭔가 위안을 드리고 싶네요. 괜찮아요, 영어공부를 하지 않아도.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굳이 힘들게 영어책을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영어 공부를 안 하더라도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달성하셨다면 큰 선물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
‘아이의 영어 교육을 위해 굳이 비싼 조기 유학을 시킬 필요는 없겠네’하고 느끼셨다면 이
책의 선물 중 가장 큰 걸 받으신 셈입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그것이거든요. 아이에게 억지로 영어를 가르치지 마세요.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자유로이
놀도록 해주세요. …
둘, ‘언젠가
이민이든 이직이든 영어가 꼭 필요한 시기가 오면, 그때 이 책에서 일러준 대로 하면 되겠네’하고 미루셔도 됩니다. …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세요. 영어는 미뤄도 됩니다.
셋, ‘음,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가끔 재미있었어’하고 느끼셨다면 저도 기쁩니다. … 영어 공부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잠깐이라도 즐거우셨다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281쪽)
그러니까, 이 책은 291쪽 전체를 통해 ‘영어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방식’으로 영어공부법을 설파하고 있지만, 281쪽에서 283쪽을 통해
현재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위해 영어를 미뤄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 자체는 확실한 작은 결심의 의미로, ‘한 권을 통째로 외워주마!’하며
1년 전 구입했던 책을 이 페이퍼에 걸어놓고 나는 유유히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그렇게 스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