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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평점 :
휴일의 평화
심보선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전에는 평화로웠습니다
조카들은 「톰과 제리」를 보았습니다
남동생 내외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여동생은 연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조금만 늙으셨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후 또한 평화롭습니다
둘째 조카가 큰 아빠는 언제 결혼할거야
묻는 걸 보니 이제 이혼을 아나봅니다
첫째 조카가 아버지 영정 앞에
말없이 서 있는 걸 보니 이제 죽음을 아나봅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저녁 내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부재중 전화가 두 건입니다
아름다운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혼내다 보면 아이는 자신이 혼나고 있는 상황이 억울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 동안 자신에게 불합리했다고 여겨졌던 일에 대해 눈물로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둘째가 한참 혼나는 와중에 “그럼, 엄마는 왜 어른인데 아빠한테 어린이날 선물 받어?”라고 묻는 게 그런 예다. 둘째를 혼낼 때는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신을 집중하고 대답했다. “그건, 아빠가 엄마한테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하니까 그렇지. 엄마는 아직 철이 안 들었어. 엄마는 아직 어린이야. 그러니까 선물을 받는 거지.”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