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래에게 창비청소년문학 142
주민선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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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시작을 나는 이병한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이 기술발전, 인공지능, 영생불사, 인류의 현재와 미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이 시리즈의 시작점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시작은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이 두 편의 영화였다. 갖은 고생과 고초 끝에 취업에 성공한 이병헌이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장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전에 해오던 일을 계속하는 장면. 기계화와 자동화 물결이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켰는지를 그려냈던 박찬욱의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혁명을 통해 만들어가고자 했던 꿈들이 현실과 부조화를 이룰 때의 난감함이 블랙 유머로 표현되었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은 계속된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이길 바라는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어떠해야 하나.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그에 대한 답은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고, 그 인식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적확하고 명확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떠한가에 대한 진단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생생하다. 우리 앞에 도달하지 않은 미래가 과거와 현재의 조합으로 만들어지고, 우리 사회에 대한 새로운 상을 만들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세상은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처럼 존재한다.

내 시리즈는 이제 미래 ‘읽기'로 간다. 첫 번째 소설은 주민선 작가의 『나의 미래에게』이다. '피터팬 바이러스'라 불리던 전염병의 창궐로 어른들이 모두 죽고 아이들만 남게 된 세계. 열병을 앓으며 죽을 뻔했던 미아를 구한 건 언니 미래였다. 엄마, 아빠를 비롯한 모든 어른들이 죽게 된 상황, 적대적인 환경의 도시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된 미아와 미래는 전염병 이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댁을 생각해 낸다. 아궁이와 우물, 밭 등 옛날식 삶의 방식이 가능한 남쪽의 할머니 댁으로 가기 위해 자매는 집을 나선다.

낯선 사람이 죽기 전에 남긴 물품을 통해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던 미아는 그의 편지에 적힌 대로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에 대해 마음에 새긴다. 작은 다툼으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아이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 일원으로 편입된 미아는 그곳에서 언니의 그늘 없이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성장해나간다. 언니와 재회하는 기쁨도 잠시, 자매는 집단 환각에 빠진 듯한 종교 집단을 마주하고, 의지를 제어하는 힘에 맞서며 그곳을 탈출하려다 귀중한 무언가를 그곳에 남겨 둔 채 탈출에 성공한다. 할머니 집에 거의 도달했을 즈음, 미아 앞에는 새로운 시련이 나타나고, 이제 미아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어른들의 퇴장으로 모든 것이 0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남겨진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생존 법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맞춰 생활하게 된다. 생존만이 중요한 세상에서 남을 향한 배려나 친절은 오히려 사치에 가깝게 느껴진다. 심각한 병에 걸렸거나 공동체 유지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유기되고 방기된다. 1인분의 몫을 해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양식도, 보호도, 돌봄도 없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미아는 낯선 이웃의 편지를 기억한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채 베풀어진 친절, 누군가를 돕기 위해 먼저 내민 손.

미아와 미래의 관계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동경과 질투의 마음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다툼과 싸움 속에서도 끝내 내칠 수 없는 자매간의 그 무엇에 대해서는 나는 여전히 모르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고, 다시 만나는 그 어떤 마음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여기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아? 식물이 뒤덮은 도시에서 내가 유도했던 대로 셋이 평화롭게 끝내는 게 더 나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

"언젠가는 분명 오늘을 후회하겠지. 그때 끝냈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날이 올 거야. 하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날도 있을 거야. 살아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날도 반드시 있을 거야."

영조와 시선을 맞춘 채 나는 내뱉었어.

"그러니까 후회하더라도 나는 계속 살아 볼 거야." (377쪽)

삶은 끈질기고, 매몰차다. 모멸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삶이고, 끝내 모른척하기 어려운 것이 삶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주는 기쁨은 어쩌면 삶이 다해 가는 순간에 더 확실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은 소중하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고 또다시 이어지는 반복되는 삶, 지겹고 가끔은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삶. 오늘이 그런 삶이고, 내일이 또 그런 삶의 한 조각이다.

주민선 작가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표지에서부터 흥미로웠는데, 제목에 '미래'가 있어 나의 '미래' 시리즈에 적합할 것 같았다. 명료한 문장과 매력적인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오히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친절한 편지의 주인공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됐다. 그 친절한 사람,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그 친절한 사람이 작가님을 많이 닮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부쩍 책을 안 읽는 우리집의 성인 & 아가들에게도, 책읽기를 좋아해서 '어떤 책이 재미있어?'라고 묻는 친구들에게도 자신 있게 권할 만하다. 작가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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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5-12-26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정값이 달라서 그런 듯해요, 자매. 이 사람과는 도의적으로라도 영원히 헤어질 수는 없는 관계라는 암묵적 동의에 함몰…ㅋㅋㅋ 약간의 동지 의식도 있죠.
그걸 벗어나는 사람은 가족에서 떨어져나갈 수 있지만 그건 정말 완전 완벽한 떨어짐이어야 가능하다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 자매는 나에게 너무 잘 하거든요. 저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잘 한다’는 말의 의미를 진중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나무쟁반 한 모서리가 유난히 어여쁩니다.

단발머리 2025-12-26 17:57   좋아요 1 | URL
제 친구는 언니가 여럿인데, 그 언니들이 다 엄마에요 ㅋㅋㅋㅋㅋㅋ 그니깐 엄마가 넷인 것이며ㅋㅋㅋㅋ힘든 시간도 많겠죠. 형제는 모르겠지만 자매는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는 보거든요. 그 무거움과 편안함을, 이 작가는 아주 잘 보여줍니다.

방학하고 첫 외출이었는데, 비가 왔어요. 제일 가까운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리저브여서 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접시가 예쁘네요^^

다락방 2025-12-29 0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을 보니 [파리대왕] 이 생간나는데요, 파리대왕은 어두운 버전이었다면, 이 책은 좀 따뜻한 버전이 될 것 같아요. 저는 단발머리 님과 관심사가 다르지만, 그러나 다른 관심사를 가진 단발머리 님에게는 관심이 많으므로, 단발머리 님의 글읽기가 참 좋습니다.

단발머리 2025-12-29 21:39   좋아요 0 | URL
저는 [파리대왕]을 읽지는 않았어요. 아직~ 이라고 하고 싶네요 ㅎㅎ
저와 관심사가 다르지만 저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는 다락방님의 배려와 애정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옵니다~~

독서괭 2025-12-29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자신있게 추천하시는 책이라니! 재밌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주는 이 페이퍼 너무 좋네요 🥰 후회하더라도 계속 살아보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어요. 특히 아이들이…
단발님은 사진도 참 잘 찍으시는군요. 저 오늘 두부과자 만들었는데 사진 찍으니 무슨 고기전 같아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5-12-29 21:42   좋아요 1 | URL
어른들이 모두 죽게 되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청소년이거든요.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더 원초적인 세계를 상상한 모습일 수도 있구요. 저는 좋게, 아주 잘 읽었습니다^^
14-5장 찍어서 한 장 남았습니다. 독서괭님표 두부과자 보고 싶은데~~ 고기전이라도 환영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