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5년 4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128/pimg_7981871741352424.jpg)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장 20-23절)
어떤 집단이건 최고사령부는 하나만 있으면 될텐데 인간의 뇌에는 무슨 이유로 사령부가 두 개나 존재하는 걸까? 캘리포니아 공과대 교수인 로저 스페리는 좌뇌와 우뇌가 완전히 같지 않으며,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밝혀냄으로써(67쪽), 독자적인 두 개의 힘에 의해 지배되는 뇌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더하여 ‘분리된 뇌의 역설’이라는 소제목 아래 이어지는 다양한 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상적인 사람이 무언가를 생각할 때, 좌뇌와 우뇌는 상호보완적이지만 최종결정을 내리는 쪽은 우뇌가 아닌 좌뇌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의지가 육체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왼손(우뇌의 지배를 받는 손)이 자신의 욕구와 상반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68쪽)
하나의 뇌 안에 두 개의 다른 정신이 공존하는 것, 고유한 인격과 욕망 그리고 자아인식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체에 대한 가설은 ‘의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 역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의식을 이렇게 정의한다.
의식이란 목적(음식과 집, 그리고 짝 찾기 등)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변수(온도, 시간, 공간, 타인과의 관계 등)로 이루어진 다중 피드백회로를 이용하여 이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77쪽).
또한 인간 의식의 특수함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시공간 의식 이론space-time theory of consciousness’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가장 낮은 단계의 의식을 지닌 ‘0단계’ 개체는 움직임이 전혀 없거나 극히 제한된 운동만 할 수 있다. 이 단계의 대표적 사례로 자동온도조절기를 들 수 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 중앙신경계를 보유한 생명체의 의식은 1단계에 해당하며 대표적 사례로 곤충, 파충류를 들 수 있다. 그 다음 단계인 2단계 의식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형을 만들 때 공간과 함께 다른 개체까지 고려하는 수준의 의식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체 수’와 ‘각 개체 사이에 감정을 교환하는 방법의 수’를 기준으로 2단계 의식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으며 감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8-9쪽, 346쪽)
인간 의식이 특별한 이유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내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80쪽). 인간은 두뇌를 통해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체나 사건을 상상할 수 있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의식이 다른 개체 혹은 동물의 의식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시공간 의식이론이 옳다는 가정하에 자아인식(自我認識, self-awareness)에 대한 검증 가능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데, 즉 자아인식이란 자신이 등장하는 미래모형을 만들어 시뮬레이션하는 행위를 말한다(96쪽). 이에 따르면, 의식은 두뇌의 하부단위로부터 형성되며 각 단위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데 우리의 의식은 이 복잡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매끄럽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외부에서 어떤 방해가 들어와도 ‘나’라는 존재로 느낀다는 것이다.
하나로 통일된 ‘나’라는 느낌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의식 속에는 서로 경쟁하면서 종종 모순까지 일으키는 여러 경향이 혼재되어 있지만, 좌뇌는 모든 불일치를 무시하고 논리의 틈새를 어떻게든 메워서 ‘나’라는 하나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서 좌뇌는 이 세상의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경솔하고 불합리한 변명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것이다. (100쪽)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128/pimg_7981871741352422.jpg)
100쪽을 읽은 후에야 내가 가졌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질문 : 인간의 의식도 물질의 산물인가
답변 : ‘나’라는 통일된 느낌은 좌뇌가 주는 속임이다
이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의식과도 관련이 있는데,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에게 종교적 성향을 부여하는 ‘신 유전자God gene’의 존재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309쪽) 종교적 느낌에 반응하는 능력이 우리 게놈 안에 유전적으로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다.
두꺼운 머리뼈 속에 위치한 뇌라는 기관, ‘나’라는 통일된 느낌을 주는 뇌. 인식 주체로서의 ‘나’에 대한 믿음은 사실 좌뇌의 속임일 뿐이며, 나의 게놈 유전자 속에 각인된 ‘신 유전자’가 ‘신에 대한 나의 믿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라고 느끼는 지금의 ‘나’, 총체적 자아로서의 나,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뇌에게 속고 있는가. 나는 지금 뇌에게 속고 있는가.
뇌과학의 발달로 여러 가지 뇌질환 치료에 대한 호의적인 전망은 현재에도 뇌관련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준다. 환청, 환영 등과 같은 정신분열증과 강박장애, 조울증, 우울증, 알츠하이머등의 질병도 머지않은 미래에 치료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과 더불어 관심을 끄는 챕터는 ‘로봇 의식’에 대한 부분이었다. 현재 인공지능은 두 가지 기본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형태인식pattern recognition과 상식common sense이 바로 그것이다.(341쪽)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로봇도 컵이나 공처럼 단순한 물건을 간신히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이다. 눈앞의 ‘의자’를 알아차리는데도 엄청난 양의 연산을 거쳐야 하는데, 다행히 데이터베이스에 ‘의자’라는 객체가 들어있어 인식에 성공해도 의자를 조금 돌려놓거나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지면 로봇은 다시 혼란스러워진다고 하니 앞으로도 인간 정도의 형태인식이 가능하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부분은 ‘거울테스트’를 통과한 니코Nico라는 로봇에 대한 이야기였다.(378쪽) 가느다란 골격에 전선이 복잡하게 감긴 형태로, 돌출된 두 눈과 세밀하게 움직이는 두 팔만을 가지고 있는 상반신 로봇 니코는 거울 속의 로봇이 자신임을 알아볼 뿐만 아니라, 거울에 비친 영상으로부터 특정 물건이 놓인 위치까지 정확하게 알아냈다고 한다. 의식을 가진 로봇의 출현이다. 가까운 미래에 로봇들은 의식을 갖게 될 것이고, 인간은 물질을 초월해 정신만으로 존재할 것이다.
물론 외부세계와 단절된 방에 사람을 오랫동안 가둬놓으면 환영을 보게 되는 것처럼, 몸뚱이 없이 역설계를 통해 두뇌만 만들어놓으면 육체를 초월한 정신은 고립감이 극에 달해 정신병이 나타날 수도 있다.(431쪽) 그럼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모라벡 박사가 제안한 방법은 이렇다.
뇌가 없는 로봇을 침대에 눕히고 그 옆에 당사자(당신이라고 하자)가 눕는다. 로봇의사가 당신의 뇌에서 뉴런 몇 개를 추출하여 로봇 안에 있는 트랜지스터에 똑같이 복제한다. 그리고 당신의 뇌와 로봇의 빈 머리에 있는 트랜지스터를 전선으로 연결한 후 이미 복제된 뉴런은 폐기한다. 당신은 몇 개의 뉴런을 잃었지만, 뇌가 로봇의 트랜지스터에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기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제 로봇의사가 당신의 뉴런을 계속해서 로봇의 머리에 복제하고, 복제가 끝난 뉴런은 계속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 당신의 뇌에 있던 모든 뉴런은 말끔하게 제거되고, 로봇의 머릿속에는 당신의 뇌와 완전히 동일한 트랜지스터 뇌가 완성된다. 수술이 끝난 후, 당신은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에 아름다운 외모와 초인적 능력을 보유한 로봇이 멋쩍은 듯 웃고 있다. 이제 당신은 불사의 존재가 된 것이다.(438쪽)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에너지 형태로 떠다니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상한다. 귀신처럼 우주 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존재에 대한 숙고는 외계인의 존재 양식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즉, 우리보다 수천년 앞선 외계인 문명이 존재한다면, 이미 오래전에 육체를 버리고 가장 효율적인 ‘컴퓨터 기반 육체’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으며(486쪽), 우리의 미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견하는 것이다.
마지막 정리 부분은 의외로 훈훈하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 원리Copernican Principle와 인류원리 Anthropic Principle의 철학을 인용하는데, 1천억개의 은하로 이루어진 우리 우주는 ‘팽창하는 우주’의 한 점에 다름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주공간을 목적 없이 떠도는 한 조각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506쪽)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주는 생명체에 호의적’으로 작용하여, 기적과 같은 과정을 통해 생명이 존재하게 했음 또한 강조했다. 여러 차례의 멸종위기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그 자체만으로 매우 값진 것이며,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커다란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511쪽)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128/pimg_7981871741352421.jpg)
끈 이론, 평행우주론의 창시자이며 이론물리학계의 세계적 석학이자 독보적인 미래학자로 손꼽히는 미치오 가쿠의 이 책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나같은 문외한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미있게, 편안하게 비전문가를 배려해서 쓰여진 책이다.
지금의 나는, 칠흙 같은 검은 겨울 밤 밝게 빛나는 저 멀리 별의 일부로서, 내가 곧 별이라는, 내가 곧 우주의 먼지라는 이야기는 참 근사하고 멋지게 들리지만, 그렇게 느끼는 ‘나’의 총체가 뇌의 지능적 속임이라는 건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역자의 글>까지 548쪽을 읽고 내린 결론이 ‘그래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가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내가 충분히 설득되지 못했다는 건 밝혀야하겠기에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둔다.
나는 별의 일부일 수 있겠으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를 의식하고 있는 ‘나’는 바로 ‘나’다.
지금의 ‘나’가 앞으로도 그대로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과거의 ‘나’가 지금의 ‘나’의 일부인 게 확실한 것처럼, 미래의 ‘나’ 또한 지금의 ‘나’와 완벽하게 구별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이고, 또한 미래의 ‘나’일 테다. 아무튼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별에서 온 ‘나’다.
별에서 온 내가 쓴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