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화요일, 샤브샤브집
둘째 아롱이반 엄마 두 사람과 샤브샤브 집에 갔다. 예전부터 만나자했는데, 내가 워낙 엄마들 모임에 안 나가다 보니 2학기 중간이 지난 이제야 만나게 됐다. 샤브샤브집은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샤브샤브를 주문하면 월남쌈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는 곳이라 했다. 샤브샤브를 먹고, 월남쌈을 먹었다.
C엄마가 그랬다. “언니, 주말에 그 농민분 많이 안 됐어요. 의식이 없다는 것 같던데... 그 분이 보성사람이래요.” 가까운 마을사람의 일처럼 백남기씨의 일을 이야기하며 마음 아파했다.
집게와 가위를 들고 야채를 잘게 잘라 샤브샤브 냄비에 넣고 있던 S엄마가 물었다. “으응, 그래요? 근데, 언니, 그 분은 왜 거기 가신 거예요? 그 분은 왜 시위를 하신 거예요?”
냄비에서 건진 소고기를 호호 불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 목소리가 안 나왔다. 목이 메여서가 아니라, 순간 사리에 걸려서.
“농민, 농민 운동하시던 분이야.”
나는 다시 고개를 접시에 처박았다. 고기를 먹었다.
2. 2002년 겨울, 사무실
점심을 먹고 들어왔더니, 부서 막내가 작은 플라스틱 저금통 두 개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언니, 나 이거 받아왔다.”
“어, 그거, 노무현 후보 후원금 모으는 희망돼지네. 어디서 받았어? 나도 받고 싶은데...”
“아니, 나 그냥 잔돈 모으려고 받아왔지.”
“잔돈 모으려고?”
꼭지가 확 돌았다. 그 때부터 10분간 귀여운 부서 막내에게 할 소리, 못할 소리를 퍼부었다. 나는 그 애가 선거 때마다 엄마에게 만원을 받고 여당후보, 1번에게 표를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정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순간, 그런 모든 사실들이 내 분노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예전에도, 지금도, 나의 사랑, 내가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그 애절하고도 불쌍한 선거운동을 그런 방식으로 방해하는 그애의 무심함을 나는 참아낼 수가 없었다.
3. 다시 샤브샤브집
처음에 보성이야기를 꺼낸 C엄마도, “언니, 그런데 그 아저씨는 왜 거기 가신 거예요?”하고 묻던 S엄마도 모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S엄마는 부서막내처럼 정말 몰랐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물어본거다. 그 사람들이 거기에 왜 갔는지, 살인기구라 할 만한 물대포에 왜 맞서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정말 그냥 알고 싶어서.
그 분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농민이 노동의 대가를 정당히 받을 수 있도록 싸우는 분들이라고, 해고가 쉬워지는 노동개악에 반대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거라고, 편향된 단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기 위해 겨울바람에 맞서 있던 거라고, 그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는 거라고, 나는 말하지 못 했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흥분하게 된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잘 살게 하기 위한,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 살기 위한 방법이 있는데, 사람들은 정확히 그 일에 반대하는 정당에 투표를 한다.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주고,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다. 세월호 침몰사건과 같은 비정상적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은 건재하다. 국정화 시도 같은 비상식적 상황에서도 37%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 나라가 그렇다.
그렇다면, 모르는 사람, 몰라서 묻는 사람, 몰라서 희망돼지에 동전 모으겠다는 사람에게 이야기해줘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17세, 18세, 19세까지의 학력이 평생을 결정하는 제도를 어떻게 하면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힘으로, 손으로 애쓰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이다.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다면, 그런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흥분해서 부서막내에게 얼굴 빨개지도록 소리를 지르던가 아니면, 샤브샤브집 앞접시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발끈하지 않으면서도, 비판적인 자세가 아니면서도, 정확한 사실 그대로를 전해줄 수는 없을까. 내 입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내 입장을 주장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는 없을까.
“그 아저씨는 왜 거기 간 거예요?”라는 S엄마의 물음이 계속 생각나서, 나는 일주일이 불편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 처박고 샤브샤브 먹던 내 모습 때문에 일주일이 미안했다.
용감하고 의연한 시민이자 농민, 백남기님의 쾌차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