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야 쥐야?“를 아침저녁으로 이틀간 써먹고, 그리고 그 이틀 안에 이 책을 다 읽었다.

(인간이야 쥐야? http://blog.aladin.co.kr/798187174/7507223)

근 두세달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빠른 속도다. 이 놀랍고, 재미있고, 웃긴, 말 그대로 날 웃게 하는 이 기발한 책을 왜 읽지 않으려 했는지, 역시나 책은 <책소개>만 믿을 일이 아니다. 직접 읽고, 직접 확인하시라.

소설은 우리 삶에 한 면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원인, 하나의 결과로 단정 짓기에는 인과관계가 너무 복잡하다. 어떤 경우에는 원인이 하나 이상일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인과관계가 적은 요소가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소설도, 인생도 간단하게 말할 수 없다.

2-3줄의 줄거리로 간단히 요약될 수 있는 소설이라면, 그것 또한 좋은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 싶다. 간단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401쪽의 페이지를 오직 한 사람 목소리, 오직 한 사람의, 독백으로 채우고 있다. 그는 말하고 또 말한다.

이 소설에서 관심이 가는 첫 번째 이야기는, 물론, 아무렴, 당연히, ‘성적 묘사’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으려 했던 이유이고, 어쩌면 이 책을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28페이지 ‘인간이야 쥐야?’ 즈음에서, 나는 이 책이 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사춘기 소년의 자위행위에 대한 상당한 양의 섬세하고 창조적인 묘사(책소개) 때문에 발표되자마자 문제작으로 지목되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말하는바, 이 책은 그렇게 야하지 않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이 책이 야하지 않다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게 내가 요즘 시간이 좀 된다.), 책 속에 드러난 성적인 집착은 ‘소년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한때 소녀였으며, 현재는 성인 여성인 내가 읽기에, 이러한 과도한 성적 집착은 이해되기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이해되지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에 대한 묘사는, 내게 ‘야한’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다.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금 웃기다. 화장실로 뛰어드는 앨릭스가 안타깝다.

두 번째로 이 책이 야하지 않은 이유는, 역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야한 장면이 제시되는 방식이 사춘기 소년이 원하는 대로 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405쪽, ‘옮긴이의 말’). 엄청나게 야한 책이 나왔다는 소문에 종로서적까지 진출, 자신과 친구의 용기를 그러모아 구입했던 책, 기쁨에 들떠 책을 들고 집에 왔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역자는 그 이유를 ‘실망’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기대와 달리 야하지 않았고, 사춘기 소년이 원하는 방식대로 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너무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은 사춘기 소년이 읽기에도 이 책은 야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론은, 이 책은 야하지 않다. 이 책은 빨간 책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들었던 제일 중요한 의문은 이것이다.

자식에 대한 강박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 이것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가.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녀이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장남과 결혼했다. 나는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낳았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자랐다. 이 전제는 이 책을 읽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것, 내가 한국에서 자랐다는 것, 내가 아이 둘의 엄마라는 사실 말이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책으로도 쓸 수 있어요, 라고만 말하고 일단은 지나간다. 우리 엄마는, 내 엄마는, 보통의 평범한 한국 엄마다. 자식밖에 모르고, 희생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으며,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신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좋은 것을 자기 입에 넣는 것을 아까워하며 사셨고, 그리고 한평생을 개미 저리가라 부지런히 사셨다. 하지만, 결혼한 지 10년 이상 된 딸의 생활을 ‘간섭‘하신다. 친히, 몸소.

그래도 앨릭스의 어머니, 이 분만큼은 아니다.

“얘가 프렌치프라이를 먹는대요.”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마침내 ‘심장이 튀어나도록 울려고’ 주방 의자에 주저앉습니다. “학교가 파한 다음 멜빈 와이너하고 가서 프렌치프라이를 처먹는대요. 잭, 당신이 말 좀 해요. 나는 쟤 어머니일 뿐이잖아요. 그러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쟤한테 얘기 좀 해요, 앨릭스,” 어머니가 주방을 살금살금 빠져나가는 내 쪽을 보며 힘주어 말합니다. “내 귀여운 아이야tateleh, 시작은 설사지만, 끝은 어떤지 아니? 너처럼 배가 민감한 애는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알아? 볼 일을 보기 위해 비닐봉투를 차고 다녀야 돼!” (51쪽)

 

아들이 학교가 끝나고, 프렌치프라이를 사 먹었더니,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한다. 남편에게 자식의 비행을 고자질하고, 자식에게 경고한다. “나중에는 볼 일을 보기 위해 비닐봉투를 차고 다녀야 돼!”

유대인 가정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유대인들에게 불편하고, 가차없이 그들의 위선을 꼬집는 통에, 로스는 유대인 사회에서 ‘배반자’로 불리기도 했다. 미국 사회의 제일 밑바닥에서 시작한 이민 1세들의 삶이란 피곤하고 고단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자식의 ‘성공’이었다. 이민 2세들 또한 그러한 부모의 바람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부모의 희생이 있었기에, 그들이 대학으로, 주류 사회로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의 간섭은, 자식의 삶에 대한 집착은 멈춰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식은, 언제나 ‘자식’, 여전히 ‘아직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저는 서른셋이에요! 뉴욕 시 인간기회위원회의 부감독관이라고요! 법대를 일등으로 졸업했어요! 기억나세요? 내가 들어간 모든 학교를 다 일등으로 졸업했다고요! 스물다섯에 이미 미합중국 하원 소위원회의 특별 법률 고문이었다고요, 어머니! 미국 하원에서 말이에요!”

..... “하지만 우리한테는. 우리한테 넌 여전히 아기란다, 얘야.” 그다음에는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소피의 유명한 소곤거림이죠.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귀를 쫑긋 세우지 않아도 다 들을 수 있는 소곤거림입니다.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에요. “아버지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그리고 뽀뽀해드려. 네 뽀뽀 한 번이면 세상이 바뀔 거야.” (163쪽)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집착을 견디지 못한 로널드 님킨.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거절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견디지 못 했고, 부모들은 죽어버린, 죽음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했던 그를 이해하지 못 한다.

로널드 님킨의 자살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그의 어머니가 발견한 유서, 그 헐렁한 구속복, 깨끗하게 빨아 빳빳하게 다림질한 멋진 스포츠셔츠에 핀으로 꽂아둔 유서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죠.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아세요? 알아맞혀 보세요. 로널드가 자기 엄마한테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뭔지? 한 번 알아맞혀 보세요.

블루멘탈 부인이 전화했어요. 오늘밤 마작할 때 어머니가 적어둔 마작 규칙 좀 가져오래요.

                                                                                                          로널드

자, 마지막 한 방울까지 좋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예요. 착한 아이, 사려 깊은 아이,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행실이 바른 아이, 어느 누구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 멋진 유대인 아이가 바로 이런 아이인 겁니다. 고맙다고 말해야지, 얘야, 괜찮습니다 하고 말해야지, 얘야, 죄송합니다 하고 말해야지, 앨릭스, 죄송하다고 말하라니까! 사과해! 네, 그런데 뭐가 죄송하죠? (177쪽)

 

님킨 부인이 우리 집 주방에서 울고 있습니다. “왜? 왜? 그 아이가 우리한테 왜 이런 거예요? 들립니까? 우리그 아이한테 무슨 짓을 했느냐는 게 아니에요. 아니죠. 절대 그렇지 않죠. 그 반댑니다. 그 아이가 우리한테 왜 이러지? 우리한테!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그뿐 아니라 유명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우리 팔다리라도 내주었을 텐데 말이에요! 정말이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눈이 멀 수 있는 걸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끝 간 데 없이 멍청한데도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이게 믿어지세요? (143-4쪽)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모든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옭죄었기에, 그는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가고, 그리고 쾌락에 탐닉한다. 오랜 전통, 폐쇄적 민족관, 종교의 범위를 넘어 일상을 지배하는 오래된 관습에 그는 반항했다.

하지만, 그가 떨쳐내고자 하는 그 모든 것, 유대인의 코, 유대인의 특별한 생김새, 유대인의 억양을 그는 결코 떨쳐낼 수 없었다. 쾌락에 탐닉하는 그 순간, 집중하는 그 순간, 그는 잠시 그것을 잊어버릴 뿐이다.

로스의 책은 한국에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총 9권이며, 이 중에 『미국의 목가』와 『휴먼 스테인』은 2권으로 출간되었다.

 

 

 

 

 

 

 

 

 

 

 

 

 

 

 

 

뭐, 이런 걸 굳이~~ 하겠지만, 난, 뭐, 이런 걸 굳이! 한다.

오늘의 순위!

유령 퇴장 > 휴먼 스테인 > 포트노이의 불평 > 에브리맨

>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울분 > 굿바이, 콜럼버스 > 미국의 목가

『미국의 목가』가 싫다는 게 아니다. 『미국의 목가』는 제일 훌륭한 작품이며, 동시에 제일 어려운 작품이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40페이지 정도 남았고, 『전락』을 다 읽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진지하게 생각중이다.

네이선 주커먼을 사랑하는 나는, 주커먼 시리즈를 찾아보고 있으나, 이번주 교보문고에서 내가 찜한 이 책 『The Ghost Writer』가 영국에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영국은 참 먼데....

그게 안 되면, 이 책을 구입해야 한다. 재고가 있기는 한 건가. 참, 어쩔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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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5-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울분과 에브리맨은 엄청 좋게 읽었는데 포트노의의 불평은 뭐지..했거든요. 그런데 단발머리님은 포트노이의 불평이 울분과 에브리맨을 앞서네요! 저는 울분>에브리맨>포트노이의 불평 입니다. 아직 다른 작품들은 읽지 않았어요. 집에 있는 게 확실한 작품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와 [휴먼스테인] 이에요. 필립 로스에 빠진 단발머리님 좀 멋져요! 헤헷.

단발머리 2015-05-07 14:29   좋아요 0 | URL
아하.... 이런 거 제가 아주 좋아합니다. 순위. 다락방님 순위가 맘에 드네요^^
에브리맨도 좋았거든요. 근데 근래에 읽어서 포트노이가 더 큰 사랑을 받은 게 아닐까 합니다.
필립 로스에 빠졌어요. 다 읽어갑니다. 신나구요.
9권 다 읽으면 영어로 읽어야 되는데....

10년 만에 다시 생각합니다. 그 때, 영어 좀 열심히 할걸.......

cyrus 2015-05-0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필립 로스의 작품으로 유일한 게 읽은 책이 ‘울분’이에요. 이 책이 2010년인가 나왔을 때 처음 읽었으니 꽤 오래 되었군요.

단발머리 2015-05-07 20:56   좋아요 0 | URL
아... cyrus님은 정말 일찍히 로스를 만나셨군요.
저는 작년말에 로스를 알아서요. 한 작가의 책을 막 찾아 읽는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않은데, 로스 책은 찾아읽게 되네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예요*^^*

AgalmA 2015-05-0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작품 많이 읽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의 주요 정서는 울분과 불만 같더군요.
미국 기성세대와 사회의 부조리함과 억압에 이의를 제기하고 항거하는 목소리랄까...

단발머리 2015-05-08 08:55   좋아요 1 | URL
네~ 저도 Agalma 님과 같은 생각 많이 했어요. 필립 로스를 `유대인 사회를 고발하는 유대인 작가` 로만 한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가끔은 기성세대에 대해서만 항거하는게 아니라, 유대인 자녀 세대에게도 따끔한 일침을*^^*

2015-05-09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2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