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하냐고, 괜찮냐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나라 전체가 패닉상태라고 말했다.

호주에서 전화가 왔다. 어떡하면 좋냐고 했다. 그 쪽에서도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고 했다.

태국에 사는 선교사님이 밴드에 글을 올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눈물난다고 했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밴드에 글을 남겼다. 거기서도 들었다고. 우크라이나 뉴스보다 먼저 나온다고. 어쩌면 좋냐고 했다.

이 나이 먹도록, 여기 이 나라에 살면서, 이 나라 떠나야겠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난 이 나라가 좋다고 했다.

살기에는 말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살인적인 교육제도, 계속 올라가는 물가, 더 많이 올라가는 전세값, 그리고 최근에는 이틀이 멀다하고 찾아오는 초미세먼지. 그래도 나는 우리나라가 좋다고, 서울이 좋다고 했다.

이젠, 그런 말.

못 한다.

다시는.

2.

이 나라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

백화점, 안전하지 않다. 다리, 두말하면 잔소리다, 안전하지 않다. 지하철, 툭하면 고장이다, 안전하지 않다. 이 나라 어느 곳 하나, 안전한 곳이 없다.

딸롱이는 5학년, 아롱이는 2학년이다. 올해 초등 고학년 수련회가 전면적으로 취소되어 울상을 하고 다니는 딸롱이는, 내년에는 수련회를 갈 수 있을 거다. 도대체 몇 번의 수련회가, 수학여행이, O.T.가 남았나. 거기에다가 곱하기 2라니. 가슴 졸일 날들이 얼마나 많이 남았나. 얼마나 많은 날들인가.

3.

가장 힘든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거다.

같이 울고, 슬프고, 억울하고, 원통해하지만. 하지만, 그 후에 달라진 건 없다. 이 나라 수련회 장소 전부를 찾아다니며, 소방 안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소화기는 제대로 비치되어 있는지 살펴볼 것인가. 아이들이 타는 여객선이 정해진 화물만을 적재하는지 확인할 것인가. 아이들이 머무는 숙소가 건축 검사를 제대로 받고 있는, 제대로 된 가건물인지 확인할 것인가. 아이들의 수련회 조교들이 수영이나 제대로 할 줄 아는 안전 교육 수료자들인지 확인할 것인가.

그럴 수가 없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는 없다.

4.

이렇게 울고, 아파하고. 아, 그리고는 잊혀지겠지. 세월호, 그런 사건이 있었지. 모두 잊어 버리겠지. 월드컵, 결정적인 한 골을 기대하고, 환호성을 지르고, 클락션을 울리고, 빨간 옷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오겠지. 그런데, 울고 있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유가족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그들은 아이를 잃었다. 똑똑한 아이, 다정한 아이, 심성이 착한 아이, 그런 아이들을 잃었다.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아이들을, 잃었다.

마음이 약해 보지 않으려 했지만, 손석희님의 ‘편집본이다’라는 말에, 한 아이가 핸드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보았다. 화면은 스틸컷이었고, 음성만 변조된 상태였다.

“야, 배가 왜 이렇게 기우냐?”

“선장은 뭐하냐?”

“우리 수학여행, 큰일났~~~~~~~~~어!”

앳된 목소리, 장난기 어린 “큰일났어!”에서 가슴이 이내 무너져 내린다. 이런 아이들이다. 너무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 아직은 어린, 아이들.

5.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 모두 엄숙한 모드로 오른손을 가슴팍에 올릴 때, 나는 차렷 자세로 서서 ‘국가를 위한 기도’를 한다. “하나님, 이 나라가...”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을 마쳐 충성을 다할 수는“, 없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요즘에는 그 얼마 안 되는 얄팍한 나라 사랑마저 실종 상태다. 실종자는.... 끝내 구조자로 바뀌지 않았다. 얄팍한 나의 나라 사랑은, 실종되었다.

6.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를 위해 가장 많이 애썼다고, 아니 ‘가장’이 아니라면, 그래도 그의 삶을 다 바쳐 애써왔노라고 자신있게 소개할 만한 어떤 대통령님은, 2003년 10월 31일, 제주도민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그리고 2006년 4월 3일 제주 4·3 사건 희생자 위령제에서 “.....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되었던 잘못에 대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충심을 다해 사과했다.

하지만, 국가 전체가 실의에 빠졌을 때, 화사한 하늘색 정장으로 검은색 정장의 오바마를 맞이했던 어떤 분은, 슬픔에 빠진 유가족이 아닌, “국무위원 앞에서” 이전 정부를 질타하는 문장을 좔좔 읽어가며 마침내 “사과”의 말을 했다.

7.

어제는 구역예배에서 집사님이 준비해주신 케이준 치킨 샐러드, 치킨 완자 단호박찜, 호박씨 피자를 먹었다. 먹고 웃고 기도했다. 혼자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치킨 샐러드가 목에 걸렸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렇게 맛있는 거 먹어도 되나. 이렇게 웃어도 되나.

오늘 기자회견에서 유가족 대표분이 말했다.

“.... 자식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저희들에게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자식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부모라니.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그 분들에게 미안하다.

8.

책을 읽지 않았다. 책을 읽지 못 했다.

밥을 하고, 아이를 먹이고, 소풍 간식을 사고, 유부초밥을 싸고, 버스 앞에서 손을 흔들어야 했지만, 책은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며칠은 차가운 바닷 속 아이들 때문에, 그 후에는 차가운 바다 속 자신의 아이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 생각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분들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나만 혼자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그 분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불편한 밤이 계속됐다.

9.

지난 주말에 신랑이 ‘알라딘 노트’를 증정하는 행사를 발견(!)했다. 나는 사두려고 찜해두었던 책 세 권과 신랑이 고른 책 두 권을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했다. 근 열흘 만에, 내게 일어났던 일 중에 가장 신나는 일이었다.

 

 

 

 

 

 

 

 

 

 

 

책 다섯권과 “오늘, 수고했어요.” 알라딘 무선 노트를 오늘, 받았다.

식탁 위에 책을 쌓아두고는, 물끄러미 쳐다본다.

4월,

잔인한 4월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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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4-04-3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어느 정도 잠잠해진 듯하여, 저는 그게 더 슬프고 아프네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빨리 그들 곁에서 위로해주고 싶은데...

단발머리 2014-05-07 09:4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네요.
미안하고, 그리고 너무 슬퍼서, 이제는 화가 나요.

무력한 어른들의 모습, 닮지 마세요.... 하나도 닮지 마세요.

순오기 2014-05-01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잔인한 사월이었어요.ㅠ
스러져 간 꽃다운 아이들에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을 유가족들께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애통하고 비분강개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되는... 우리가 할 일을 찾아야지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단발머리 2014-05-07 09:48   좋아요 0 | URL
요즘엔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그 예쁜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게 어떤 일일까, 하고요.

그런데... 떠오르지가 않아요. ....

saint236 2014-05-0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미안하고, 답답하고...그렇습니다.

단발머리 2014-05-07 09:49   좋아요 0 | URL
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2014-05-0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7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4-05-08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도록 아니, 살아 있는 날까지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이제 그만 유신의 무덤으로 돌아가라고..,,,

단발머리 2014-05-09 08:31   좋아요 0 | URL
아.... 아직도 아이들을 찾지 못한 부모님들 마음이 어떨까요?
어제 저녁에는 KBS 밤샘 항의방문에 지친 모습을 신문에서 봤어요.
계속해서 우울한 하루하루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