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어려운 책이 있다. 이건 어떻게 읽히느냐와는 다른 이야기이다. 읽기엔 어려워도 리뷰 쓰기 쉬운 책이 있는가 하면, 읽을 때는 술술 읽혔는데, 막상 리뷰를 써 볼까 하니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르고, 그냥 멍~한 경우도 있다. 근자에 나를 가장 멍~하게 만들었던 책은 한병철의 <피로사회>. 읽을 때는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구절 구절에, 어머! 나 성경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더니만, 막상 리뷰를 쓸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함, 그 자체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소설 형식의 전방위적 파괴라는 점에서, 철학적 사유가 자유롭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가 너무 아름답다는 점에서, 육체적 사랑에 대한 사유가 구체적으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정치적 압박과 망명 생활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프라하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실, 이 독특하고, 위대하며,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에 대해 무슨 말인가를 덧붙인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읽고, 감동하고, 감격하고, 그리고 놀랄 뿐이다.
칠년 전 테레자가 살던 도시의 병원에 우연히 치료하기 힘든 편도선 환자가 발생했고, 토마시가 일하던 병원의 과장이 급히 호출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과장은 좌골 신경통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대신 토마시를 시골 마을에 보냈던 것이다. 그 마을에는 호텔이 다섯 개 있었는데, 토마시는 우연히 테레자가 일하던 호텔에 들었다. 우연히 열차가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그는 술집에 들어가 앉았던 것이다. 테레자가 우연히 당번이었고 우연히 토마시의 테이블을 담당했다. 따라서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58쪽)
다음 날 아침 수화물 보관소에 짐을 맡긴 뒤 <안나 카레니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프라하의 거리를 쏘다녔다. 저녁에 그녀가 초인종을 눌렀고, 그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책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토마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인 양. (88쪽)
똥은 악의 문제보다 더욱 골치 아픈 신학 문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으며 따라서 인류 범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똥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을 창조한 신, 오직 신에게만 돌아간다. (378쪽)
그러나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프란츠는 강하다. 그러나 그의 힘은 오직 외부로만 향한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약하다. 프란츠의 허약함은 선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프란츠는 사비나에게 결코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전 토마시처럼 바닥에 거울을 놓고 나체로 걸어 다니라고 명령하진 않을 것이다. 그에게 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명령할 힘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폭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있다. 육체적 사랑이란, 폭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176쪽)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서는 여섯 번의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했다. 1984년에 출판됐지만, 2013년 10월 오늘, 내게 쿤데라의 소설이 와 닿기까지 여섯 번의 우연이 있었겠지.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쿤데라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팟캐스트 벙커 1 특강에서 강신주님이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을 추천해 주셨다. 사랑이 시작될 때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거라 하셨다. 반 정도 읽었는데, 그 놈의 반납기일 때문에. <정체성>의 쿤데라에게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여섯 번의 우연이 아니라, 여섯 번의 클릭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