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치킨
첫 아이가 18개월이 되었을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아침 시간이 그렇게나 정신없고 바빴는데, 막상 아이와 둘만 지내려니, 시간은 참 더디게 느릿느릿 흘러갔다. 기준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려 읽어본 최신 육아서에 의하면, 아이들의 어휘력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엄마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중에서도 고급 어휘는 일상언어보다는 '책'을 통해 습득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다. 읽어주고, 또 읽어줬다.
아이와 말할때도 아이들의 언어, 일테면 '맘마'나 '빵빵' 대신 '밥', '자동차'처럼 어른들이 쓰는 어휘를 그대로 사용했다. 나는 원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만의 관객, 내 아이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해대고 또 해댔다. 하다하다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면, 집에 있는 '치킨집 안내지'를 읽어주곤 했다.
"이거 봐. 이건 후라이드 치킨이야. 튀김옷을 입혀서 기름에 튀긴 거야. 가격은 11,000원. 이건 '양념치킨'이야. 이건 '후라이드 치킨'에다가 매콤한 양념을 입힌거야. 가격은 11,000원. 보통은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이렇게 주문하지. 그렇게 하면 12,000원이야."
무슨 중요한 이야기라고,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이야기를, 말 그대로 경청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어휘는 점점 빈약해져갔다. 엄마와 18개월 아이 사이에 할 말이란 게....
밥 먹자, 손 씻자, 책 읽어줄까? 코~자자, 말고 얼마나 많이 있을까.
2. 번역물
우리가 읽는 책들 중 많은 수가 '번역물'이다. 세계 문학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최신의 사회과학서, 경영경제서적 대부분도 번역물이다.
고 이윤기 선생님처럼 (다른 분들도 많이 계실텐데, 이름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외국 작품을 우리말로 감질나게 번역해주시는 분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번역물'에는 '번역가'의 해석이 개입한 상태다. 원작자의 의도가 최대한 반영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최대한'이다.
어휘 또한 마찬가지다. 번역 작업이라는 게, 완벽한 일대일 대응을 통해 이루어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대일 대응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번역가'의 역량에 따라, 독자들은 어려운 책을 쉽게 읽을 수도, 쉬운 책을 어렵게 읽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초고 자체가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한글로 쓰여진 책들이 소중하다. 번역가들의 한글사랑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작가의 의도가 정확히 전해진다는 면에서는 아무래도 '한글로 된 책'들이 낫다.
3. 육박해 들어가다
육박하다 (肉薄--) : 바싹 가까이 다가붙다
나는 이 단어를 강신주의 책에서 처음 보았다. (무식한 건 자랑이 아니라지만, 솔직한 건 자랑이다.^^)
육박하다. 일단 이 단어는 한자어인데, 한자들도 아주 단단해 보인다. 한자사전을 찾아보니, '육'은 3번 뜻, 몸으로, '박'은 8번 뜻, 가까워지다로 해석되는 듯하다. 그래서, 뜻은 바싹 가까이 다가붙다. 소리내어 읽을 때,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도 좋다. 육박하다. 육박해 들어간다.
그래서 인문학을 읽을 때는 그게 시인이든 철학자든 영화감독이든 간에 그 사람의 정신성에 육박해 들어가야 해요. (54쪽)
결국 인문학 고전을 읽는다는 건 나의 삶이 어떤 철학자나 인문학자에 육박해 들어가는 건데, 내가 시를 못 읽어내고 영화를 제대로 못 보고 철학 책을 제대로 못 읽는다는 건 그만큼 내 삶이 심화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55쪽)
철학은 한 사람에게 육박하려고 하는 것인데요. 지금 전문화된 분과를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 그게 철학자의 역할이죠. (61쪽)
저는 그런 걸 고민해요. 언어를 음악적 리듬에까지 육박시키고 싶다는. 좋은 소설가들은 그 리듬이 있거든요. (184쪽)
괴테의 작품을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괴테가 보편적 공감의 구조에까지 육박해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괴테가 괴테다운 것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고요. (214쪽)
인문학은 흉내내는 게 아니라 고유명사에 육박해 들어가는 거라는 것. 그걸 배우고 책을 읽었기에 나름 성공한 거예요. 드디어 이제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이제부터는 제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고요. (215쪽)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도 '육박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하는가 보다. 좋아하다, 좋아하다 보니, 이제는 그가 쓰는 단어도 좋아한다. 이렇게.
그런데, 저번주에는 '고미숙'의 책을 읽다가 이 단어를 또 만나게 되었다.
강의 변경을 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들었는데, 그때 얼떨결에 <춘향전>,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인생행로가 급선회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 원전으로 읽은 고전들은 기묘한 울림으로 내 신체에 육박해 들어왔다. (21쪽)
반가웠다.^^
이제 응용편.
강신주의 모든 책이 내 삶 깊숙히 육박해 들어온다.
강신주는 말한다.
인문학 고전 읽기를 통해 네 삶이 철학자, 인문학자에 육박해 들어갈 수 있도록, 네 삶을 더욱 심화시켜라.
육박해 들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