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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10월
평점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을 부제로 삼는 이 책의 저자는 사이토 고헤이다. 오사카시립대 경제학 연구과 부교수이고,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진보적 저술에 주어지는 ‘도이처 기념상’을 역대 최연소 수상했다. 1987년생이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후 위기는 2050년 전후에 서서히 일어날 것이라 예상되는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의 일이다. 이상기온, 해수면 상승, 가뭄과 폭우, 그리고 폭설. 저자는 점점 다가오는 기후 위기의 원인이 편리함에 대한 추구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을 제국적 생활 양식으로 본다. 제국적 생활양식이란 간단히 말해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27쪽)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이 모든 것. 30쪽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이 끝없는 반성과 간절한 결심의 시간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슬픈 예감이 스쳐 지나간다.
39쪽의 [지역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분석표를 살펴보면 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 중의 많은 부분을 EU 회원국과 미국,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서부터 시작된 자본의 침탈은 이제는 침략이 아닌 투자와 기술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선진국 사회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글로벌 사우스를 희생시키는 외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 외부화와 생태 제국주의를 통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혹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천연자원이 무차별적으로 수탈되면서 그곳의 자연환경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탈성장, 자본주의의 멈춤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혹은 가능하지 않은가를 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멈춤’이라는 극단적(?) 방법 이외에 실현 가능한 ‘타협점’을 찾아보라고 조언할 것이다. 저자는 실현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해결책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지적한다.
UN, 세계은행, IMF(국제통화기금)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등에서 강조하는 ‘녹색 성장’이 지구 환경의 보존과 양립할 수 있는가. 저자는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룀의 측정 결과를 근거로,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손실 등 네 개 영역에서 이미 인류의 경제활동으로 인해 지구 한계를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즉, ‘경제 성장’ 또는 ‘지구 기온 상승 1.5도 미만 억제’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상황(69쪽)과 이산화탄소의 절대적인 양을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 0을 달성해야 하는 ‘절대적 디커플링’을 ‘녹색 성장’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디커플링 : 신기술을 이용해 경제 성장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 몇몇 선진국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경기 침체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따져보면 신흥국의 현저한 경제 성장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효율화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그의 주장 역시 새겨들을 만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우리나라만 거꾸로 가고 있음) 그럼에도 화석연료 소비량은 줄지 않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의 대체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 화석연료에 더해 추가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76쪽).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 성장을 가능케 했던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문제다. (반성 모드 진입) 문제의 핵심은 선진국의 부유층이다(급 안심). 82쪽에는 전 세계 상위 10퍼센트 부유층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절반을 차지한다는 놀라운 데이터도 있다. 실제로 상위 10펀센트 부유층이 유럽인의 평균적인 수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만 해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3분의 1 정도가 줄어든다고 하니(82쪽), 그들의 ‘회심’을 바라야 하는 걸까.
기술 발전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기술 낙관론은 ‘전가’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선진국의 위험물을 신흥국 영토에 매몰하고, 도시의 산업 폐기물을 농촌에 유기하고, 글로벌 노스의 공장을 글로벌 사우스로 이전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긴 분량을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연구에 대한 분석과 자본주의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데 할애한다. 한편으로, 탈성장이 단순히 ‘경제 성장’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구 한계를 주의하면서 경제적 격차 해소, 사회보장 확충, 여가 증대 등을 중시하는 경제 모델로의 전환임을 강조한다. (135쪽) 이에 더해 마르크스 재해석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커먼(common)’ 개념을 소개한다.
'커먼'은 미국형 신자유주의와 소련형 국유화 모두와 대치하는 '제3의 길'을 여는 데 중요한 열쇠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시장근본주의처럼 전부 상품화하는 것도 아니고, 소련형 사회주의처럼 전부 국유화하는 것도 아니다. '제3의 길'인 '커먼'은 수도, 전력, 주택, 의료, 교육 등을 공공재로 삼아서 사람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한다. (144쪽)
수도, 전력, 주택, 의료, 교육의 민영화를 원하는 자본이 얼마나 싫어할 만한 일인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이 재화들을 ‘공공의 이름으로’ 묶어 두다니. 국가의 힘으로도 강제할 수 없는 자본의 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저자는 사회운동을 제시하는데, 그중에 한 가지 예가 ‘시민의회 citizens’ assembly’이다. 영국의 환경운동 ‘멸종 저항’과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이 이들의 성과로 손꼽힌다.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로 구성되는 시민의회의 성원들이 기후 변화 방지를 위해 내놓은 대책들은 얼마나 과격하고 급진적인지. 2025년부터 비행장 신설 금지, 항공기 국내선 폐지, 자동차 광고 금지, 기후 변화 대책용 부유세 도입.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제1세계에 가까운 생활 수준이 지표로 확인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대도시 거주자로서, 현재의 생활 수준을 지속하지 않으면서, 불편을 감수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더란다. 나의 결심을 적어본다.
1) 고기 줄이기 (더 줄일 것이 별로 없기는 합니다만)
2) 덜 먹기 (구입한 식품을 음식물 쓰레기로 만들지 않기)
3) 에너지 절약하기 (물, 전기, 도시가스)
4) 불필요한 소비 줄이기 (옷, 책, 각종 필수품을 가장한 사치품)
5) 차량 운행 덜 하기
하지만, 나 같은 사람 100명이 에코백을 들고 다니고, 매일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보다 더 강력한 해결책이 필요하고, 그 해결책이란 바로 탈성장이며, 그 조치가 2-30년에 획기적으로 추진되지 않는 한, 다가오는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 없다는데. 결국 인류의 운명은 전 세계 상위 10퍼센트 부유층의 합의와 결심 말고는 다른 답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저자의 해답은 이러하다.
1. 사용 가치 경제로 전환 : 대량 생산, 대량 소비에서 벗어나자
2. 노동 시간 단축 :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생활의 질은 높이자
3. 획일적인 분업 폐지 : 분업을 폐지하여 노동의 창조성을 회복시키자
4. 생산 과정 민주화 : 생산 과정 민주화로 경제를 감속시키자
5. 필수 노동 중시 : 노동집약적인 필수 노동을 중시하자 (돌봄 노동)
마지막 저자의 당부가 ‘3.5 퍼센트여 일어나라!’이다. 저자는 이것이 무슨 수치인지 아는가(357쪽)하고 물었는데, 한국의 촛불 혁명을 모르는 그대여. 우리는 안다네. ‘3.5 퍼센트’의 사람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들고 일어나 진심으로 저항하면 반드시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그렇다. 그러한 일은 일어났고, 또 일어날 것이다.
더 큰 범위에서, 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 주목해 보아야 한다. 선진국의 부유층과 일부 국가의 정치 지도자, 그리고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세계 최고 부자들의 결단이 이루어지는 주목해야 한다. 일단, 오늘의 실천은 점심, 저녁 냉장고 파먹기. 이번 주의 실천은 마트 가지 않기. 사 먹는 커피는 이틀에 한 잔으로 줄이기. 세 번째가 제일 지키기 어려워 보이는군. (이런) 마무리는 훈훈하게 정희진 선생님의 글로.
나는 물건을 파괴하지 않는 아류 러다이트 주의자다. 다시 말해 '멈춤'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찰적 과학자의 질문, "다시 한번 묻는다. 인공지능 그리고 그다음을 이어갈 또다른 과학의 발전은 계속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과학기술은 발전하면 할수록 인류를 불행하게 한다. 이익을 보는 이들은 지구를 버리고 화성에 가서 살고 싶은 극소수 자본가뿐이다. (<녹색평론> 184호, [딜레마가 아닌 파국: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정희진, 198쪽)